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는 바뀌어 1866년이 되었다. 그가 비스바덴에서 쓰기 시작한 『죄와 벌』은 그해 1월부터 〈러시아 통보〉에 실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2월호, 4월호 등에 계속해 실렸다.

이때 러시아 통보에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제1부와 제2부도 실리고 있었다. 『전쟁과 평화』는 후에 붙여진 이름이며 처음의 제목은 『1805년』이었다. 두 작가의 대작이 이렇게 같은 출판물에 실렸으나 두 사람이 생전에 직접 대면할 기회는 없었다.

두 사람이 단 한 번 만날 뻔한 일은 있었다. 도스토옙스키가 세상 떠나기 3년 전인 1878년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 솔로비요프의 철학 강의장에 두 사람이 함께 참석했으나 얼굴을 서로 몰랐기 때문에 스쳐지나갔다.

두 사람을 잘 아는 스트라호프가 톨스토이를 안내했는데, 톨스토이가 아무에게도 소개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해 스트라호프는 도스토옙스키를 보고도 애매한 태도로 그냥 지나쳤다.

도스토옙스키는 생전에 톨스토이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이에 관한 기록은 두번째 부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가 그녀의 회고록에 남겨놓았다.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는 남편 사후 톨스토이를 직접 만난 일이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 쓰기에 몰두하고 있던 그해 9월 어느 날 문득 스첼로프스키와의 계약서가 생각났다. 스첼로프스키에게 11월 1일까지 보내기로 약속했던 새 소설을 쓸 수 있는 날짜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스첼로프스키에게 보낼 소설로 3년 전 수슬로바와 유럽 여행 중 착상했던 『도박꾼』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머릿속에서만 있었을 뿐이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점의 도스토옙스키 부부 관련 서적(왼쪽이 안나의 회고록)
◇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점의 도스토옙스키 부부 관련 서적(왼쪽이 안나의 회고록)

당황한 도스토옙스키는 이 문제를 친구들과 의논했다. 밀류코프, 마이코프, 돌고모스찌예프 등 세 친구는 도스토옙스키에게 자신들이 도스토옙스키의 구상에 따라 한 부분씩을 쓰고 이것을 그가 정리해서 마무리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제안은 실현 불가능 한 것이고 불명예스러운 것이라며 거부했다.

그러자 밀류코프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자기가 아는 속기 선생이 있는데, 속기사의 도움을 받아 구술을 해서라도 소설을 기한 내에 완성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도스토옙스키를 설득했다.

도스토옙스키는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1866년 10월 4일 올힌 선생에게 속기를 배우고 있던 20세의 여학생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스니트키나가 도스토옙스키의 아파트인 알론킨 하우스를 찾아가게 된다. 이때 도스토옙스키는 45세였다.

도스토옙스키의 열렬한 독자이기도 했던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는 훗날 그녀의 회고록에서 도스토옙스키를 그의 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을 이렇게 기록했다.

처음 언뜻 보았을 때 도스토옙스키는 아주 늙어 보였다. 하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자 금방 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가 서른 다섯에서 일곱 사이이지 그 이상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중간 정도의 키에 몸을 곧추세우고 있었고, 약간 성긴 곳도 있는 밝은 밤색 머리칼은 포마드를 잔뜩 발라 세심하게 정돈해놓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그의 눈 때문이었다. 두 눈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한쪽 눈은 갈색인데, 다른 쪽은 눈동자가 눈 전체로 확대되어 홍채가 보이지 않았다. 이 이중적인 눈 때문에 도스토옙스키는 어딘지 수수께끼 같은 느낌이 풍겼다.

도스토옙스키의 얼굴은 창백하고 병적이었다. 그 얼굴이 내게는 너무나 친숙하게 느껴졌는데, 아마도 내가 예전에 그의 초상화들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도스토옙스키는 책상에 앉았다가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담배를 피웠다.

그는 궐련을 자주 끄고 새것으로 갈아 피우곤 했다. 그는 내게도 담배를 권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예의상 안 피우시는 거겠죠?” 그가 말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을뿐더러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고 서둘러 말했다.

대화는 중간중간 끊어졌다. 게다가 도스토옙스키는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로 넘어갔다. 그의 모습은 생기가 없었고 마치 병자 같았다. 그는 입을 떼자마자 자기가 간질을 앓고 있으며 최근에 발작을 했다고 말했는데, 이런 솔직함에 나는 무척 놀랐다. (『도스토예프스끼와 함께한 나날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옙스카야, 최 호정 옮김, 그린비, 2003.)

