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에 깨어나려면 모든 게 서로 둘이 아님을 봐야만 한다    /셔터스톡 
본성에 깨어나려면 모든 게 서로 둘이 아님을 봐야만 한다    /셔터스톡 

불교에선 일체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법(不二法)을 말합니다. 그럼 왜 [하나]라고하면 될 것을 복잡하게 [둘이 아니다]라고 말할까요? 그것은 [하나이다]라는 말자체가 대상에 대한 규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거다 저거다 하는 규정은 다 법상(法相)이 됩니다. 법상이란 [진리에 대한 생각]으로서 실제가 아닌 방편이란 것입니다. 그럼 왜 불교는 일체 모든 것들이 서로 둘이 아님을 보라고 말하는 걸까요? 그것은 본성에 깨어나려면 모든 게 서로 둘이 아님을 봐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엔 수많은 것들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아는 이세상 삼라만상의 진짜 실체는 뭘까요? 그것의 실체는 우리 망막에 비춰진 영상들이 아닌가요?

즉 망막에 비춰진 삼라만상은 모두 다 망막의 표면에서는 서로 분리할 수 없이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게 세상의 진짜 실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실제로는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살(망막)에 나타난 쭉 이어진 영상들을 보면서 생각 속 분별로 각각 따로 있다고 믿었던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건 서로 둘이 아닌 한 망막 위에 이어진 영상이지요. 이렇게 일체가 서로 둘이 아님을 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상(相)을 통해 자신의 살아 있는 생명의식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자각하게 되고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지금 세상을 보는 게 아니고 자기 신경이 작업한 결과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경이란 것도 단지 이름일뿐 사실은 생명의 활동이 아닌가요? 즉 상(相)에 떨어지지 않으면 그 상을 통해 일체를 보여주고 인식 자각하게 하는 본래의 성품자리가 있음에 깨어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지금도 여러분은 다름 아닌 자기 생명(성품)자리가 작동해서 현시하는 상들을 보고 계시는 겁니다. 이게 바로 12연기에서의 행(行)과 식(識)입니다. 그런데 여태까지는 상들을 통해 자기 성품을 알아차린 게 아니라 오히려 의식이 그 상들에게 붙잡혀서 온갖 이야길 다 만들어낸 것이죠.

이제 왜 현실이 꿈이라 하는지 진짜 세상의 본질을 아시겠습니까? 불이법(不二法)이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은 다 내 마음(의식의 작업결과)이 인식한 둘로 나눌수 없는 한 덩어리이며 이렇게 지금 여기에서 눈을 통해 이 세상을 드러내는 실체가 바로 생명 활동인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래는 하나인 것을 우리 생각과 감정, 느낌들이 분주히 작업해서 수없이 나누고 쪼개다 보니 지금 이처럼 내가 사는 나의 세상이 복잡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꿈같은 환영의 매트릭스라고 말하는 것이며 이 꿈에서 깨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상들을 [불이(不二)로 보는 법]이라 가르키고 계시는 겁니다.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서울대학교 미대를 다니다가 진리를 얻기 위해 출가했으나 세상으로 돌아와 전문 직업을 구해 변리사가 되었다. 지금은 직원 백 명이 넘는 <한양특허법인>의 대표 변리사로 수십 명의 변리사, 변호사와 함께 글로벌 기업들의 지적재산권 업무를 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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