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남도일보
*출처= 남도일보

중학교 시절 나는 작은 아버지가 살던 수락산 근처의 빈민촌을 자주 찾아갔었다. 블록담에 슬레이트를 얹은 창고 같은 건물들이 얼굴을 맞대고 들판에 줄지어 있었다. 가난한 회사원이었던 아버지는 힘들게 사는 동생을 안타까워 하면서 정기적으로 내가 그 집에 들르게 했다.

혹시라도 아들이 빈민촌에 사는 친척을 멀리할까 봐 그랬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극빈의 생활을 직접 체험한 셈이다. 그 동네 공동변소 앞 끝없는 줄 끝에 함께 서보기도 했다.

그곳 아이들과 같이 놀기도 했다. 물질적 가난만이 아니라 그곳 아이들은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있었다. 주먹으로 서열을 정하고 산 위의 굴에 모여 공동생활을 하기도 했다. 빈민가에서는 싸움과 강간이 수시로 일어났다.

이따금씩 순찰을 와서 집집마다 문을 열고 살펴보는 경찰관의 눈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건 독사의 눈이었다. 관내 파출소 경찰은 사고가 터지면 순번을 정해놓고 건달 아이들을 끌고 가 범인이 되라고 했다.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신문에서 그 지역의 조직폭력배들이 전쟁을 벌여 잔인한 살인극이 벌어졌다는 기사를 봤다. 그곳은 이미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의 숲을 이루고 유흥업소의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는 지역이 됐다.

그 며칠 후 그 지역 폭력조직의 두목이라는 남자가 나의 법률사무소로 찾아왔다. 내가 소년 시절 갔었던 빈민촌에서 자라났던 나보다 세 살 어린 아이였다. 내 사촌동생들의 친구였다. 그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폭력조직을 만든 것 같았다.

그 지역이 개발되면서 유흥업소부터 시작해서 여러 이권이 생겼는데 호남의 폭력조직에게 이권을 빼앗기기 싫었다고 했다. 그들의 범행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가슴이 섬찟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청부살인부터 시작해서 범죄의 백화점이었다.

어떤 조직원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밤이면 골목길을 배회했다고 했다. 담력을 키우기 위해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들의 뒷통수를 깠다고 했다. 세상을 경악하게 했던 지존파의 범행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은 공권력에까지 도전했다. 형사를 데려다가 무릎을 꿇리고 폭행을 했다. 평소 그들의 향응과 뇌물을 받은 형사는 그들에게 굴복했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악인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 마음속에 악마를 불러들이는 기도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비참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커서도 배우지 못해 바닥의 삶을 살았던 그들의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조직의 두목은 나를 찾아올 때 고급외제승용차를 타고 값비싼 옷을 훈장같이 입고 왔다.

부하들이 뒤에서 옆에서 모시는 것을 성공한 것으로 생각했다. 어느 날 그들이 일망타진이 되고 모두 구속되어 법정에 섰다. 그들은 법정에서도 목이 빳빳했다. 두목은 변호사인 내게 절대로 어린시절의 환경 얘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사형을 당하더라도 그 얘기를 해서 동정을 받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검사에게 덤볐다. 자기네가 사적으로 검사를 만나면 오분 안에 총구 앞에서 벌벌 떠는 개같이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예상대로 그들 대부분에게 사형이 구형됐다.

나는 하나님이 세상에 왜 그렇게 많은 악인을 만드는지 그 이유를 몰라 답답했다. 별별 소리가 다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악인이 존재하는 이유는 선인을 낳기 위한 필요성 때문이라고 했다. 악인이 없는 세상에 참된 선인은 없다는 것이다. 악인은 이 세상에 결코 쓸데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사용되어 하늘의 섭리를 돕고 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많은 악인이 있어서 나쁜 짓을 많이 꾸미기 때문에 비로서 선인이 선인으로 돋보이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악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무한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나타내기 위해 악인을 만든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할 수 없는 악인은 없으므로. 우리는 악인이 많은 이 세상에 보내진 것도 감사해야 한다고 하는 말도 있었다. 나는 도무지 그런 이론들을 납득 할 수 없었다.

다 꾸며진 회색이론이고 성직자의 흰 손으로 기록된 공허한 말 같았다. 그 때 변호를 하다가 배경에서 조용히 활동하는 이상한 남자 한명을 보았다. 두목과 빈민촌에서 같이 자란 친구였다. 시인이라는 그는 강원도 산골 마을의 퇴락한 농가를 빌려 살고 있었다.

싸늘한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두목을 진심으로 돕는 인물이었다. 어느 날 그 시인의 시골집을 찾아갔었다. 토담방 옆에 간이부엌이 보였다. 각목 위에 선라이트를 얹어 비를 막았다. 흙바닥에 놓인 바라크벽돌위에 가스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가난하게 자란 그의 계속되는 궁핍이 짐작됐다. 신김치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다가 그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어렵고 힘들게 컸으면 그만큼 자존심이 있는 인간이 되야지 잡초같은 인생이 되야 하겠습니까? 그 친구가 조폭 두목이 되면서 고급승용차를 타고 폼을 잡더라구요. 없이 산 놈이면 겸손해야 하는 데 튀니까 노리고 있던 사람들이 잡아간거죠.”

그는 친구의 행동을 아주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이년 전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일어나 보니까 앞이 전혀 안보이는 거예요. 병원에 갔더니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막연했죠. 칠면조나 키우고 시나 쓴다는 놈이 어디 돈이 있겠어요? 집사람 역시 시골에서 하루 일해주고 품삯을 받은 처진데요.

그런데 내 소식을 우연히 들은 그 친구가 급히 와서 저를 수술시켜 줬어요. 저는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합니다. 그때 그 친구가 나를 보고 말했어요. 설악산 가는 길에 찻집을 하나 차려줄 테니 그걸 하면서 시를 쓰라구요. 이제 제가 할 일은 세상이 돌 팔매질을 하고 그 친구가 사형을 당해도 그 친구 뒤를 돌봐주는 거예요.”

나는 잔인한 범죄 세계의 이면에 있는 개결한 자존심과 따뜻한 우정을 보았다. 조폭 두목의 어두움과 상대적으로 친구 시인의 밝은 빛을 보았다. 같은 뿌리에서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줄기가 나온 것 같았다.

나쁜 짓과 어둠이 깊을수록 착한 시인이 더욱 돋보이는 것 같았다. 영혼이 맑은 인간은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다. 흙탕물 속에서 연꽃은 피어났다. 악인은 선인을 선인답게 만들기 위한 그분 무대의 조연으로 필요한가 보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해 봤다.

글 | 엄상익 변호사

경기중-고, 고려대 법대를 나오고 제24회 사법시험(1982)에 합격했다. 6공 때,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특별보좌관실에 근무하며 권부의 이면을 보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대도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등 사회 이목을 끌은 대형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월간조선을 비롯,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했고 수필집, 장편 소설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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