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 살면서 속상하고 힘들 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 갈 수는 있으나 실행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자살을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사회에서 소외될 때(이기적 자살, 실직), 집단 가치에 동조할 때(이타적 자살, 순국열사), 사회적 가치관의 기반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울 때(아노미적 자살, 경술국치 후 애국지사), 사회적 억압이 심할 때(숙명적 자살, 노예나 죄수) 자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 만큼 뒤르켐의 주장처럼 자살이 사회적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자살은 대부분 지극히 개인적이다. 사회적 현상을 개개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소외감도 느끼고, 집단에 동조도 하고, 고통의 정도도 달라지고, 아노미도 겪게 되는 것이다. 

자살 시도는 대부분 우울한 상태에서 감행된다. 자꾸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우선 우울증은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신 분석학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내면으로 향할 때 자살 충동을 느낄 수 있다고 보고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기전으로 설명한다. 

아들러는 자살을 죽음의 책임을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이고 비난 또는 복수의 표현이라고 했다. 

자살 연구의 대가 에드윈 슈나이드먼(Edwin Shneidman)은 자살을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보았다. 좌절과 분노, 수치심, 모멸감, 죄책감, 쓸모없는 사람이 된 느낌, 공허감, 무기력감, 절망감 등이 자살을 생각하게 하는 심리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너무 괴로운데 달리 해결책이 없어 스스로 죽겠다는 사람을 애써 말릴 필요가 있는지 질문받은 적이 있다. 자살을 말리는 첫째 이유가 바로 그 질문에 들어 있다. 자살은 사실 죽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살고 싶은데 사는 게 여의치 않고 괴롭기 때문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 양가적 태도를 지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자살 시도는 절망감에서 도움을 바라는 의사 표현일 수 있다. 자살을 시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이며 누군가에 의해 발견 되어 구해지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이유는, 자살에 이르게 하는 생각이 적절하지 않고, 관점을 변경하거나 시간이 흘러 상황이 바뀌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울증의 경우 기분이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진다. 

세 번째 이유는, 자살 시도자의 생각과 달리 자살이 정신적 고통을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좌절과 분노, 수치심이나 죄책감, 해결책이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다. 죽음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고 믿지만 죽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살은 단지 고통스러운 상황을 잠시 잊게 할 뿐이다. 본인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자살은 남겨진 가족의 마음속에 말 못할 상처로 남게 된다. 해결하지 못한 일도 고스란히 누군가의 몫으로 남는다. 

좌절에 대한 분노는 죽음 외에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치심이나 죄책감도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절망적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은 일단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삶의 부정적인 면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나 그렇다고 어려운 상황이 영원히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옳지 않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는 것이 《주역》에서 말하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 추운 겨울에 봄이 올 것 같지 않아도 반드시 봄은 오는 법이다. <유 머스트 빌리브 인 스프링>의 가사처럼 봄이 온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절망적 상황은 종교적 믿음을 가져 볼 때이기도 하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자신을 쓸모없고 무능한 패배자로 느낀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담만 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상담가가 과거에 잘한 일들을 상기시키며 자존감을 올려 주려 하나, 소용없는 일이다. 과거 좋았을 때는 그때 어쩌다 잠깐 운이 좋아서 된 일이고 앞으로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궁극적인 존재 가치가 외적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데 있다. 조건 없이,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실존적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냥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이 해야 할 일이고 주위 사람을 도와주는 일인 것이다.  <계속>

글 | 김창윤 교수

울산대 의과 대학,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교수. 조현병, 조울증, 강박 장애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개인 및 가족 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서울대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 분자신경생물학 연구소에서 연수했으며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과장을 역임했다.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심리 치료에도 관심이 많고 칼 구스타프 융과 동서양 철학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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