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전적으로 작가의 경험에 바탕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 전 마리야와 불륜이라고 할 수 있는 연인관계에서 있었을 법한 일들은 그 후 그의 작품 『영원한 남편』에 엇비슷하게 등장한다. 『영원한 남편』은 도스토옙스키가 두 번째 결혼 후 유럽에 머물 때인 1869년에 쓴 중편소설이다.

『영원한 남편』의 주인공 벨차니노프는 상류사회 출신으로 좋은 체격과 멋진 외모를 지녔다. 그는 나이 30세 무렵에 T시에서 1년간 지낸 일이 있는데, 그때 이 고장 사람 트루소스키의 아내 나탈리아 바실리예브나와 내연관계를 갖게 되었다.

박물관 전시물에 대해 설명하는 해설사 카테리나 양
박물관 전시물에 대해 설명하는 해설사 카테리나 양

그녀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외간남자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소설은 그녀의 성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둘 더하기 둘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도 가진 적이 없었다. 무슨 일에나 자신이 옳지 않았다든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한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셀 수도 없이 남편을 배신했으면서도 전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 그녀는 애인 괴롭히기를 좋아했고, 그러면서도 그것을 보충해 주는 것도 좋아했다. 그녀는 정열적이고 잔인하며 또한 관능적인 타입의 여인이었다. (『영원한 남편』 , 정명자 옮김, 열린책들, 2014.)

이 소설 속 여인의 성격을 마리야의 성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원한 남편』 속의 다음과 같은 대목은 도스토옙스키가 세미팔라틴스크 시절 마리야와 밀회 시에 나누었을 듯하다.

T시에 살고 있는 동안 벨차니노프는 몇 번인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 적이 있었다. 도대체 이 남편이라는 자는 자기 아내와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있을까 하고 몇 차례인가 그는 이 문제에 대하여 나탈리야 바실리예브나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았는데 그때마다 언제나 그녀는,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며 결코 아무것도 눈치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전혀 그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약간 짜증 섞인 한결같은 대답을 들었을 뿐이다.

현실에서 마리야의 첫 남편 이사예프는 아내와 도스토옙스키와의 관계를 까맣게 모른 채 고통 속에서도 아내와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죽었다. 『영원한 남편』 속의 나탈리야는 소설 속의 주인공인 정부(情夫) 벨차니노프의 딸을 낳았지만 남편 트루소스키의 딸인 것처럼 속여 키우며 살다가 9년 후에 죽는다.

▼ 〈시베리아의 생활〉 1904년 10월 10일 자 도 스토옙스키 관련 기사
▼ 〈시베리아의 생활〉 1904년 10월 10일 자 도 스토옙스키 관련 기사

그녀는 벨차니노프에게 그의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지만, 편지는 그에게 도달하지 않았고 벨차니노프는 그 사실을 나탈리야 사후에 알게 된다.

아내가 죽은 후 남편 트루소스키는 아내의 유품 속에서 숨겨놓았던 편지를 보고 딸의 진짜 아버지가 벨차니노프라는 것을 알게 되며 벨차니노프에게 복수심을 품지만 복수를 실행하지는 않는다.

모친 사망 이후 어린 딸 리자는 친 아버지로 알고 있던 트루소스키의 학대 속에 병들어 죽게 된다. 트루소스키는 돈 푼깨나 있어 보이지만 시골티 나는 여자와 재혼을 하는데, 주인공 벨차니노프가 우연히도 열차 안에서 재혼한 트루소스키 부부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그 여자 앞에서 친구인 체한 후 헤어진다는 것이 대체적인 줄거리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벨차니노프는 나탈리야의 남편 트루소스키를 ‘영원한 남편’이라고 부르는데, ‘영원한 남편’이란 아내의 부정을 알지 못한 채 오로지 남편으로서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일종의 조롱이다.

박물관의 네 번째 방은 결혼식을 한 성당의 내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혼식을 집전한 튜멘체프 사제의 사진도 있었다. 한쪽 벽에는 도스토옙스키가 과거 이곳에 와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1904년 10월에 발행된 〈시베리아 생활〉지의 기사도 전시되어 있다. 이 기사 속에는 1858년에 찍은 장교 군복을 입은 도스토옙스키의 사진과 마리야 가족이 살던 집(현재의 노보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과 결혼식을 올린 성당의 사진이 들어있다.

마리야가 살던 집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 외에 박물관 연구동이 인근에 있었다. 시베리아 스타일의 2층 목조건물이었는데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이사예프의 셋집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이 연구동은 박물관 행정실로 불렸다.

이 연구동 앞 마당에는 2001년 세워진 도스토옙스키의 흉상이 사각의 돌기둥 위에서 연구동 건물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의 흉상은 노보시비르스크 거리에 있는 도스토옙스키 얼굴상과 높이나 크기 등이 비슷했다.

노보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연구동, 도스토옙스키 흉상이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에는 4명의 연구원을 포함해 모두 21명의 직원이 있다고 한다. 작은 규모의 박물관치고 직원의 수가 꽤 많았다. 그만큼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때때로 도스토옙스키 학술회의도 열린다고 했다. <계속>

글 | 이정식 작가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지구과학과)를 졸업하였고, 홍콩대 중국어문과정을 수료했다. ROTC 14기. CBS, KBS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CBS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CBS 사장과 CBS 노컷뉴스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방송협회 부회장,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예술의 전당 이사, 뉴스1 사장 및 부회장, 서울문화사 부회장을 지냈다.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안중근 의사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언론인 대상(2009)을 수상했으며, 이정식 애창가곡 1, 2, 3, 4집 등의 음반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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