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는 결혼을 하기 위해 간 것을 포함해 모두 세 차례 쿠즈네츠크에 갔다. 즈미예브까지 갔다가 마리야를 못 만나고 온 것은 물론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처음 간 것은 1856년 7월이다. 쿠즈네츠크로 가는 길목에 있는 바르나울까지 출장을 얻어 갔다가 몰래 쿠즈네츠크까지 가서 마리야를 만나고 이틀 동안 지내다 왔다. 그는 이때 마리야가 자신에게 많이 기울어졌다고 생각했다.

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의 도스토옙 스키 얼굴상 앞에서. 좌로부터 필자, 김준길 교수, 에밀리야 쉐스타코바 관장
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의 도스토옙 스키 얼굴상 앞에서. 좌로부터 필자, 김준길 교수, 에밀리야 쉐스타코바 관장

도스토옙스키의 두 번째 쿠즈네츠크 방문은 준위로 승진한 직후인 1856년 11월이다. 이때는 장교 대우가 되었으므로 공식으로 허가를 받고 쿠즈네츠크에 갔다 왔다.

쿠즈네츠크에서 5일간 지냈는데 마리야 집에서 지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때 마리야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했고 그녀는 오랜 망설임 끝에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세 번째 방문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서 간 1857년 2월이었다. 이때는 2주 정도 머물렀다.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 오디기트레옙스크 성당은 아름다운 외관을 가진 큰 성당이었다. 1764년에 건립되었는데 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내전 중이던 1919년 한 볼셰비키 무신론자의 방화로 소실된 후 복원되지 못했다.

노보쿠즈네츠크 철강 공장 건물 앞의 옛 탱크. 2차 대 전 중 탱크를 많이 제조했다
노보쿠즈네츠크 철강 공장 건물 앞의 옛 탱크. 2차 대 전 중 탱크를 많이 제조했다

그 당시는 종교는 아편이라며 러시아 정교회를 박해하던 시절이었으므로 다시 지을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이 성당의 벽돌들은 그 후 이 도시에 철강 공장을 지을 때 자재로 이용됐다고 한다.

노보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에는 당시 성당의 사진과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날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을 나온 후 옛날 대포들이 놓여있는 언덕 위의 쿠즈네츠크 요새박물관에도 잠시 들렀는데, 이 박물관의 옛 도시 모형 속에도 이 성당이 도시 중심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노보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의 에밀리야 쉐스타코바 관장은 “마리야는 단순히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스토옙스키와 결혼한 것은 아니며 도스토옙스키의 지성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계속>

글 | 이정식 작가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지구과학과)를 졸업하였고, 홍콩대 중국어문과정을 수료했다. ROTC 14기. CBS, KBS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CBS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CBS 사장과 CBS 노컷뉴스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방송협회 부회장,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예술의 전당 이사, 뉴스1 사장 및 부회장, 서울문화사 부회장을 지냈다.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안중근 의사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언론인 대상(2009)을 수상했으며, 이정식 애창가곡 1, 2, 3, 4집 등의 음반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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