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 회사원 A는 늘 머리가 아프고 소화도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하다. 때로는 잠을 설치기도 한다. 병원에서 혈액 검사, 내시경 검사 등을 받아 보았으나 결과는 정상이다. 

뇌종양을 의심해서 찍어 본 뇌 MRI(자기 공명 영상) 결과도 이상이 없다. 혹시 심리적 문제일지 모르니 정신과 진료를 받아 보라는 내과 의사의 말에 마지못해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왔다. 

면담해 보니 특별히 불안하거나 우울하지도 않다. 회사에서는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대인 관계도 괜찮다고 한다.

아내와의 관계도 별문제 없고 특별한 걱정도 없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도 좋았다고 한다. 표정이 약간 긴장되어 보이나 성격도 점잖고 괜찮아 보인다.

A는 늘 생각이 많고 쉴 줄 모르는 게 문제였다. 쉴 줄 모른다고 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일하지 않고 쉴 때도 앞으로 해야 할 일 등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게 문제였다. 

강박적인 정도는 아니나 미래의 일을 앞당겨서 고민하는 성격이다. 그러다 보니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 생각을 비우고 느긋하게 쉬지 못하는 것이 두통과 때때로 나타나는 불면증의 원인이었다.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나면 일단 증상은 호전될 수 있다. 규칙적으로 가벼운 운동만 해도 머리 아픈 게 나아지고 속도 편할 뿐만 아니라 밤에 잠도 쉽게 들고 깊이 잘 수 있다. 

실제로 규칙적인 걷기와 스트레칭을 하면서 증상은 매우 호전되었다. 평소 적절한 취미 생활을 했더라면 증상은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즐기면서 하는 취미는자연스럽게 긴장을 풀어 준다. 취미라고 해서 반드시 거창하거나 고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취미는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활동이라도 즐길 수 있고 기분 전환이 되는 것이면 족하다.

융은 진정한 즐거움은 소박하고 순박하며, 열등한 기능을 살리는 데서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분화가 덜 된 기능을 통해 어린아이의 생생한 즐거움 같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소질 있고 잘 하는 것을 즐기는 것도 뿌듯한 느낌을 주지만, 융의 말대로 평소 잘 사용하지 않거나 서툰 기능을 사용해 보는 것도 의외로 재미있다.

몸치가 춤에 빠져들고 골프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 열심히 연습하며 즐기는 것도 열등한 기능에 관한 관심이 삶에 재미를 더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음악이나 춤과 같은 감성적인 취미 활동을 통해 니체가 말한 디오니소스적인 삶의 매력을 느껴 보는 것이 삶에 즐거움을 더해 준다. 

마땅한 취미가 없다면 그냥 걷는 것도 좋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고, 걷다 보면 생각이 없어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도 긴장을 푸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  <계속>

글 | 김창윤 교수

울산대 의과 대학,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교수. 조현병, 조울증, 강박 장애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개인 및 가족 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서울대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 분자신경생물학 연구소에서 연수했으며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과장을 역임했다.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심리 치료에도 관심이 많고 칼 구스타프 융과 동서양 철학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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