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의 불륜과 아내의 맞바람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TV드라마 '부부의 세계'
◇ 남편의 불륜과 아내의 맞바람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TV드라마 '부부의 세계'

이혼하고 오랫동안 혼자 사는 미녀 여배우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귀는 남자가 호텔에 혼자서 먼저 가 있으라고 하거나 뒤늦게 남의 눈치를 보면서 도둑같이 스며드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모멸감 같은 게 들어요. 사랑한다면 당당하게 손을 잡고 같이 호텔 방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어.”

그게 불륜인지 어떤 것인지 나는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금단의 열매에 급급한 남성의 이중성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계속했다.

“남자들을 보면요 공식적으로 만났다가도 헤어질 무렵이면 가볍게 차 한 잔 더 하자면서 작업을 걸어와요. 그리고 분위기 있는 바로 데리고 가는데 수백만원짜리 고급 양주를 시키는 거예요. 내 앞에서 돈이 많다는 과시를 하는 거죠.”

암컷을 앞에 두고 힘을 과시하는 숫짐승들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서 대통령의 딸과 결혼했던 재벌 회장이 이혼소송을 제기한 걸 봤다. 그는 숨겨놓았던 여인과 자식을 공개하고 그들과 살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세상은 권력이 떨어진 대통령의 딸을 비련의 여인으로 보고 동정을 했다. 나는 세상이 던지는 돌을 감수하고 정직하게 이혼을 요구하는 재벌 회장이 차라리 당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열한 한 세대 위의 재벌회장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칠십년대 영화 춘향전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여성이 있었다. 미모인 그녀는 명동의 한 구석에 아담하고 고급스런 까페를 차렸다. 당장 그 까페에는 굵직한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총리가 오고 재벌 회장들이 드나들었다. 찾아오는 모두들 그녀를 탐내고 유혹을 했다.

세상이 황태자 취급을 하던 재벌가의 아들이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다. 일 년 후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재벌가는 그녀와 자식을 버렸다. 다른 재벌 회장이 그녀를 자기의 여자로 삼았다. 아들은 엉뚱하게 다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두 번째 만난 재벌 회장도 세월이 흐르자 그 여인을 버렸다.

늙어 백발이 솟아나는 여인은 더이상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았다. 모자만 남았다. 아들은 친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찾아온 아들을 외면하고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그 재벌가에서는 초비상이 걸렸다. 아버지의 재산이 은밀하게 모두 사라져 버렸다. 상속권을 얻는다고 해도 받을 재산이 없게 된 것이다. 재벌가는 오히려 빚만 만들어 놓았다.

친아들임을 주장하는 소송이 제기됐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피를 뽑아 유전자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아버지가 해외로 도망했다. 아들은 이복형제인 재벌가 아들의 피를 뽑아 검사를 하자고 했다. 그룹의 현직 회장인 이복형도 업무를 핑계로 해외로 도피했다.

법원은 그 집 막내아들의 피를 한 방울 제공하도록 명령했다. 검사결과는 99.9999퍼센트로 재벌가의 자식이라는 게 판명됐다. 법정에서 재벌가의 변호사는 0.0001%의 아닐 확률이 있는 것 아니냐고 강변했다. 우상인 돈이 만들어낸 무책임하고 비열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언론에서 꾸며낸 그의 아버지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선량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있는 기업가였다. 그 여성을 데리고 살다가 버린 두 번째 아버지도 그의 자서전이 유명했다. 하늘을 보고 땅을 봐도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제목이었다. 그는 기업인들이 존경하는 우상화된 인물이었다. 그는 뒤로 모자가 가지고 있는 재산마저 빼앗고 그들을 내쫓았다. 잔인한 행동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그 여자는 섹스 파트너였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경영자 자리를 물려주고 월급쟁이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회사의 주가가 떨어졌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눕는 인물이었다.

변호사 생활은 토할 것 같은 그들의 이중성과 비겁함을 종종 보는 직업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비겁하지 않게 당당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무대의상을 걸치지 않고 발가벗은 자신의 모습 앞에 설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 두 회장은 동전하나 가지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갔다. 평생 돈을 지키려고 동생과 싸우고 자식과 싸우다가 갔다. 진정한 사랑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저승에서 그들 두 회장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다. 그때 좀 더 베풀 걸 그때 아들을 포근하게 안아줄 걸 하면서 후회하지는 않을까. 돈이 뭐라고.

글 | 엄상익 변호사

경기중-고, 고려대 법대를 나오고 제24회 사법시험(1982)에 합격했다. 6공 때,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특별보좌관실에 근무하며 권부의 이면을 보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대도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등 사회 이목을 끌은 대형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월간조선을 비롯,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했고 수필집, 장편 소설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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