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인지 아닌지 진단하는 데는 특별한 검사가 필요하지 않다. 본인의 얘기를 듣고 판단한다. 심리 검사를 시행해 봐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숨겨진 우울증이 심리 검사에서 드러나기도 하나 경험이 풍부한 치료자라면 심층 면담에서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우울증이 의심될 경우 의학적 검사를 시행할 수 있다. 이는 우울증이 신체적 질환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 배제하기 위해서다. 만성 신체적 질환이나 갑상샘 기능 이상 시에도 우울증을 경험할 수 있다. 

젊은 여성의 경우 면역학적 질환에 우울증이 동반될 수 있어 주의를 필요로 한다. 노년기에는 파킨슨병 같은 신경학적 질환 초기에도 우울증이 동반될 수 있다.

중년 이후에는 췌장암을 비롯한 암 발병 초기에도 암을 발견하기 전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우울증은 단순히 마음이 여리고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다.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이 우울증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경 전달 물질은 체내 호르몬이나 면역 기능의 미묘한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울증 치료제는 이러한 신경 전달 물질의 균형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은 타고난 체질적 요인과 환경적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는다. 즉 우울증은 생물학적 소인이 있는 사람이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발병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비슷한 상황에서 누구는 우울증에 걸리고 누구는 괜찮고 하는 것은 생물학적 소인, 즉 체질 차이다. 

심각한 우울증은 심리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외적 스트레스와 무관하게 발병하는 경우를 내인성(endogenous) 우울증이라고 부른다. 

슬픔이나 근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어째서 자기가 슬프며 자기가 무엇을 근심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우울에 사로잡힌 인간에게 우울의 원인이 무엇이며 무엇이 그를 그렇게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는 ‘나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이것이냐/저것이냐》에서 인용한 이 글은 병적(내인성) 우울증의 심리적 원인을 설명하는 데 대한 어려움을 잘 묘사하고 있다. 키르케고르 자신이 내인성 우울증을 체험했을 가능성이 높아 본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글로 생각된다.

살면서 겪는 모든 종류의 스트레스는 우울증의 일차적 원인은 아닐지라도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도 우울증 발병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상실과 좌절을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지나치게 성취 지향적인 삶을 사는 경우, 모든 것이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 특별한 사람 또는 남보다 우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 지나치게 의존적인 경우 모두 우울해지기 쉽다.  

정신 분석학에서는 상실에 대한 심리적 반응으로 보는데, 대상에 대한 사랑과 미움의 양가감정을 해결하지 못하고 분노가 자기 내면으로 향할 때 우울해진다고 설명한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불안정해진 자존감이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자존심에 상처받는 것이 심리적 원인이 될 수 있으나 우울해져서 그 결과 자존심이 저하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우울한 상태에서는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상처를 쉽게 받을 수 있다.  <계속>

글 | 김창윤 교수

울산대 의과 대학,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교수. 조현병, 조울증, 강박 장애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개인 및 가족 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서울대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 분자신경생물학 연구소에서 연수했으며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과장을 역임했다.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심리 치료에도 관심이 많고 칼 구스타프 융과 동서양 철학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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