위의 인용문 중 ‘홍채가 보이지 않았다’는 대목과 관련해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아놓았다.

“그것은 그가 간질 발작을 일으켰을 때 넘어지면서 어떤 날카로운 물체에 부딪혀 오른쪽 눈을 크게 다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융게 교수에게 치료를 받고, 경련 완화제인 아트로핀 한 방울을 눈에 넣으라는 처방을 받았다. 이 때문에 동공이 그렇게 확대된 것이었다"

안나는 도스토옙스키가 자기와 처음 만난 날 그가 죽음 직전까지 갔던 과거 사형장에서의 쓰라린 기억까지 들려주었다(*제2부 참조)며, 회고록에 이렇게 술회했다.

“내가 너무 놀랐던 것은 바로 그가 내 앞에서, 오늘 난생 처음 만난 여자아이 앞에서 그렇게 솔직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었다. 겉보기에는 내성적이고 엄숙해 보이는 이 사람이 내게 자신의 전 생애를 그처럼 세세하게, 그처럼 솔직하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태도로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미 제2부에서 안나의 회고록 중 관련 대목을 인용했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초면의 안나에게 “얼마나 살고 싶었던지, 생명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지던지” “모든 것을 새로 경험하고 오래도록 살 수만 있다면… 하고 간절히 원했다”고 말했다.

도스토옙스키는 11월 1일까지 대형 판본 인쇄 용지로 7장 이상 분량의 소설을 써야 했다. 당시 대형 판본 인쇄용지 1장은 책의 쪽수로는 약 15.5쪽에 해당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스첼로프스키와의 계약 조건이었다.

안나는 속기일을 시작한 둘째 날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아직 새 소설의 플롯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상태라는 얘기를 들었고, 그가 스첼로프스키라는 출판업자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술은 대개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30여 분씩 세 차례 정도 구술을 했고, 중간중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도스토옙스키는 안나에게 자신이 구술하고 있는 『도박꾼』의 주인공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의 여러 감정과 인상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849년 페트라셰프스키 독서 모임 사건으로 체포되어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 8개월간 수감돼 있을 때 벽을 사이에 두고 다른 수감자들과 어떻게 수신호로 소식을 나눴는지도 설명했고,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만난 범죄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안나에게 해주었다. 어느 날엔 죽은 첫 부인 마리야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1849년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유형 가기 전 8개월간 수감됐던 상트페테르부르크 페트로파블 롭스크 요새의 네바 강 쪽 문
◇ 1849년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유형 가기 전 8개월간 수감됐던 상트페테르부르크 페트로파블 롭스크 요새의 네바 강 쪽 문

도스토옙스키는 솔직하게 많은 이야기를 안나에게 했는데 모두가 슬프고 불행한 이야기들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러면서 “나를 덮친 모든 불운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행복한 새 삶을 시작하는 꿈을 꾸고 있다”라고 했다. 안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깊은 연민을 느꼈다.

◇ 소녀시절의 안나
◇ 소녀시절의 안나

안나는 일을 마치면 속기한 것을 집으로 가져가 글로 정리해서 이튿날 가져왔다. 날이 갈수록 일에 익숙해지면서 스피드가 붙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안나가 작성한 원고가 판본 몇장 분량인지를 계산해보면서 기뻐했다.

안나 또한 진행 속도로 보아 소설을 기한 내에 써 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뻤고, 좋아하는 작가의 집필을 돕고 있다는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10월 4일 시작된 구술은 10월 29일 끝났다. 25일 만에 대형 판본 인쇄용지 7장에 이르는 약 4만 단어의 소설을 쓴 것이다. 소설의 원고는 30일과 31일 정서되었고, 약속된 마감일인 11월 1일 원고를 넘기기만 하면 모든 게 잘 마무리될 상황이었다. <계속>

글 | 이정식 작가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지구과학과)를 졸업하였고, 홍콩대 중국어문과정을 수료했다. ROTC 14기. CBS, KBS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CBS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CBS 사장과 CBS 노컷뉴스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방송협회 부회장,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예술의 전당 이사, 뉴스1 사장 및 부회장, 서울문화사 부회장을 지냈다.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안중근 의사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언론인 대상(2009)을 수상했으며, 이정식 애창가곡 1, 2, 3, 4집 등의 음반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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