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하나님, 부처님인 영원하고 무한한 생명이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절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동그라미 O자리라고 표현해봅시다.

중생범부도 사실은 이미 이것과 늘 하나로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이것으로서 자기 눈앞의 의식 세계를 각각 인식하고 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우리는 자신을 자각하진 못해도 O자리 그대로를 자주 느끼고 본연의 생명 능력을 발현하며 근심·걱정 없이 밝고 투명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번잡한 생각 속에 온갖 세상 짐을 혼자 다 짊어진 양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연이 되어 마음공부를 하게 된다면 처음엔 도(법이라고도하며 주로 소에 비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1단계인 심우尋牛인 것이지요.

그러다 좋은 인연을 만나면 문득 소 발자국見跡을 보게 됩니다. 그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드디어 소를 보게 되니 이걸 견우見牛라 합니다.

발자국을 따라간다 함은 일상에서 매 순간 정견 명상을 지속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직 소 따로 나 따로 보는 행위도 각각입니다. 흔히 사이비라고 칭하는 가짜 도인들이 이 단계에서 에고를 소보다 더 중시함으로 나타납니다.

더 나아가 정견이 끊어지지 않고 일상화되면 드디어 소의 코에 고삐를 매서 소를 얻게 됩니다. 이걸 득우得牛라고 하지요. 일상에서 오온개공을 보는 시간이 그걸 놓치는 시간보다 더 많아졌다는 말입니다. 이제 겨우 마음에 심안이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오온에 끌려가는 순간이 때때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완전히 사라지도록 길들이는 것을 훈련시킨다는 뜻으로 목우牧牛라고 합니다. 목우가 성숙해져서 소를 풀어놓아도 어디론가 가지 않고 조용히 풀을 뜯고 제자리에 있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길들여지면 이제 소가 가자는 대로 맡겨놓아도 엉뚱한 데로 가지 않고 집과 논밭을 익숙하게 오갑니다. 이것을 소를 타고 소에게 일체를 내맡기는 평안한 경지라 해서 기우귀가騎牛歸家라고 합니다. 이것은 항상 오온개공을 보는 것이 탈 없이 잘되는 경지입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닙니다. 소를 보면서 저게 법이라 하는 마음조차 사라져야 하는데 그것을 망우존인亡牛存人이라 합니다. 즉 오온개공을 본다는 마음조차 쉬게 되고 무심해져서 오온개공이 그대로 생활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법공法空이라고도 합니다.

그다음으로 인우구망人牛俱忘의 단계가 있는데 이것은 소를 보면서 나란 관점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야 비로소 아공법공이 동시에 이루어지니 인우구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우구망 단계가 되면 비로소 참 O자리가 확연해지기 시작합니다. 그전에는 O자리 속에 생멸하는 오온 현상에 속아 이런저런 망상에 현혹되거나 뭔가를 O자리라고 착각하는 실수를 범하기가 쉽습니다. O자리가 늘 명철하지 않으면 아직은 초견성이고 확철대오해야 비로소 견성見性입니다.

그 다음은 반본환원返本還元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선 비로소 이미 진리인 O자리가 본래 나였고 그것밖에 없었으며 그 자리가 살아서 움직이는 게 나요, 세상 만물이고 우주 전체란 진실에 눈뜨게 됩니다. 시공간이 일체 다 꿈이며 3차원이 모두 환영 세계임을 여실히 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입전수수入廛垂手 단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견성 후 보림 단계이며 중생구제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생이라고 따로 보여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O자리로 사는 자체가 주변에 반향을 일으키고 가르침이 되므로 그냥 사는 이대로가 여법한 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십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법)도 아니고 소를 찾는 사람도 아닙니다. 사실 본래 생명의식 자리인 O자리만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뿐 그전의 사람이나 소(법)는 나타났다가 사라져야 할 분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땐 나란 생각 개념이나 진리가 뭐라는 법이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다 말을 배우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능력들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나나 진리법이란 생각조차도 우리가 만든 생각과 관념 속의 분별망상이며 영원히 실재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갓난아기나 치매환자에겐 나란 생각이 없다는 것이 이 진실을 증명합니다.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서울대학교 미대를 다니다가 진리를 얻기 위해 출가했으나 세상으로 돌아와 전문 직업을 구해 변리사가 되었다. 지금은 직원 백 명이 넘는 <한양특허법인>의 대표 변리사로 수십 명의 변리사, 변호사와 함께 글로벌 기업들의 지적재산권 업무를 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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