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피곤하거나 지루할 때면 기분을 새롭게 하기 위해 좋아하는 음악을 자주 듣곤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내가 혹은 누가 어떤 제목의 음악을 듣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진실로 누가 있어서, 무엇을, 어떤 행위를 해서 음악이 들리는 것일까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한다. 주어, 목적어, 동사가 존재하지만 사실 자체로 보면 그런 것은 우리의 주관적인 생각이 만든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일어나는 일을 그렇게 상상하고 분리·분해해서 이름 지어 생각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을 한번 자세히 살펴봅시다.

우리가 어떤 음악을 심취해서 들을 때 실제로 듣는 자(주체)는 사라지고 그 순간에는 오직 음악만이 홀로 흐르고 있습니 다. 이것은 일상에서 뭔가에 몰두할 때 종종 체험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일수록 몰입하게 되고 몰입은 그런 합일상태를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커피를 깊이 음미할 때 거기서 나라는 것은 단지 생각 속에만 있을 뿐 실제로는 커피 맛만이 홀로 팩트fact로 존재합니다.

화장실에서 큰일을 볼 때도 실제로는 시원한 배설감 혹은 답답하게 막힌 느낌 오직 그것만이 존재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란 단지 생각·느낌·감정의 묶음 위에 가상적 생각으로 세워진 이름뿐인 허구의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알던 ‘나’는 이처럼 사실로는 실재하지 않는 개념 속 가상의 존재입니다. 나를 세밀히 관찰해보면 ‘생각+감각+감정’의 복합적이고도 추상적인 상상의 산물일 뿐 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나란 본래 없다(무아)’라는 진실을 발견하고 그것이 사실이라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란 생명 현상은 분명히 지금 여기 있는데 대체 진실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과연 정체가 무엇이며 왜 지금 여기에 이렇게 아리송하게 존재할까요? 우리가 알던 세상의 실체 이면에는 오직 무한한 생명력과 에너지의 바다만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며 영원히 넘실대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신神, 부처, 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빨리 진리를 찾으려면 역발상으로 봐야 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진리를 찾는 게 아니라 나의 환상성을 직시함으로써 비로소 내가 있다는 꿈(환상)에서 깨어나 있는 그대로의 진짜 사실을 본다고 말입니다.

사실은 유한한 물질 몸속의 생명 현상만이 있을 뿐 개념적인 나란 것은 애초에 따로 없었습니다. 그저 지금 나란 생명력에 의지하는 생각·감정·감각 현상만이 생멸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너무 허무해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우리의 참된 정체는 바로 그렇게 존재하는 신이며 부처이며 우주이며 진리 그 자체이니까요. 나란 개체는 진리인 전체 자리가 일으키고 그의 잠재적 능으로 잠시 체험하는 경이로운 현상일 뿐입니다. 마치 커다란 벚꽃나무에 무수한 벚꽃이 나무의 생명력으로 만개하듯이 그렇게 나타난 존재가 바로 당신입니다.

마음공부란 이런 자신의 본질을 바로 깨닫고, 나란 꿈에서 깨어나 본래의 존재 상태인 참된 면목을 되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기 위해 수행이 필요한 게 아니고 다만 한순간 정견을 통해 깨어나는 체험이 필요합니다.

비밀은 생명이 움직이는 현상인 일상의 매 순간에 이미 은밀하게 들어 있습니다. 음악을 듣는 자는 단지 개념이고 생각일 뿐 애초 따로 없었으며 행위를 하는 자도 따로 없습니다. 오직 태초부터 홀로 있는 생명 현상 자리에서 지금 음악이란 체험이 일어날 뿐입니다.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서울대학교 미대를 다니다가 진리를 얻기 위해 출가했으나 세상으로 돌아와 전문 직업을 구해 변리사가 되었다. 지금은 직원 백 명이 넘는 <한양특허법인>의 대표 변리사로 수십 명의 변리사, 변호사와 함께 글로벌 기업들의 지적재산권 업무를 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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