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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런 생각하에 공감에 관한 자료를 챙기고 연구하다 번뜩 눈에 들어오는 책을 발견했다.

정신과 전문의 이무석이 쓴 ‘30년만의 휴식’.

오늘날의 많은 사람처럼 성공이 모든 것을 보장할 것이라는 생각 하에 일로 매진하는 30대 주인공이 어느 날 마음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마음의 평안과 자유로움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주목한 점은 저자가 인간의 의식(보이는 마음)과 무의식(보이지 않는 마음)중 무의식의 세계에 보다 집중하는 데 있었다. 자기 마음이면서도 자기가 모르는 마음이 무의식이다. 또한 그 무의식의 세계중 상당부분이 유년 시절의 추억, 특히 가족과의 관계에 있다고 보고 있는 데 대해 공감했다.

잘나가는 중견기업 임원인 주인공 ‘휴’는 인간관계가 어렵고 행복감을 느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무의식에는 그를 쫓는 아버지가 있었다. 엄격한 아버지는 형을 편애했다. 어렸을 적부터 ‘휴’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무의식 중에는 ‘항상 엄격한 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어린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무의식이 결국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끝이다. 아버지는 나를 외면할 것이다’는 생각으로 집중돼 자신과 주위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냉혹한 상사’로 휴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결국 의사와의 심리치료 끝에 휴는 그런 무의식 세계의 억압적 구속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행복을 누리고 있다.

저자가 실제로 정신상담을 한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된 책에서 여러 유형의 인물들이 나왔다. 우리 내면에는 아직 크지 못한 유년시대의 어린이들이 존재해 그것이 끊임없이 성인인 나의 생활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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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30년만의 휴식' (출처 : 교보문고)

2편 우리 안에도 어린 ‘휴’가 있다.

- 내 안의 어린아이 극복하기

Where are you

성난 아이

질투하는 아이

의존적인 아이

열등감에 사로잡힌 아이

의심 많은 아이

잘난 체하는 아이

조급한 아이

외로움에 시달리는 아이

두 얼굴을 가진 아이

나는 ‘성난 아이’편이 흥미로웠다. 전에 말한 대로 나는 잘 성을 내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주변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리드를 할 수 있으려면 그런 분노는 조절해야 마땅하다.

캐나다 멕길대학의 정신과 교수인 다반루 박사는 “인간의 문제는 결국 분노와 이에 따르는 죄책감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비디오를 통해 보여준 임상치료 장면은 극적이고 인상적이었다.

30대 회사원 환자는 어렸을 적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의 무의식에선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이 엄청났다. 그는 이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사회에 나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우울증환자가 돼버렸다. 매사 남에게 자신이 없어 굴종적인 자세를 보이다가 때로는 자기도 모르는 적개심이나 분노가 표출되곤 했다.

심리상담을 통해 무의식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성난 어린이’의 실체를 끄집어내고 환자가 이를 인식하게 되면서 그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나는 앞의 환자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존재하는 ‘성난 어린이’의 실체를 파악하고 싶었다. 바쁜 현실에서는 이런 자기 존재에 대한 탐험이 쉽지 않지만 나처럼 ‘상황적 광야’에 나와 있는 사람에게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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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만의 어린 시절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이 지금 나를 발전시키기도, 또한 나를 억압시키기도 할 것이다. 나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25살. 명문학교를 나온 인텔리 신여성이었다. 조부모께서는 어머니에게 재가를 권하셨다. 대신 손자는 대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조부모께서 키우시겠다고 했다.

이렇게 돼서 나는 부모님 손이 아닌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내게는 아버지와의 추억도 없었지만 어머니 품안에 기억도 없다. 그저 어쩌다 집에 오시는 어머니를 타인 보듯 멀찍이 쳐다보고 수줍어하곤 했었다.

조부모는 나를 과잉보호하셨다. 그 당시 이미 다 키워놓은 아들을 둘이나 잃어버린 데서 손자인 나마저 큰일 나면 안된다는 심리에서였다. 나는 어렸을 적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시절에 집에 갇혀 지내듯 했다. 이웃집 아이들이 부모님 품안에서 재롱떨며 나들이 가는 것을 항상 멀찍이 바라보곤 했었다.

돌이켜보면 유년 시절의 기억은 어두운 편이다. 아주 어렸을 적 나는 혼자 방안에 누워 아무도 없어 두렵기도 하고 외롭기도 해 마구 울었다. 그러나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자니까 눕혀놓고 모두 나간 모양이었다. 나는 늘 외로웠다. 조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허전했다. 때로 마음이 심란할 때는 다락방에 들어가서 울었다. “아마 내가 나쁜 아이기 때문에 난 아빠, 엄마가 없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내 마음 속에도 ‘성난 어린이’가 자라고 있었다. 그 성냄은 그러나 ‘휴’처럼 아빠도, 그렇다고 엄마도 아니었다. 그 성냄은 그저 내 운명에 대한 것이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

그 점에서 나는 일견 현명했다고 본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의 죽음은 사고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재가도 나는 이해가 됐다. 젊고 아름답고 뛰어난 지성의 어머니가 평생 수절하고 지내야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어머니가 나를 데려가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어머니는 나를 데려가고 싶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용인하지 않으셨다. 아들 둘을 다 잘 키워놓고도 잃어버린 두분에게는 내가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아버지를 사고로 잃는 운명에서 모든 것이 비롯됐지만 이후 벌어진 일은 대체로 해피엔딩이었다. 어머니는 재가 하셨지만 늘 내게 사랑과 관심을 쏟아주셨다. 나는 어머니의 아픔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영원히 나의 ‘로울 모델’이다. 청소년기 시절 나는 아버지를 참으로 그리워했다. 아버지의 품,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체취 그 모든 것을 그리워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은 지금 나를 버티게 해준 원천이었다. 정말 무한한 사랑을 그분들은 내게 주셨다. 비록 내가 부모님 없이 자랐지만 결코 열등감이나 질투심을 갖게 되지 않은 것은 이분들이 듬뿍 사랑을 주셨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시절을 거쳐 나는 사회에 나가 비교적 순탄하게 성장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성난 어린이’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어린이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문제가 큰 어린이는 아니다. 직관적으로 그 어린이는 운명적인 현실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만 또 다른 무의식 세계에선 무엇으로 참을 수 없는 허전함. 즉 부모님의 정서적 체취와 상황적 관계를 가져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유년의 성난 추억의 감정은 남아 있는 것이며, 그것이 나도 모르는 분노와 성으로 표출됐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휴’를 읽으면서 나는 내 마음 속의 ‘성난 어린이’를 발견하고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어린이를 이해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그러나 더 이상 어린이로 남아 있어선 곤란하다. 점차 나 역시 유년기의 어둔 추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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