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 만남을 가지던 고등학교 후배의 부인이 나를 찾아왔다. 그 후배는 일 년 전쯤 갑자기 자살을 했었다. 죽은 그의 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며칠 전 집에 혼자 있는데 갑자기 뭔가 내 몸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는 내가 갑자기 울더라구요. 통곡을 하는 데 그게 내가 우는 게 아닌 것 같았어요. 내 속은 멀쩡한데 몸은 막 울고 있더라구요. 내가 알아챘어요. 나한테 빙의한 남편이 억울하다고 우는 거예요.”

그녀의 남편은 갑자기 뭔가에 몰리다 쫓기듯이 사라진 후 몇 시간 후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었다. 머리가 비상했던 그는 아이디어도 많았고 포부도 컸다. 그는 비상한 능력으로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의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큰 사업조직이 됐다.

그는 높은 꿈에 닿아있는 나선형의 계단을 밟아 올라가다가 어느순간 날개도 없이 허공에서 추락을 한 것 같았다. 그는 집착이 강한 사람이었다. 죽어서도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몸이 사라진 자신을 보면서 통곡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딱한 입장이 된 그의 영혼이 위로 받을 방법은 없을까.

내가 존경하는 백년전을 살았던 현자의 체험을 적은 책을 살펴봤다. 그런 부분이 있었다. 간단한 내용은 이랬다. 현자의 아버지가 죽었다. 아버지의 죽음 후에 그는 더 가까이 있는 아버지의 존재를 발견했다.

장례 후에 아버지와 아들은 완전히 영으로 하나가 되었다. 아버지의 육신은 죽었지만 영으로 아들과 함께 있으면서 아들을 도왔다. 영으로 하나 되는 유익은 참으로 아버지의 죽음이 가져다 준 결과였다. 사람은 죽더라도 결코 죽어 없어지지 않았다.

무덤 속에 있지도 않았다. 영이 하늘에만 가 있지도 않았다. 죽은 영은 그가 애착을 가지는 사람의 속에 들어가 그들을 통해 자기의 사업을 해나갔다. 악인은 그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잊혀지고 혹은 생존했었다는 기억조차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영원히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 남아서 위대한 감화를 주고 있다. 의인은 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묻혀 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단순한 기억인지 아니면 실제로 어떤 영이 존재를 계속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오랫동안 죽음학을 공부한 이화여자대학교 최준식명예교수는 죽음은 육체가 영체로 바뀌는 것이라고 한다.

뇌가 없어진다고 의식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인간이 사후에도 정말 그런 의식내지 영이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하는 것일까? 어떤 종교가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식욕과 성욕 같은 육체적인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귀신이 있어요. 그런 귀신에 빙의가 되면 안그러던 사람이 술과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기도 해요. 그리고 음란한 귀신이 붙은 사람은 하루종일 그 생각만 하는 거예요.

또 원한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사념체가 되어 허공에 남을 수 있죠. 그런 걸 귀신이라고 표현 할 수도 있어요. 그런 것들이 같은 주파수를 가진 사람의 속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더 화를 내고 더 한을 품고 부정적이 되는 거죠.”

성경을 보면 수많은 귀신이 존재한다. 한 사람 몸에서 빠져나갔던 귀신이 일곱 귀신을 끌고 와서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인 것이 그런 귀신의 존재였다. 꼭 그런 귀신만이 인간에게 빙의되는 것일까.

성경을 보면 예수는 죽은 후 영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어갔다. 예수의 영이 길을 가던 바울이라는 사람에게 나타났고 그 속에 들어갔다. 그 이후 그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자기의 체험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예수는 영이 되어 제자들 속에 들어갔고 평생 그들의 영혼을 지배했다. 무식하고 어리석던 제자들이 무엇을 했다기 보다 예수의 영이 그들을 움직였던 것 같다. 그게 기독교의 본질 같기도 하다.

나는 매일 성스럽고 좋은 영이 나의 허약한 영속에 들어와 주기를 기도한다. 그 영이 나를 지배하면 나는 어떤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사랑과 기쁨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성경은 그렇게 내가 얻을 수 있는 아홉가지 열매를 알려주고 있다.

글 | 엄상익 변호사

경기중-고, 고려대 법대를 나오고 제24회 사법시험(1982)에 합격했다. 6공 때,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특별보좌관실에 근무하며 권부의 이면을 보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대도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등 사회 이목을 끌은 대형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월간조선을 비롯,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했고 수필집, 장편 소설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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