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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터 에고 이펙트'/퍼블리온

토드 허먼 지음|전리오 옮김|퍼블리온|400쪽|1만8000원

텍사스의 독실한 감리교 가정에서 자란 소녀는 유난히 가스펠 음악을 좋아했다. 늘 찬송가를 들었고,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며 동네 주민들로부터 ‘천사의 노래’라 사랑받았다. 지역 장기자랑 대회서 주목받다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 더 이상 가스펠만을 부를 수 없게 되었을 때, 소녀는 커다란 내적 장애물에 부딪힌다. 무대 위의 자유를 사랑했지만, 건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자아는 다소 외설적인 노래를 부르며 섹시 댄스를 추는 걸 불편하게 여겼다. 소녀의 해법은 자유분방한 아티스트 ‘사샤 피어스’라는 공연용 ‘대체 자아(alter ego)’를 만들어 무대에 내보내는 것. 세계적 수퍼스타로 성장한 그는 바로 비욘세(4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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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세의 첫 내한공연(2007년)
미국에서 손꼽히는 경기력 향상 코치이자 멘털 게임 전략가인 저자는 책에서 ‘대체 자아’를 발굴해 계발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트로트 가수 유산슬, 프로듀서 지미 유 등 11가지 ‘부캐(또 다른 캐릭터)’로 활동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개그맨 유재석처럼, 살면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경기장에 ‘날것 그대로의 나’를 내보내 상처 입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부캐를 적극 출전시켜 승리하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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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할 땐 정장 입은‘단정한 나’, 퇴근 후엔 개성있는 옷차림의‘자유로운 나’…. 누구에게나‘여러 자아’가 있다. 저자는“인생이란 경기에서 이기고 싶으면‘최고의 나’로 출전하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프레젠테이션이나 공개 연설을 진행하면서 손에 땀이 차고 숨이 가빠져 두서없이 중얼거린 적이 있나? 인맥 쌓기 모임에서 초조하고 어색해 구석에만 처박혀 있다 돌아온 적은? 수줍고 내향적인 ‘나’ 대신 야수 같은 대체 자아를 출전시킨다면 임무를 무사히 완수할 수 있다. 심적 고통을 겪는 경기장이 일터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뛰어난 비즈니스맨인 존에겐 가정이 경기장이었다. 자라면서 항상 아버지의 부재를 느낀 그는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저자는 어릴 때 가장 친했던 친구의 아버지를 참고 삼아 대체 자아를 만들라 충고했고 존은 가정이 해체될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처럼 대체 자아는 삶의 역경에 좀 더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도와준다. 직업적 정체성을 ‘나’와 동일시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일. 할리우드 유명 프로듀서 솁 고든은 톱스타들에게 충고한다. “대중에게 비치는 모습이 실제 자신의 모습이 된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대중이 ‘캐릭터’를 사랑하도록 하고 그와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정신적으로 훨씬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가면을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안의 영웅을 깨워 ‘최고 버전의 나’를 만들라는 것이다. “당장 나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필요한 순간에 잠시 ‘또 다른 나’가 되어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당신의 안에는 봉인 해제를 기다리는 영웅적인 자아가 있으며 대체 자아 혹은 비밀 인격이 그것을 깨우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체 자아를 만들 것인가? 저자는 TV·영화나 문학 작품 속 인물, 역사적 위인, 연예인, 혹은 주변 사람 등 본인이 꿈꾸는 ‘비범한 세계’의 특성을 지닌 인물을 모델로 삼아 캐릭터를 만들고 그들을 흉내 내라 조언한다. “될 때까지 그런 척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대체 자아로 변신하기 위해 시동을 걸어주는 ‘토템(totem·상징물)’을 이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처칠의 ‘모자’가 대표적인 예. 처칠은 총리직을 수락하기 위해 여왕을 알현하러 갈 채비를 하던 중 여러 개의 모자가 걸린 벽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는 어떤 자아가 되어야 하는가?" 마틴 루서 킹은 굳이 필요 없을 때도 안경을 썼는데, 안경이 자신을 더 기품 있게 만들어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속도감 있게 읽히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또 다른 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출근하는 자아와 퇴근 후의 자아, 아빠로서의 ‘나’와 남편으로서의 ‘나'. BTS는 ‘페르소나’에서 노래했다. “나란 놈을 고작 말 몇 개로 답할 수 있었다면, 신께서 그 수많은 아름다움을 다 만드시진 않았겠지."
※해당 기사는 조선일보 2월 6일자 곽아람 기자의 '비욘세도 ‘부캐’였다… 무대도 일터도 ‘또 다른 나’는 필수품인가'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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