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부부의 유럽 생활은 늘 돈에 쪼들리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러시아 통보〉 등에서 부쳐주는 원고료로 겨우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는 사이에 첫아이가 생겼다. 1868년 2월, 부부는 제네바에서 첫딸 소냐(소피야)를 얻고 뛸 듯이 기뻐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나이 47세에 얻은 첫아이였다.

◇ 도스토옙스키 서재에 걸려있는 ‘시스티나의 성 모’ 부분 복제품(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 도스토옙스키 서재에 걸려있는 ‘시스티나의 성 모’ 부분 복제품(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길눈이 어두웠던 도스토옙스키는 소냐가 태어나기 전 산파가 사는 집이 산비탈에 모양이 비슷비슷한 거리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는 산파 집으로 가는 길을 익히기 위해 3주간이나 그 동네로 산책을 다녔다.

밤중에 갑자기 부르러 갈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집을 잘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처럼 간절히 기다리던 아이였으나 소냐는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그해 5월 감기로 죽고 말았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 도중 갑자기 날씨가 변해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소냐가 감기에 걸렸다. 유명한 소아과 의사를 불렀고, 의사는 아이가 죽기 세 시간 전까지도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고 했으나 소냐는 갑자기 숨을 거뒀다.

첫 부인 마리야와의 사이에 자식을 두지 못했던 도스토옙스키는 자식을 갖는 일이야 말로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그런데 첫아이를 이처럼 잃었으니 슬픔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소냐를 묻은 후 낙담한 부부는 제네바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었다.

더욱이 소냐가 죽었을 때 주위의 스위스 사람들이 보여 준 박정한 태도도 이곳에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들었다. 이웃들은 소냐가 죽은 후 안나가 소리내어 울자, ‘신경에 거슬리니 큰 소리로 울지 않도록 해달라’고 사람을 보냈다. 부부는 제네바를 떠나 스위스의 호반도시 베베로 이주해 슬픈 여름을 보낸 후 9월 초에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옮겨간다.

밀라노에서는 두 달가량 있었다. 부부는 그 후 도스토옙스키가 미술품들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피렌체로 갔다. 소냐가 죽은 후 도스토옙스키는 『백치』의 집필에 몰두한다.

그렇게 이탈리아에서 사는 동안 1869년 다시 아이가 생겼다. 안나는 이탈리아어를 조금 할 줄 알았으나 도스토옙스키는 이탈리아어를 몰랐다. 안나의 출산을 위해 도스토옙스키가 산파나 의사 등과 이야기 할 수 있는 불어나 독일어가 통하는 곳으로 이주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부부는 1869년 8월 이탈리아에서 다시 익숙한 도시인 드레스덴으로 이주했다. 1869년 9월 둘째 딸 류보피가 태어났다. 부부는 두 번째도 딸이 태어나길 간절히 바랬다. 그래서 이름도 ‘사랑’이라는 뜻인 ‘류보피’로 정해두었었다.

◇ 세메이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에 있는 도스토옙스키와 안나 그리고 두 자녀(딸 류보피와 아들 표도르) 사진
◇ 세메이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에 있는 도스토옙스키와 안나 그리고 두 자녀(딸 류보피와 아들 표도르) 사진

안나가 류보피를 임신하고 있을 때 이런 일도 있었다. 스트라호프가 러시아에서 레프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출판했다며 이 소설 한 질을 보내주었다. 도스토옙스키가 소설을 읽다보니 그 내용 중에 주인공 안드레이 발콘스키의 아내가 아기를 낳다가 죽는 장면이 나왔다.

안나도 도스토옙스키가 먼저 읽은 이 소설을 따라 읽고 있었는데, 도스토옙스키는 임신 중인 안나가 이 부분을 읽는 것이 심적으로 좋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그 대목이 들어있는 한 권을 감췄다.

안나가 소설을 읽다 보니 한 권이 없었다. 없어진 한 권을 찾기 위해 집 안을 다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아까운 한 권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안나가 류보피를 무사히 낳은 후 그 책을 내주었다.

류보피가 태어난 후 도스토옙스키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스트라호프에게 이렇게 기쁨에 넘친 편지를 썼다고 안나는 회고록에서 밝혔다.

아, 존경하는 니콜라이 니콜라이비치 (스트라호프). 자네는 왜 결혼을 하지 않았나. 왜 아기가 없단 말인가. 자네에게 맹세컨대, 인생의 행복 중 4분의 3이 거기에 있다네. 나머지 다른 것들엔 겨우 4분의 1이 있을 뿐이지.

류보피는 건강하게 잘 자랐다.<계속>

글 | 이정식 작가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지구과학과)를 졸업하였고, 홍콩대 중국어문과정을 수료했다. ROTC 14기. CBS, KBS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CBS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CBS 사장과 CBS 노컷뉴스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방송협회 부회장,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예술의 전당 이사, 뉴스1 사장 및 부회장, 서울문화사 부회장을 지냈다.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안중근 의사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언론인 대상(2009)을 수상했으며, 이정식 애창가곡 1, 2, 3, 4집 등의 음반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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