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단일 매장 전국 2위 규모의 서초고등법원 앞 삼풍백화점
◇ 당시 단일 매장 전국 2위 규모의 서초고등법원 앞 삼풍백화점

1995년 6월 29일 오후 두시경이었다. 헬스등록을 한 삼풍백화점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안에 두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오층 식당가가 전부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그래. 백화점이 휴일도 아닌데 이상해.”

한 여자가 말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백화점 하루 장사를 안 하면 그 손해가 얼만데 안해? 종업원들이 왜 안 한다고 그래?”

“그런 건 말해 줄 수 없대. 그러면서 하여튼 영업을 안 해 죄송하다고만 하더라구.”

헬스클럽에서 두 시간 정도 운동을 한 나는 밥을 먹기에 시간이 어중간하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기는 빠르고 사무실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도 귀찮았다. 보통 저녁은 백화점 식당가에서 먹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백화점의 사층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물었다.

 

“식사 됩니까? 아까 들으니까 여기 오층 식당가가 오늘 영업을 안한다고 하던데요.”

“안 하긴 왜 안 해요? 오층은 안 해도 사층은 합니다. 주문하시죠.”

그런데도 식당이 썰렁했다. 나 외에는 밥을 먹는 손님이 없었다. 나는 된장찌개를 시켜 먹었다. 이상하게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벽쪽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괴기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피묻은 손가락이 잘려져 세면기 바닥에서 구르고 있었다. 섬찟한 느낌을 주는 괴물 인간이 나타나 화면 속에서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갑자기 나가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밥을 먹은 후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른 때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화도 시킬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백화점의 한층 한층을 내려오면서 화려한 매장을 구경하곤 했다.

서점에 들려 새로나온 신간을 살펴보는게 나의 습관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식당의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괴기영화가 내게 섬찟한 느낌을 줘서 쫓아낸 것 같았다.

나의 사무실은 백화점을 마주보는 건너편빌딩 403호였다. 사무실에 앉아서 시계를 보았다. 전자시계의 숫자가 오후 다섯시 오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줌이 마려웠다. 사무실 밖에 있는 공용화장실에 가서 소변기 앞에 서 있을 때였다. 옆에도 한 남자가 소변을 보고 있었다.

◇ 붕괴된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사진= 중앙일보

앞에 있는 작은 유리창에 길 건너편에 있는 붉은색의 삼풍백화점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따따따땃”하는 기관포쏘는 소리가 나면서 삼풍백화점의 옆구리에 수박덩이만한 큰 구멍이 총탄자국같이 터져나왔다. 그 구멍들을 통해 백화점안의 물품들이 뿜어져 나왔다.

 

일대의 하늘이 백화점의 명품들로 덮혔다. 누런 흙먼지가 아래쪽에서 화산재같이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먼지구름이 백화점을 휘감고 서초동 언덕일대를 덮었다. 나는 혼이 나간채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누런 먼지구름으로 앞이 안보였다.

“척 척 척”하면서 뭔가 접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잠시후 바람이 누런 흙먼지를 쓸어갔다. 갑자기 창문으로 파란 하늘에 하얀구름이 떠 있는게 보였다. 내 눈이 뭔가 헛걸 보는 것 같았다. 전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옆의 소변기에서 소금기둥이 되어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삼풍백화점이 어디갔죠?”

“글쎄요 갑자기 어디 갔을까요? 없네요.”

그 남자의 대답이었다. 그날 내가 겪었던 일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날벼락을 맞고 죽었다. 죽음은 멀리 있는게 아니라 바로 나의 옆에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소 백화점을 드나들면서 낯이 익던 햄버거가게 아가씨나 문구점의 여직원등 모두 선한 사람이었다. 지하매장에서 떡뽁이와 찐빵을 파는 아줌마도 마음이 착했다. 그런데 그런 죄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물결에 휩쓸려가듯 죽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믿었던 하나님이 다만 나의 망상이었는지 회의를 하기도 했다. 역사를 보면 지진으로 수만명이 죽기도 하고 전쟁으로 몇백만이 몰살되기도 했다. 하나님은 말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형태로 그 메시지를 전하는지도 모른다.

대형사고나 전쟁, 지진같은 재난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허위의 세상을 바로 잡으려는 하나님의 막대기인가. 그러면 데려간 착한 사람들은? 죄많은 내가 굳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나는 모르겠다.

글 | 엄상익 변호사

경기중-고, 고려대 법대를 나오고 제24회 사법시험(1982)에 합격했다. 6공 때,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특별보좌관실에 근무하며 권부의 이면을 보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대도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등 사회 이목을 끌은 대형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월간조선을 비롯,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했고 수필집, 장편 소설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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