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일상에 별일이 없을 때는 정견이 잘되는데 힘들거나 큰 경계가 찾아오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주체가 돼서 정견을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공부하면 반드시 자기 그릇이 가진 한계를 못 넘어섭니다. 힘들고 두려운 경계가 오면 어느새 공부가 저만치 달아납니다. 그리고 두려움과 고통에 벌벌 떨거나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입니다.

진짜 정견은 나를 비운 채 가만히 마음속의 소란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내가 뭘 한다는 생각 없이 그냥 자연스러운 내면의 시선으로 볼 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떠난 적 없는 내적 시선으로. 아는 것은 아는 대로 인정하고 허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그 아는 것조차도 붙잡거나 정리하지 않고 흘려보냅니다. 이렇게 저절로 아는 것에 내맡겨보세요. 마침내 온 세상이 그 눈眼 하나로 다 삼켜질 때까지.

힘들면 힘들 뿐이고 아프면 아플 뿐이므로 저항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맞이하세요. 마치 벌판에 서 있는 나무들이 온갖 풍파를 피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내듯이. 나무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성장합니다.

그러다 보면 마침내 세상을 감싸고 흐르는 공의 진리에 깨어나게 됩니다. 일체는 이 법계 우주에 환영처럼 나타났다가 얼마 후 사라진다는 것을. 아무것도 스스로 머무는 것 없이 모든 게 다 이러할 뿐입니다.

이런 생각조차도 다시 바로 보고 비워보세요. 그러면 일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영원한 진리 자리가 드러납니다. 그 이름이 불성이며 본래 면목, 하나님, 부처님, 참나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무엇을 어쩐다며 공부하고 얻으려 하지 마세요. 그러면 반드시 모르는 것과 얻어야 할 게 대상화되어 생겨납니다. 내가 없으면 이미 모든 게 다 이 자리에 갖춰져 있습니다. 일체 법상을 다 내려놓고 참으로 이 자리와 계합하면 될 뿐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알고 싶으면 절로 알아지고 얻고 싶으면 절로 얻어집니다. 이것이 나 아닌 생명이 일체로 나타나 사는 소식처입니다. 내가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나를 비우고 본래 있던 생명의식 자리가 스스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뿐입니다.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서울대학교 미대를 다니다가 진리를 얻기 위해 출가했으나 세상으로 돌아와 전문 직업을 구해 변리사가 되었다. 지금은 직원 백 명이 넘는 <한양특허법인>의 대표 변리사로 수십 명의 변리사, 변호사와 함께 글로벌 기업들의 지적재산권 업무를 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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