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 장애는 지나치다거나 비합리적임을 알면서도 잘 조절되지 않는 반복적 생각(강박 사고)이나 행동(강박 행동)을 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21세 C의 가족들은 그녀와 같이 못 살겠다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에 들어가면 손을 씻느라 나올 생각을 안 하는 데다가 샤워는 기본이 한 시간이고 어쩔 때는 두세 시간도 걸린다. 대충 하라고 하면 흥분하고 화를 낸다. 자신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C는 약속 시간에 지각하기 일쑤다. 나갈 때는 가스 불과 전기 스위치를 껐는지, 방문을 닫았는지 항상 확인해야 하고, 현관문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확인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기 때문이다. 매번 같은 횟수만큼 확인해야 한다. 

한여름에도 흰 장갑을 끼고 다닌다. 문을 열 때 손잡이를 만지다 병균에 오염될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23세 대학생 D는 중학교 때 못된 친구에게 당한 굴욕적 경험이 있다. 이후 그 일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견디기 어렵다. 좋은 생각으로 기억을 없애려다 보면 보통 두세 시간은 걸려 기운이 다 빠져 버린다. 

길거리를 지나다 뾰족한 물건만 보면 피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해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또 지나가는 여자를 자신도 모르게 건드려서 성추행범으로 몰릴까 두렵다고 한다.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의 강박 증상을 보일 수 있으나 그 정도가 지나쳐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이면 ‘강박 장애’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철학자 칸트도 강박적 성향이 있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산책하고, 질서와 정해진 규칙에 따르기를 좋아했다. 강의 도중 한 학생의 새로 단 단추가 신경 쓰이자 옷에서 단추를 떼면 안 되느냐는 말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칸트는 강박적 성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강박 장애라고 부를 정도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모차르트도 잠들기 전에 문밖에 누가 있는지 반 시간가량 확인 하는 강박 증상을 보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강박 장애의 경우 강박적 성격을 지닐 가능성이 크지만 모두가 강박적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다. 강박적 성격이라고 다 강박 장애 환자도 아니다. 강박 장애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신 질환인데 평생 강박 장애를 경험할 확률은 2~4퍼센트 정도다. 

강박 장애는 뇌의 전두엽, 선조체, 시상을 연결하는 신경 회로의 미묘한 기능 변화 또는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의 이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아직 정확한 생물학적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다.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도 병의 발생과 악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강박 증상이 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음란한 동영상을 본 후 불결한 성관계에 대한 강박적 생각이 들고 이를 없애고자 강박적 행동을 하는 경우다. 

행동주의 관점에서는 강박 증상을 나름 불안을 없애는 방법으로 학습된 것으로 설명한다. 강박 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은 C처럼 불결한 것에 오염되었을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손을 반복적으로 씻거나 닦는 행동과 제대로 했는지 반복해서 확인하는 행동이다. 

◇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 중 주인공 맬빈은 식당에 갈 때 일회용 식기를 가지고 다닌다.   *출처=영화 캡쳐
◇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 중 주인공 맬빈은 식당에 갈 때 일회용 식기를 가지고 다닌다.   *출처=영화 캡쳐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보면 주인공 잭 니콜슨이 분한 멜빈 유달이 문단속과 전기 스위치를 껐다 켰다를 반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숫자를 세면서 일정 횟수만큼 반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길을 걸으며 보도블록 선을 밟지 않으려 하고, 사람들이 몸에 닿을까 피하며 걷는 행동도 보여 준다. 손을 반복해서 씻고 레스토랑에서 자신이 준비한 일회용 숟가락과 포크를 사용하는 장면은 강박 장애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 준다. 

멜빈 유달은 긍정적 감정 표현에 인색한 독설가로 그려지는데, 이 또한 강박 장애 환자에게서 흔히 관찰할 수 있는 특성이다. D처럼 스스로 비합리적임을 알면서도 특정 생각(또는 모습이나 충동)에 집착하면서 특정 생각을 없애려 하는 경우도 강박 증상이다. 

예를 들면, 잘못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지나친 걱정, 원치 않는 성적인 생각, 다른 사람을 해칠지 모른다는 생각, 부끄럽고 죄책감을 유발하는 생각을 머릿속에 되새기면서 이러한 불안을 없애기 위해 어떤 행동(강박 행동)이나 생각을 반복한다. 

어떤 일을 특정한 방식이나 순서로 해야만 하거나 신체 일부의 모습이나 기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도 강박 증상에 속한다. 진단은 면담을 통해 파악한 병력과 임상 정보를 종합하여 강박 장애를 진단하게 된다. 

강박 장애는 다른 정신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강박 장애 환자 중 33퍼센트 정도가 우울증을 동반 하고, 이 외에도 투레트 장애(만성적으로 몸의 일부 근육이 갑자기 움직이는 틱 증상을 보이는 질환), 식이 장애, 사회 공포증, 공황 장애 등이 동반될 수 있다. 

조현병 등의 정신증 초기에 강박 장애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고, 심한 강박 증상은 망상과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강박 장애의 치료는 약물 치료와 심리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가 장 효과적이다. 

뇌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을 조절하는 항우울제가 임상 연구 결과 강박 장애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물 치료 후 50~70퍼센트의 환자가 증상 호전을 보인다. 심리 치료로는 인지 행동 치료, 수용 전념 치료, 역동적 정신 치료, 실존적 치료, 의미 치료 등을 시행할 수 있다.  <계속>

글 | 김창윤 교수

울산대 의과 대학,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교수. 조현병, 조울증, 강박 장애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개인 및 가족 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서울대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 분자신경생물학 연구소에서 연수했으며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과장을 역임했다.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심리 치료에도 관심이 많고 칼 구스타프 융과 동서양 철학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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