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를 한다면서 관념으로 공空만 알지 색色의 창조 영역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삶 전체가 살아 있지만 머무르지 않고 비어 있는 채로 흐르는 마음의 활동임을 보았단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만 붙잡고 있으면 그 또한 법이란 미세망념이 되어 실상을 가리는 커튼이 되고 오래 묵으면 허무감으로 변합니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하란 말은 공을 보았으면 능동적으로 창조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활짝 깨어나서 관념의 법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다양한 창조력은 신선한 생명의 영역입니다.

누구나 깨달았든 그렇지 않든 감동받으면 본능적으로 눈물을 흘리고 아름다움 앞에선 할 말을 잃습니다. 공명·공감하는 마음속에선 평소 자기가 하지 못하던 생각과 느낌도 체험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마음이란 존재 자체를 경이로운 눈길로 다시 보세요. 진정으로 깨어났다면 일체가 영원하지 않고 곧 사라지기에 아쉽고 허무다고만 할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공성이 모든 창조의 원천이자 바탕인 캔버스가 된다는 기막힌 진실과 모든 존재에게 본래 주어진 마음의 불가사의함에 눈떠야 합니다.

일체유심조(마음이 모든 것을 창조한다)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진실로 일체의 생각·관념에서 자유로워져 어린아이처럼 된다면 공은 허무한 게 아니라 더 많은 창조를 해보기 위한 체험의 한마당임을 압니다. 아이들은 본래 살아 있는 공성의 마음이라서 허무와 삶이란 존재의 무게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공을 깨달았다 하면서 일체가 허망하다는 허무감이나 우울감에 빠져 있다면 그는 아직 진정한 공과는 거리가 먼 자기 번뇌 망념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애들은 천진난만함을 지키고 유지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항상 그러합니다.

우리 본성도 마찬가지로 이미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흙·조개·나뭇잎·풀만 가지고도 소꿉장난하며 잘 놀듯이 진실로 깨어난 사람은 마음만 가지고도 잘 놀 수 있습니다.지금 여기 스스로 빛나는 각성의 마음이 없다면 세상은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맞이했던 장엄한 아침 햇살이나 저녁 황혼을 잊지 못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아무리 힘든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우주 법신의 광명과 정신에 대한 체험만으로도 내 삶은 이미 한껏 축복받고 감동받았음을 스스로 인식합니다. 모든 것은 장대하고도 신령한 대광명 안에 안겨 있습니다.

그때 내 마음속에 각인된 세상 전체를 휘감은 미묘한 빛의 아름다움은 내 영혼을 송두리째 넘치는 은총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면 과연 그 아름다움을 고귀한 체험으로 내면 깊숙이 간직할 수 있었을까요?

나는 이런 체험을 인식하고 자각할 수 있는 의식의 경이로운 능력 앞에 나 자신을 내맡깁니다. 이 자리가 곧 신이요 부처님 자리이기 때문이지요.

과거 한순간의 훌륭한 자연미 때문이 아니라 이 삶을 통해 너무나 다채로운 체험과 창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내 마음의 능력이 곧 신을 닮게 창조되었다는 우리의 참모습이 아닐까 싶어 그 경이로움에 조용히 감동받을 때가 많습니다.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서울대학교 미대를 다니다가 진리를 얻기 위해 출가했으나 세상으로 돌아와 전문 직업을 구해 변리사가 되었다. 지금은 직원 백 명이 넘는 <한양특허법인>의 대표 변리사로 수십 명의 변리사, 변호사와 함께 글로벌 기업들의 지적재산권 업무를 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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