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9년 일제 강점기때 설립된 대한민국의 기업. 1인 1주 운동을 벌려 세운 경성방직주식회사가 효시이며 주로 섬유 제품을 생산했다. *사진 = 의약뉴스
◇ 1919년 일제 강점기때 설립된 대한민국의 기업. 1인 1주 운동을 벌려 세운 경성방직주식회사가 효시이며 주로 섬유 제품을 생산했다. *사진 = 의약뉴스

몇 년간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사업가들에 관한 자료들을 읽은 적이 있다. 자본주의가 유입되자 조선에도 사업가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일본 기계를 도입하고 일본인 업체에서 기술을 배워 영세한 공장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일본의 거대자본 미쓰이 재벌이 부산에 방직회사를 설립했다. 자각한 조선의 몇몇 사업가들이 뭉쳐서 주식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경주 최부자로 알려진 최준, 호남 부자 김경중 등이었다. 발기인에 박영효를 참가시켰다. 한글학자 이희승이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들은 조선인주식회사를 소수의 부자가 아니라 전 민족의 회사로 만들기로 했다. 주식의 공개모집을 해서 조선인들 사이에 1인 1주 운동을 펼쳤다. 그렇게 ‘경성방직’이라는 회사가 탄생했다. 조선인 기술자와 직공만을 뽑았다.

 

몇 년의 고난과 노력 끝에 일본에 뒤지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조선의 자존심을 상징할 수 있도록 ‘태극성’이라고 상표를 정했다. 기존의 판매망은 일본인들이 잡고 있었다.

조선인주식회사는 보부상의 ‘장돌뱅이 기법’으로 물건을 팔기로 했다.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전 직원이 보부상부대가 되어 태극성상표가 붙은 광목이 담긴 등짐을 지고 모였다. 앞에서 경영자가 그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들에게 조선 민족의 경제독립이 달려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망해 일본사람에게 넘어가면 그들에게 삶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빼앗깁니다. 우리 조선인끼리 똘똘 뭉쳐 우리의 땀으로 돈을 벌어 식구들과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도록 합시다.”

 

직원들은 회사 일이 민족사업이자 독립운동의 일환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들은 완전한 독립은 먼저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선인주식회사는 동아일보에 시리즈 광고를 냈다. 그 광고내용은 조선경제독립의 격문 같았다. 이런 내용들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용감히 수입품을 당해내고 있습니다. 모두 태극성 편이 되어 주시오. 조선 광목을 입으시는 것 이것이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이익이 됩니다. 기미운동이 있은 후 우리는 여러 가지를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남의 것만 써서 경제가 쇠멸 당하면 결국 모두를 빼앗기는 장래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족자급의 정신을 함양해야 합니다. 비록 의복일망정 품질이 견실한 조선광목을 쓰시도록 일치 단결 합시다.’

 

시골 장터에는 수많은 태극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조선광목의 태극성 마크부분만 잘라 붙여 햇빛을 막는 차일이 그렇게 보인 것이다. 3.1운동이 일어난 직후의 광경이었다. 동양척식회사에 대응하는 조선인 농장회사도 생겨났다.

그 회사를 세운 사람은 김경중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조선말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정신으로 기업농을 일으켜 부자가 된 인물이었다. 그는 ‘삼양’을 그가 세운 농장회사의 기업 정신으로 했다. 삼양이란 소동파의 이런 글에서 나온 생활철학이었다.

‘나는 내 분수에 만족하여 복을 기르고 둘째 욕망을 절제하여 기를 기르고 낭비를 삼가 재(財)를 기른다. 이게 삼양이다.’

 

일본기업이 이 땅을 점령한 그 험한 시대에 그런 사업 정신을 가진 사람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나는 사업이라고 하면 전쟁의 일종처럼 생각했다. 기회를 타서 책략을 쓰고 간교하고 약삭빠르게 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겼다.

그가 세운 조선인 기업은 늑대들 사이에 끼어있는 한 마리 양 같았다. 그는 자본이 부족한 조선인 주식회사에 투자를 하고 아들을 임원으로 임명해 일본의 대기업과 경쟁해 나갔다. 기록에는 그의 모든 것을 걸었다는 내용도 보였다.

백 년이 지났는데도 그 회사는 지금도 살아남아 존속한다. 그의 아들과 손자 그리고 그 자식들을 통해 지금도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나는 그들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바른 사업 정신이라는 걸 알았다.

일제 강점기 그들은 상품을 상품으로 보지 않고 거기에 민족정신을 담았다. 정당한 사업을 하려고 했다. 얼마나 많은 매출과 이익을 올리느냐의 성공 본위가 아니라 성실 본위로 임했다. 거대한 일본 자본들 속에서 그들은 성공을 추구하지 않았다.

성공을 하늘에 맡기고 그날그날 성실히 뛰는 모습이었다. 정당한 사업은 전쟁이 아니었다. 남을 유익하게 하고 그 회사도 이익을 거두는 것이다. 기업도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정신으로 사는 가 보다.

글 | 엄상익 변호사

경기중-고, 고려대 법대를 나오고 제24회 사법시험(1982)에 합격했다. 6공 때,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특별보좌관실에 근무하며 권부의 이면을 보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대도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등 사회 이목을 끌은 대형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월간조선을 비롯,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했고 수필집, 장편 소설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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