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인근의 도스토옙스키 동상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인근의 도스토옙스키 동상

세 번째로 등장하는 마르타 브라운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데 E. H. 카가 쓴 『도스토옙스키 평전』에서 비교적 많이 다루고 있다.

마르타 브라운과의 엇갈린 애정도 안나 고르빈-크루코프스카야와 교제하기 시작하던 비슷한 시기인 1864년 말부터 1865년 초의 일로 알려져 있다. 첫 부인 마리야가 죽고 나서 대략 반년이 조금 더 지났을 때다.

마르타 브라운은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환상적 방랑자였던 것 같다. 그녀는 “인생이란 추억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나는 항상 믿어왔다.”라고 뒷날 술회했다고 E. H. 카는 기록해 놓았다.

그녀는 무일푼에 단신으로 말도 잘 안 통하는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등을 그때 그때 보호자를 바꿔가며 방랑했다. 어떤 때는 헝가리인, 어떤 때는 영국인이나 프랑스인이 동반자였다. 때로는 도보로 때로는 말을 타고 여행했다.

그녀는 프랑스의 파리에서 한 프랑스 남자의 도움으로 벨기에로 갔다. 후일 도스토옙스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보 중의 바보’라고 표현한 사람이다. 그러나 벨기에에서 추방되어 네덜란드로 갔다. 여기서도 머무를 수 없게 되자 그녀는 혼자 영국으로 건너간다. 역시 무일푼 상태였고 당시엔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마르타 브라운은 영국에서는 템즈 강변의 아름다운 거리인 임뱅크먼트에서 잠을 잤고, 자살을 기도하다가 이틀간 감옥에 들어간 일도 있다.

그녀는 화폐 위조범들과 만나 잘못된 길로 갔다가 한 인정 많은 프로테스탄트 목사의 소개로 미국 볼티모어 출신의 뱃사람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브라운이란 이름은 그 남자로부터 얻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영국에서 4년간 살았다.

그러다 어떤 사건 때문에 터키로 도망치던 중 비엔나에서 검거되었다가 1862년 말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과거를 가진 여인이었다. 러시아로 돌아온 후에는 고르스키라는 술주정꾼 언론인의 정부가 되었다. 고르스키는 도스토옙스키와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마르타 브라운은 1864년 말 고르스키의 소개로 도스토옙스키의 새로운 잡지 〈세기〉의 영어 번역자로 취직했다. 도스토옙스키와 마르타 브라운과의 관계는 그녀가 병이 나서 도스토옙스키가 문병을 가면서부터 시작됐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녀에게도 청혼했던 것이 확실하다고 E. H. 카는 말하고 있는데,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주로 감사의 마음이었다고 분석한다.

두 사람은 이후 편지를 주고 받았다. 도스토옙스키가 쓴 편지는 남아있지 않고 마르타 브라운이 1865년 1월 하순 도스토옙스키에게 보낸 편지는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내가 육체적으로 당신을 만족시켰는지, 우리들의 우정을 지속시킬 만큼 정신적인 조화가 우리들 사이에 이뤄졌는지, 그것은 어찌 되었든 비록 짧은 순간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를 당신의 우정과 사랑에 가치 있는 여자로 생각해 준 데 대해서 나는 항상 감사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흔쾌하게 당신과 하나가 되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음은 확실합니다. 나의 이기적인 정열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그러나 러시아로 돌아온 뒤의 비참했던 2년간, 그렇게나 슬프고 혐오스럽고 절망밖에 없었던 내 마음속에서 그렇게나 초연하고 관용스럽고 상식과 훌륭함을 지닌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내게 대한 당신의 감정이 길거나 짧은 기간으로 계속되든 어쨌든 간에 그것은 지금의 내게 있어서는 전혀 관심 밖의 일입니다. 그렇지만 진실로 내게 어떠한 물질적 이익보다도 훨씬 높게 생각되는 것은, 당신이 나라는 인간의 타락한 일면을 멀리하지 않았고 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높은 평가를 당신이 내게 내려 준 것입니다. (『도스토옙스키 평전』, E. H. 카, 김병익·권영빈 옮김, 열린책들, 2011.)

마르타 브라운은 자기에게 문병을 오고 돈까지 준 도스토옙스키를 고맙게 생각했다. 그녀는 퇴원 후 고르스키를 떠나 한동안 도스토옙스키와 동거하다가 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후의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계속>

글 | 이정식 작가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지구과학과)를 졸업하였고, 홍콩대 중국어문과정을 수료했다. ROTC 14기. CBS, KBS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CBS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CBS 사장과 CBS 노컷뉴스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방송협회 부회장,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예술의 전당 이사, 뉴스1 사장 및 부회장, 서울문화사 부회장을 지냈다.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안중근 의사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언론인 대상(2009)을 수상했으며, 이정식 애창가곡 1, 2, 3, 4집 등의 음반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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