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포함에서 황혼을 맞은 인생들이 시간을 보낼 취미거리를 찾고 있다. 톨스토이는 노년에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희랍어를 배우려고 한다지만 그런 건 모두 천재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나 같은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이름도 하나하나 잊어간다. 나이 육십이 넘어 바둑을 배워보려고 시도하다 그만두었다. 정년퇴직을 한 친구들이 구청 문화센터에 가서 기타를 배우고 섹스폰을 시작했다가 도중에 슬며시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취미도 평생 할 수 있는 걸 미리미리 어려서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 같았다. 그게 뭘까. 하나님은 뭘 재미있어 했을까. 하나님의 취미는 만들기인 것 같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만들기 과정이 나온다. 땅과 바다를 만들고 아이같이 좋아했다. 풀과 나무를 만들고 해와 달과 별을 만들고 보기 좋다고 했다. 물고기와 새도 다양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정교하게 만들고 좋아했다.

사람도 점점 더 진화시키는 것 같다. 처음에는 살덩어리 인간을 만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물로 다 휩쓸어 버리기도 했다. 다음에는 영을 지닌 한 단계 높은 인간을 만드는 것 같다.

자기의 영을 사람에게 수신기같이 박은 것 같다. 제작자인 하나님은 공간 밖에서 그 수신기를 통해 사랑 기쁨 평화 등을 보내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나 생각을 조정하기도 하는 것 같다.

 

◇ 메타버스로 구현된 순천향대 대운동장의 2021년 신입생 입학식  *사진=SK텔레콤
◇ 메타버스로 구현된 순천향대 대운동장의 2021년 신입생 입학식  *사진=SK텔레콤

하나님을 닮게 만들어진 인간도 하나님과 비슷한 만들기 장난을 하는 것 같다. 얼마 전 시사잡지에서 ‘메타버스’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 나름대로 이해한 걸 예를 들어 보면 이렇다.

인터넷 공간에 서울과 똑같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수많은 똑같은 빌딩들이 있고 법원도 있고 완벽한 서울의 복사판이었다. 지금 나의 사무실이 있는 빌딩공간도 있었다.

나는 나의 복제품인 아바타를 만들어 그 빌딩에 법률사무소를 만들면 가상세계 속에서 완전히 하나의 변호사로 탄생한다. 다른 변호사도 그 가상공간에 자기의 아바타를 만들어 참여한다. 서로 타협하고 조정할 일이 있으면 현실에서 만날 필요없이 아바타끼리 서로 만나서 처리한다. 굳이 직접 만날 이유가 없다.

 

법원의 판사들도 그 가상세계 속에서 자기의 아바타를 만들어 참여한다면 아바타끼리 가상세계의 법정에 모여 재판을 할 수 있다. 영상재판이나 영상회의보다 한 단계 진보한 형태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노트북 하나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회사원 생활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의 아바타들이 가상세계 속의 사무실에 모여 회의를 하고 업무를 본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완벽하게 복제한 가상세계가 만들어 질 수 있구나 생각했다. 가상의 복제된 세계를 만든 회사에 돈을 내면 내 아바타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거기에 가입하면 늙은 나는 다시 젊고 멋진 변호사로 재창조되어 활동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매트릭스의 세계가 현실화 되는 것 같았다.

 

그걸 보면서 나는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이라는 시공간 속의 아바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은 그런 시각으로 성경을 보니까 또 다른 게 보인다. 하나님이 만든 매트릭스의 세계 안에서 아바타인 왕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오글오글 모여 싸우고 죽고 지지고 볶고 하는 것 같다. 총연출자는 하나님이었다.

지상세계에서 삶의 끝이 보이는 이 시절 인생 속도를 역에 가깝게 도착하는 기차처럼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허용된 남은 시간을 어떤 오락으로 즐겁게 살까 궁리한다.

하나님은 만들기가 오락이었던 것 같다.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진화시키려고 개발을 계속하고 계시는 것 같다. 영의 사람은 하나님의 최상의 작품이다. 돌이켜 보면 사람도 하나님을 따라 만들기를 취미로 했으면 심심할 일이 없었을 것 같다.

그렇게 했다면 일생의 노동을 취미같이 할 수 있었지 않을까. 아날로그 시대에 산 우리지만 만들기의 기쁨을 누린 사람들이 있었다. 귀농을 했던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만든 콩을 보니까 보석을 보는 것 같았어. 그 창조가 너무 좋았어.”

그 선배는 다음에는 ‘아침이슬’이라는 국민가요를 만들었다. 몇 채의 주택을 지어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집을 지어보니까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재미와 기쁨이 크더라구.”

나는 매일 조금씩 책을 읽고 글을 써 왔다. 글이라는 것도 만들기 작업이었다. 나는 글이라는 집을 만드는 언어의 목수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만드는 기쁨을 주시는 것 같다. 만드는 일은 모두 다 기쁨인 것 같다.

글 | 엄상익 변호사

경기중-고, 고려대 법대를 나오고 제24회 사법시험(1982)에 합격했다. 6공 때,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특별보좌관실에 근무하며 권부의 이면을 보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대도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등 사회 이목을 끌은 대형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월간조선을 비롯,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했고 수필집, 장편 소설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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