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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치명적 단점은 이럴 때 조언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없다는 점이다.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 정신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막상 노년을 앞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욕망이나 걱정의 조절과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모른다. 이른바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공자(孔子)가 논어-계씨편(季氏篇)을 통해 설명한, ‘군자가 경계해야 할 세가지(君子三戒)’의 요지는 청년시절에는 여색을, 중년 시절에는 다툼(경쟁심)을, 노년 시절에는 탐욕을 경계해야 성공한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황혼기가 되면 신체적 기능은 물론 판단력 분별력 등 정신적 기능도 퇴화한다. 천하를 품을 듯한 포부나 기개도 사라지고 마음에는 후회, 회한이 지배하기 쉽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일신의 안위와 개인적 욕망이다. 비록 거창한 명분이나 명예, 성취욕, 열정으로 위장됐지만 실은 얼마 안남은 여생을 편히 지내고픈 탐욕이 깔려 있다.

젊은 시절의 열정은 순수한 욕심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나이 들어서 부리는 탐욕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자칫 평생 쌓아놓은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메가톤급 원폭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50대 이상 한국 남성들은 누구나 지위(자리)에 대한 욕심이 있다. 어려서부터 1등, 2등을 따지는 경쟁사회에서 살아왔고 사회에서도 승진과 타이틀(직함)을 중시하며 살아왔다. 관료 사회에서 정상에 오른 전직 장-차관을 만나보면 그들의 자리에 대한 욕구가 퇴임 후에 오히려 더 강해져 가고 있음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자리를 적당할 때 후배에게 물려주는 순리도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추앙받던 김응용 감독이 은퇴 8년 만에, 칠순이 넘는 나이에 다시 현역으로 복귀한 것도 그리 흔쾌하게만 보이지는 않다.

지위에 대한 욕망과 사촌 쯤 되는 게 명예나 성취욕이다. 온갖 모임에 참여해 감투를 쓰고 열혈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면 때로 가상하기도, 때로 서글프게 보이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돈(재산)에 집착하는 사람이 많다. 부자일수록 더하다. 대사업가나 고관대작, 또는 원로 정치인들을 말년에 무너지게 만드는 일등공신이 돈이고 보면 돈의 마력은 대단하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17세 소녀의 관능에 매혹당한 70대 시인의 스토리를 다룬 영화 ‘은교’에서 나오는 명대사다. 노인들은 신체적 쇄락과 함께 성욕에 둔감하리라 믿지만 실제 마음으로는 더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최근 신체가 건강한 노인들의 성범죄가 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찌 보면 이성에 대한 본능의 표출은 그만큼 신체적·정신적 기능이 왕성하다는 증거가 되지만 만약 잘못될 경우 한순간에 망신살이 뻗칠 수 있다. 노추(老醜)의 전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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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 조선

 

 

우리 사회가 이토록 욕망의 포로가 된 데에는 지금껏 우리를 이끌고 온 ‘Can-do Spirit(난 할 수 있어)’ 정신과 ‘긍정의 힘’의 부작용도 있다고 본다.

 

 

긍정의 힘은 ‘예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무한히 끊임없이 ‘예스’ 일수는 없다. 인간의 능력과 자원은 한정되기 마련이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질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욕망의 포로다. 긍정도 지나치면 해롭다.

몇 년 전 조용필이 60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곡을 히트시켜 찬사를 받고 있지만 대중은 너무 기대를 걸어선 안된다. 기대에 충족되지 못하면 결국 실망으로 돌아간다. 대신 그가 원로의 모습으로 편안하게 다가올 때를 기대하라. 조용필의 삶은 이제 더 이상 대낮이 아니다. 계절로 따지면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고 있다. 그런데 여름의 조용필을 기대해서야 되겠나.

<계속>

일흔여덟번째 기억하기

인간 능력과 자원은 한정된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질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욕망의 포로다. 긍정도 지나치면 해롭다.

글 |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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