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느낌이나 이미지를 대상으로 붙잡고 이건가 저건가 찾는건 본질적으로 다 잘못 찾아가는 행위다   /셔터스톡 

우리는 자주 꿈을 꾸지만 꿈꿀 때 과연 그 주체는 누구(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음(이라고 불리우는 잠재의식)이지요. 하지만 마음은 형체가 없으므로 꿈 속에 드러낼 자기모습이 없습니다.

따라서 만약 누가 꿈속에서 마음을 보고 확인해서 깨달으려 한다면 안 됐지만 그는 평생을 노력해도 마음을 직접 자기 눈으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실이란 꿈에서 깨어나려 하는 사람도 그 원리는 똑같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인 법신(생명)은 아무 모습이 없으니 물(物)로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지식들이 제자들에게 O자리를 제대로 봤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그 자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자꾸 물어보는 것이고 바르게 깨어난 제자라면 “ 한 물건도 없다(본래무일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오감으로 보거나 경험할 수 있는 느낌이나 이미지같은 건 다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이 자리는 바로 그 오감의 본질이자 질료이므로 오감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체험되는 오감의 내용물(피조물)일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바로 그 말(한물건도 없다)로 나타나는 실재입니다. 생명과 의식없이 어떻게 [한 물건도 없다]는 말(생각)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무슨 미묘한 느낌이나 이미지를 대상으로 붙잡고 이건가 저건가 찾는건 본질적으로 다 잘못 찾아가는 행위입니다.

그렇지만 [없다]고 해서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 안 보이고 손으로 못 느낀다고 해서 아예 맹탕인 [없음]인건 아니란 말이지요. 그래서 진리인 생명은 [없음의 형태로 있는 것]입니다. 비3차원적인 거지요.

그래서 예로부터 [찾지 말고 그 찾는 놈을 돌이켜 봐라]는 말도 있으며 [소리 따라가지 말고 그 소리 듣는 놈을 돌이켜 보라]는 가르침도 있는 겁니다. 즉 [본래무일물]인 이유는 자기가 바로 그것(생명의식)이기에 밖으로 찾으면 볼 수도 없고 인이비설신의를 통해 만나고 느낄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서울대학교 미대를 다니다가 진리를 얻기 위해 출가했으나 세상으로 돌아와 전문 직업을 구해 변리사가 되었다. 지금은 직원 백 명이 넘는 <한양특허법인>의 대표 변리사로 수십 명의 변리사, 변호사와 함께 글로벌 기업들의 지적재산권 업무를 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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