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스크바 도스토옙스키역 플랫폼의 『죄와 벌』 벽화
◇ 모스크바 도스토옙스키역 플랫폼의 『죄와 벌』 벽화

도스토옙스키는 안나와 1867년 2월 15일 이즈마일로프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후 두 사람은 친척과 친지들의 집으로 결혼 인사를 다녔다. 그 당시는 친척과 친지들이 결혼 한 새 부부를 점심이나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데 결혼 초기 어느 날 두 사람이 친척집에서 점심을 먹고 안나의 언니 집으로 갔을 때였다. 도스토옙스키가 안나의 언니와 즐겁게 이야기하던 도중 갑자기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 당시의 이야기를 안나는 그녀의 회고록에 이렇게 기록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는 극도로 생기가 넘쳐서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언니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더듬거리며 말을 멈추더니 창백해진 얼굴로 소파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놀라 그의 변해버린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사람의 소리라 할 수 없는 끔찍한 비명이, 아니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고, 표도르 미하일로비치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와 동시에, 남편 옆에 앉아 있던 언니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언니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흐느끼며 방을 뛰쳐나갔고, 형부가 그 뒤를 쫓아갔다. 후에 나는 간질 환자들이 일반적으로 발작이 시작되면 내지르는 이 ‘사람의 소리라 할 수 없는’ 울부짖음을 수십 번이나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소리만 들으면 언제나 몸서리치도록 무서웠다. 하지만 놀랍게도 바로 그때, 그 순간에는 난생 처음으로 간질 발작을 보았음에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나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의 어깨를 끌어안고 있는 힘을 다해 그를 소파에 앉혔다. 감각을 잃은 남편의 몸이 소파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끔찍했던지. 그러나 내게는 그를 받쳐줄 힘이 없었다. 나는 불이 켜진 램프가 놓인 작은 탁자를 치워, 표도르 미하일로비치가 마루로 내려오게끔 했다. 그리고 나 또한 내려앉아 경련이 계속되는 동안 그의 머리를 내 무릎에 받치고 있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아무도 없었다.

(…) 경련은 차츰차츰 잦아들었고,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처음에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고,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내내 무언가 말하고 싶어 했지만, 말이 아닌 소리를 낼 뿐이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30분쯤 지난 다음에야 우리는 미하일로비치를 일으켜 겨우 소파에 눕힐 수 있었고, 우리는 집으로 가기 전에 그가 안정을 취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고통스럽게도 첫 번째 발작이 있은 지 한 시간 뒤에 또다시 발작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가 정신을 차리고도 2시간 이상 아파서 고함을 지를 정도로 심했다. 그건 정말 소름 끼치도록 지독한 그 무엇이었다! 그 후에도 이중 발작이 있긴 했지만 비교적 드문 편이었다.

안나는 남편의 이러한 간질 발작 모습을 보고 그가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이 들자 이루 말할 수 없이 섬뜩한 기분이 나를 휘감았다!”고 했다.

안나와의 결혼 후 최초의 간질 발작, 그것도 연달아 일어난 이중 발작은 도스토옙스키가 친척집에 다니면서 마신 샴페인이 원인이었다. 그것이 극도의 흥분을 일으켰던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후 포도주를 절대로 마시지 않았다. 그 뒤에도 간질 발작 증세는 때때로 계속 됐지만, 이날의 이중 발작은 매우 격렬했던 것 같다. 안나가 처음 겪은 일이기도 했지만…. 안나는 회고록에 “그날의 이중 발작은 내게는 영원히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라고 기록했다. <계속>

글 | 이정식 작가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지구과학과)를 졸업하였고, 홍콩대 중국어문과정을 수료했다. ROTC 14기. CBS, KBS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CBS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CBS 사장과 CBS 노컷뉴스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방송협회 부회장,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예술의 전당 이사, 뉴스1 사장 및 부회장, 서울문화사 부회장을 지냈다.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안중근 의사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언론인 대상(2009)을 수상했으며, 이정식 애창가곡 1, 2, 3, 4집 등의 음반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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