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신경계 질환인 근위축 경화증으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말조차 제대로 못 하는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그의 60세 생일 기념 심포지엄에서 “내가 이룬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필요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 다른 사람이 본인처럼 힘들어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부담된다고 나 몰라라 할 것인가 생각해 보도록 한다. 기꺼이 다른 사람을 도와줄 마음이 있다면 나 역시 도움을 받아도 되는 것이다. 

때로는 살면서 주위 사람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도움 없이 세상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대단한 오만이고 착각이다. 상담가가 자살을 시도한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니라고 애써 합리화하며 설득하는 것은 와닿지 않는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세상에 혼자 동떨어져 있다고 느낀다. 가까운 사람들조차 남처럼 느껴지고, 다 소용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위로가 공허하고 가식적으로 느껴진다. 자신이 죽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처럼 말한다. 

과연 그럴까? 자신의 자살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가능성은 없을까? 가족들에게 애써 상처를 주면서 세상을 떠나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때 혼자라는 생각에서 헤어날 수 있다. 

훗날 서운한 마음을 접고 가까운 사람들을 바라보면 안쓰럽고 애틋한 마음이 들 수 있다. 자살 가능성이 의심되는 사람을 대할 때는 우선 기분은 어떤지,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직접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경청하면서 설득하기에 앞서, 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섣부른 위로는 진정성이 없어 보이고, 어설픈 철학적 논의는 공허한 느낌만 준다. 

와닿지 않는 조언보다는 자살을 생각하게 되기까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살 시도 가능성이 클 때는 가까운 사람 중 누군가가 곁에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요하면 약물 치료도 받는 게 좋다. 적절한 처방 약은 죽고 싶은 마음을 누그러뜨릴 뿐만 아니라 살아야 할 명분을 주기도 한다. 세상에 죽고 싶어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없다. 

안타깝게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마광수 교수의 <반 고흐 시>처럼 사는 게 의미가 없고, 사랑할 상대도 없고,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고통스럽기 때문에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살 시도에 앞서 자신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다. 혼자라는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 사랑하며 도움을 받고, 외적 성취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고통을 수용하고 견디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갈 때 자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삶의 고통을 겪고 이를 받아들일 때 예상 밖의 경이로운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어느 날 삶이 정지되었다고 느끼면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죽음을 생각했던 톨스토이는 고백록에서 “신앙은 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한 지식이고, 그 지식의 결과로 인간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했다.

빅터 프랭클은 자살의 동기는 대부분 복수심에서 비롯되고, 속죄의 의미에서 자살하는 경우도 “자신의 고통 가운데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며 이미 벌어진 불행이나 부당한 행위를 없애는 대신 과거를 영속시킨다”라고 하면서 자살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살하려는 것은 체스를 두다가 어려운 수가 나왔다고 체스판을 엎어 버리는 것과 같다” 라고 말하며, “삶의 원칙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절대 포기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프랭클은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살 충동은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때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융도 고통의 의미를 찾는다면 거의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고 말하며 정신 신경증은 그 의미를 찾지 못한 영혼의 고통이라고 말한다.

삶의 의미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자기중심적인 데 서 벗어날 때 찾을 수 있다. 삶을 맹목적 의지에 따른 고통의 현장으로 파악한 염세주의 철 학자 쇼펜하우어도 자살은 반대한다.

자살은 삶이 의지(욕망)대로 되지 않은 데 따른 고통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의 격렬한 표현이고 죽고 싶어서 죽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를 덮어 버릴 뿐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삶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기회를 내치는 것으로 설명한다. 

즉 치료를 위해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가 고통스럽다고 그냥 병자로 남아 있겠다는 생각과 다름없다고 한다.  <계속>

글 | 김창윤 교수

울산대 의과 대학,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교수. 조현병, 조울증, 강박 장애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개인 및 가족 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서울대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 분자신경생물학 연구소에서 연수했으며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과장을 역임했다.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심리 치료에도 관심이 많고 칼 구스타프 융과 동서양 철학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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