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의미가 있다. 50대 중반인 주부 Q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 때는 괜찮다가 혼자 집에 있으면 답답하고 미칠 것 같다. 애들이 어릴 때 남편의 외도로 힘들었으나 양육과 교육에 전념하며 참고 힘든 시간을 잘 견뎌 냈다. 

극성스럽게 쫓아다니며 공부시킨 덕에 아들딸 모두 좋은 대학을 나와 괜찮은 직장에 다닌다. 남들은 모두 잘 키웠다고 부러워하지만 둘 다 결혼해 각자 살기에 바쁘다. 

대기업 이사로 있다 퇴직한 남편을 보면 초라해 보이고 짜증이 난다. 요즈음 남편은 예전과 달리 아내의 눈치를 보고 기분을 맞춰 주려 한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더 보기 싫다. 

동창 모임에서 요즘 네 남편 뭐하냐는 질문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간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허망한 느낌이 들고 혼자만 바보가 된 이유를 알 수 없는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하고 괜히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할 때가 있다. 입맛도 없고 모두 재미가 없다. 

오래 걸으면 무릎이 아파 즐기던 골프도 계속하기 어렵다. 몸도 예전 같지 않은데 돌 지난 손주까지 보자니 너무 힘들다. 잠들기도 어렵고 자다가도 자주 깬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더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앞서고 서러운 느낌에 눈물이 난다. 

남들은 잘 사는 줄 알지만 모아 둔 돈도 넉넉지 않아 걱정이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 마음이나 함께 갈 사람이 없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심리 치료사의 말이 그리 와닿지 않는다. 

금융 회사 중역인 J는 40대 중반으로 일밖에 모른다. 일에 관한 한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최근 회사 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사람이 달라졌다. 불안해하고 말수도 없어지고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곤 한다. 

누군가 자신을 도청하고 감시한다고 하고, 회사에 큰일이 날 것 같다고 말한다. 아내에 따르면 검찰 조사는 무혐의 처분을 받아 별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집에서도 잠을 못 자고 안절부 절못하면서 괴로워한다. 자기 때문에 동료들이 피해 본다며 걱정하기도 하고 죽고 싶다고 말한다. 식사도 거의 못해 체중도 감소했다. 

기분 장애는 우울증(주요 우울 장애)과 조울병(양극성 장애)으로 나눌 수 있다. 우울증에 조증이 동반되면 조울증이라 부른다. 우울증은 주변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다. 대략 100명 중 5~10명 정도가 우울증을 경험하고 3~5명은 치료를 해야 하는 중증 우울증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중에도 우울증을 앓은 사람이 매우 많다.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 해방에 앞장선 링컨이 심각한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널려 알려져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도 우울증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에릭 카멘(Eric Carmen)의 노래 ‘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의 원곡으로도 유명한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우울증에서 회복되면서 자신을 치료해 준 정신과 의사에게 헌정한 곡으로 유명하다. 천재 물리 학자 아이작 뉴턴 역시 50대에 들어서면서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심각한 우울증을 앓은 것으로 보인다. 

*출처= 책 '성격과 삶'
*출처= 책 '성격과 삶'

기분이 우울해지면 의욕이 저하되고 무기력해질 뿐만 아니라 만사가 귀찮고 재미도 없어진다.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지고 공허한 느낌이 든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싫어 피하게 된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자신이 보잘것없거나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자존감이 저하된 것이다. 불안하고 괜한 걱정이 많아지고 이를 되새기게 된다. 

지나간 일 중에서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잘못한 일만 떠오르고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죄책감에 시달린다. 앞으로도 뭔가 계속 잘못되거나 책임질 일이 생길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 하다. 과민해지고 안절부절못하기도 한다.

기분이 우울하고 불안할 뿐만 아니라 인지 기능도 저하된 느낌이 든다. 일하는 데 집중이 안 되고 책을 봐도 머릿속에 입력이 되지 않는다. 주의력과 기억력이 현저히 저하된 느낌이 들고 자신이 멍청해진 것 같다. 혹시 치매가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다. 

우울해지면 기분이나 생각뿐만 아니라 수면과 식욕 같은 생리적 현상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잠들기 어렵거나 자다 자주 깨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잠이 너무 많아질 수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지면서 지각을 하기도 한다. 식욕도 저하되고 식사량이 줄어들면서 체중이 감소하기도 한다. 반대로 식욕이 증가하는 예도 있다. 

이 세상에 혼자만 동떨어진 느낌이 들고, 사는 것이 괴롭고, 살아서 뭐하나 싶고, 가족이나 동료에게 부담만 주는 것 같고, 나만 죽으면 그만인데 죽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망상이나 환청 같은 정신병적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자신과 상관없는 것을 자신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관계 망상, 누가 감시하거나 해코지한다는 피해망상, 잘못을 저질렀거나 죄를 지었다는 죄책 망상 또는 몹쓸 병에 걸렸다는 건강 염려 망상이 우울증에 동반될 수 있다. 

조현병 환자처럼 환청을 체험할 수도 있다. 망상이나 환청이 동반될 경우 흔히 조현병으로 오진한다. J도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된 우울증으로 볼 수 있다.  <계속>

글 | 김창윤 교수

울산대 의과 대학,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교수. 조현병, 조울증, 강박 장애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개인 및 가족 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서울대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 분자신경생물학 연구소에서 연수했으며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과장을 역임했다.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심리 치료에도 관심이 많고 칼 구스타프 융과 동서양 철학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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