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 아버지는 독서광이었다. 안나는 아버지 덕에 도스토옙스키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안나는 회고록에서 아버지는 문학 이야기가 나오면 “오늘날 작가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시대엔 푸시킨과 고골, 주콥스키가 있었지 않은가! 젊은 작가 중에선 장편소설가 도스토옙스키가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의 저자 말이야. 이 사람은 진짜 천재야. 불행하게도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시베리아로 끌려가서 소식이 묘연해졌지만 말이야!” 안나는 아버지가 도스토옙스키 형제가 새 잡지 〈시대〉를 출판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었다고 적었다.

안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열렬한 독자였다. 그녀는 1862년에 나온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읽으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시베리아 강제 노역의 끔찍한 생활을 견뎌낸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깊은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어느 날 그녀에게 도스토옙스키를 위해 속기사로서 일할 기회가 왔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크나큰 감동을 받은 작품을 써낸 사람의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라고 후일 말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안나가 도스토옙스키의 청혼을 그처럼 쉽게 받아들인 데 대한 설명이 될 만한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평소 존경하거나 숭배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자기보다 25살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을 배우자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안나와 작업을 하면서 이 똑똑한 여성이야말로 위기에 빠진 그에게 신이 보내준 수호천사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안나에게 청혼한 다음 날인 11월 9일 안나의 집으로 찾아가 안나의 모친에게 정식으로 안나와의 혼인 의사를 밝혔다. 안나의 모친은 푸근한 미소로 늙은 사위를 받아들였다.

◇ 『죄와 벌』에 나오는 센나야 광장의 현재 모습
◇ 『죄와 벌』에 나오는 센나야 광장의 현재 모습

안나의 집에서도 물론 식구들이 모두 찬성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반대 기류가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오히려 도스토옙스키 집안 쪽이었다. 미망인이 된 형수 에밀리야 페도로브나와 의붓아들 파벨 알렉산드로비치가 내놓고 재혼을 반대했다. 두 사람은 안나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냈다.

에밀리야는 도스토옙스키가 형수인 그녀와 그녀의 가족의 생계를 떠맡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늙은 시동생이 다시 결혼을 한다고 하니까 재정적인 지원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깜짝 놀라 재혼에 반대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벨이 반대한 이유도 비슷했을 것이다.

평생 형을 의지하고 형의 도움을 받았던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형의 미망인과 조카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죽은 형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형은 본부인 외에 첩과 그 사이에 낳은 혼외자도 있었다.) 첫 부인 마리야가 남겨 놓은 의붓아들 파벨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었다.

언제나 골칫덩어리였던 파벨은 도스토옙스키의 재혼 소식을 듣고는, 나이로 보나 기력으로 보나 재혼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도스토옙스키에게 훈계하듯 말했다. 도스토옙스키는 파벨의 이 말에 분개하여 고함을 쳐 그를 서재에서 쫓아냈다. 파벨은 1846년생으로 안나와 나이가 같았다.(안나가 넉 달 빠르다) 안나는 그녀의 회고록 속에서 파벨을 막돼먹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세상을 떠나고 수십 년 후에 나온 회고록임에도 불구하고 안나에게 파벨은 끝끝내 불쾌한 존재로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계속>

글 | 이정식 작가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지구과학과)를 졸업하였고, 홍콩대 중국어문과정을 수료했다. ROTC 14기. CBS, KBS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CBS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CBS 사장과 CBS 노컷뉴스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방송협회 부회장,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예술의 전당 이사, 뉴스1 사장 및 부회장, 서울문화사 부회장을 지냈다.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안중근 의사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언론인 대상(2009)을 수상했으며, 이정식 애창가곡 1, 2, 3, 4집 등의 음반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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