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borderline) 인격 장애의 특징은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해서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불안정하고 기분도 오르내린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면 기분도 좋다. 그러나 어느 순간 초라한 느낌이 들면 사는 게 모두 공허하다는 느낌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며 실제 자해를 시도하기도 한다. 

대인 관계가 좋다가 갑자기 분노를 폭발하고 적대적으로 돌변한다. 과거 상처받은 일을 되새기며 집요하게 원초적 수준의 분노를 보이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연극성 인격 장애나 자기애성 인격 장애와 비슷한 점도 많지만,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하여 예측하기 어렵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만성적으로 공허감을 호소하는 점 등이 다르다. 

반사회적 성격과 달리,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주변 사람을 괴롭힌다.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점도 반사회적 성격과는 다른 점이다. 

◇ 미국에서 제작된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공포, 스릴러 영화 《위험한 정사》(1987)의 한 장면   *출처=Paramount Pictures Corporation
◇ 미국에서 제작된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공포, 스릴러 영화 《위험한 정사》(1987)의 한 장면   *출처=Paramount Pictures Corporation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위험한 정사>(1987)에서는 독신녀 알렉스가 전형적인 경계선 인격 장애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녀는 변호사 댄 갤리거와 하룻밤 정사를 나눈다. 이후 알렉스는 댄이 헤어질 것을 요구하나 거부하고 계속 주위를 맴돌면서 지속적인 협박과 자해로 그를 괴롭힌다. 

경계선 인격 장애는 상대에게 거부당하면 원초적 수준의 적개심과 분노를 표출하거나 자해 행위를 보이곤 한다. 경계선 인격 장애는 성격 문제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기분 장애인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 1999년 개봉한 미국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

제임스 맨골드 감독,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1999)는 수잔나 케이슨이란 여성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자살 시도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18세의 주인공 수잔나 케이슨은 경계선 인격 장애라는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영화 속 수잔나 케이슨은 삶에 대한 고민과 내적 갈등은 있으나 작가가 되길 희망하며 정체성에 대한 혼란 없이 비교적 일관되고 안정적인 대인 관계를 지속하는 점에서 경계선 인격 장애보다는 기분 장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신 분석이 한창 주목받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 우울증이나 조증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현대적 개념의 기분 장애보다는 정신 분석 이론에 바탕을 둔 경계선 인격 장애 진단을 선호했을 가능성이 있다. 

자살 시도뿐만 아니라 졸업식장에서 멍한 표정으로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는 행동은 우울증에서 흔히 보일 수 있는 증상이다. 

수잔나 케이슨과 함께 정신 병원을 탈출한 리사의 경우가 오히려 안하무인에 제멋대로 행동하고, 타인을 조종하며 원초적 감정 표현과 극단적인 행동을 하여 경계선 인격 장애처럼 보이나 양극성 장애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리사는 영화에서 양극성 장애로 진단을 받는데, 수잔나와 리사 모두 경계선 인격 장애와 양극성 장애의 감별이 쉽지 않음을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경계선 인격 장애는 치료가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기분 장애의 경우 적절한 약물 치료로 어렵지 않게 좋아지고 안정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경계선 인격 장애를 기분 장애와 구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험이 많고 유능한 정신과 의사의 진단과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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