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에서 돌아온 다음 해인 1860년 가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형 미하일과 함께 〈시대〉라는 문학잡지를 창간했다. 미하일이 편집자였고 도스토옙스키는 주요 기고자였다.

창간호는 1861년 1월에 나왔다. 잡지는 순조롭게 발행되다가 1863년 4월 호에 실린 폴란드인의 무장 봉기 실패와 관련한 비평가 스트라호프의 글이 반애국적이라는 당국의 비판을 받으면서 1863년 5월 갑자기 강제 폐간되었다.

재정적인 어려움이 닥쳐왔다. 폐결핵에 걸려있던 아내 마리야의 병세는 날로 악화됐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

그러한 뒤죽박죽인 상황 속에서 도스토옙스키는 1863년 여름 20대 초반의 당돌한 젊은 여성 폴리나 수슬로바와 유럽 여행을 감행한다.

폴리나 수슬로바(1839~1918) 러시아의 단편소설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정부(情婦). 러시아 최초의 여성 내과 의사인 나데즈다 수슬로바의 언니. 1860년대 사진
폴리나 수슬로바(1839~1918) 러시아의 단편소설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정부(情婦). 러시아 최초의 여성 내과 의사인 나데즈다 수슬로바의 언니. 1860년대 사진

도스토옙스키가 폴리나 수슬로바(아폴리나리아 프로코피예브나 수슬로바)를 알게된 것은 그녀가 〈시대〉에 단편을 기고하면서부터였다. 수슬로바는 작가를 지망하는 대학생이었는데 뛰어난 미모에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수슬로바와 도스토옙스키는 나이가 18살이나 차이가 났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1863년 함께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기로 할 정도로 깊어졌다. 마리야가 폐결핵으로 블라지미르에 요양 중일 때다.

수슬로바가 파리로 먼저 떠났고 도스토옙스키가 뒤따라갔다. 도스토옙스키는 파리로 가는 도중 독일 비스바덴의 도박장에 들렀다가 운 좋게도 5천 프랑을 따는 행운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그가 도박에 계속 빠지는 화근이 된다.

그는 거액을 손에 넣자 득의만만해져 돈의 일부를 처제를 통해 앓고 있는 마리야에게 송금했다. 그리고 파리로 가서 수슬로바를 만났으나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가 비스바덴의 도박장에서 너무 시간을 보낸 것도 이유였지만, 그를 기다리는 사이에 수슬로바가 한 스페인 남자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살바도르라는 이름의 이 사람은 의사이거나 의대생이었던 것 같다. 자신감이 충만한 젊은이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쉽게 깊은 관계까지 갔지만 살바도르는 수슬로바에게 곧 싫증을 느끼고 그녀를 떠난다. 수슬로바가 남자에게 차인 것이다.

정장을 한 도스토옙스키(1861)
정장을 한 도스토옙스키(1861)

살바도르는 ‘그만 만나자’는 얘기도 수슬로바에게 직접 하지 않고 인편으로 알렸다. 친구를 시켜 그녀에게 자신이 티푸스에 걸렸다는 편지를 보내게 했다.

여자를 떼어버리기 위해 꾀를 낸 것이었다. 자존심 강한 수슬로바는 그를 쫓아가 총으로 쏘아 죽이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8월 14일 도스토옙스키가 나타났던 것이다. 파리에서 도스토옙스키를 기다리던 폴리나 수슬로바는 살바도르와 사귀게 되자 도스토옙스키에게 ‘파리에 오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도스토옙스키는 그 편지를 받지 못한 채 파리에 도착했다.

역사가 E. H. 카가 후일 공개된 수슬로바의 일기를 인용해 그의 『도스토옙스키 평전』에 실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신에게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어요.” 내가 말했다.

“무슨 편지를?”

“당신이 파리에 오지 말라고 쓴 것인데…….”

“오지 말라니 무슨 말이오?”

“모든 게 너무 늦었기 때문이에요.”

그는 머리를 숙였다.

“무슨 일인지 알아야만 되겠어. 어디든 나갑시다. 무슨 일인지 말해줘. 그러지

않으면 죽어 버리고 말 거야.”

(그들은 함께 마차를 타고 도스토옙스키의 숙소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서자 그는 나의 발밑에 쓰러져 무릎을 안고서 흐느끼며 말했다.

“당신을 잃게 되었군. 분명히.”

기분을 가라앉힌 그는 누구 때문이냐고 묻기 시작했다.

“아마도 젊고 잘생긴 남자겠지. 말도 잘할 테고……. 그러나 나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오랫동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람한테 모든 것을 다 바쳤소?”

“묻지 마세요. 당신과는 관계없는 일이에요.”

나는 그 사람을 매우 사랑한다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행복하오?”

“그렇지 않아요.”

“사랑하면서도 행복하지 않다니! 그럴 수가?”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는 절망한 듯 머리를 잡고 소리쳤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를 노예처럼 사랑하고 있군! 말해 봐. 알아야만 해! 당신

은 세상 끝까지 그를 쫓아가겠지?”

“아니예요.”

나는 대답했다.

“귀국하고 싶어요.”

나는 울어 버렸다.

파리에서 만난 젊은 스페인 남자로부터 버림받아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을 때 나타난 도스토옙스키에게 그녀는 귀국하고 싶다고 했다.

중간에 도박장에서 돈까지 따서 의기양양 파리까지 온 도스토옙스키는 황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수슬로바에게 ‘그 일을 큰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위로까지 했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속맘이야 쓰리지 않았을 리 없지만 유부남인 그가 스무 살 가까이 어린 여자에게 그 상황에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도스토옙스키는 수슬로바의 돌변한 태도를 보고 일단은 여행 자체가 무산되는 상황은 피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결국 두 사람은 도스토옙스키의 제안으로 연인 사이가 아니라 남매 같은 관계로 여행을 하기로 합의한다.

이를테면 함께 다니기는 하지만 호텔 방은 따로 쓰는 그런 여행이었다. 배 안에서는 한방에서 자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기록과 전후 상황으로 보아 두 사람은 이미 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도스토옙스키의 그런 제안은 일단 수슬로바를 달래기 위한 임기응변책이었을 것이지만 이후 쭉 그런 상태로 여행을 한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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