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in-the-air.jpg

흰 셔츠에 멋진 수트 차림,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 같이 깔끔하게 정리된 여행 가방 속 소지품들. 절도 있는 걸음으로 공항 출입구를 통과하는 중년의 싱글 남성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 역). 언뜻 보아도 꽤 출장을 자주 다니는 것처럼 공항이 익숙해 보이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그의 직업은 ‘해고 통보 전문가’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때 많은 회사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며 자신들을 대신해 직원들을 해고해줄 전문가가 필요했다. 이들은 해고를 통보함과 동시에 재취업을 위한 정보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했다.

1년 중 322일을 집이 아닌 비행기에서 보내는 라이언에게 집이라는 곳은 잠시 들러 옷을 갈아입고 스치듯 머무는 곳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일상의 대부분을 비행기 안 혹은 출장지의 호텔에서 보냈고, 완벽하게 자유로운 삶에 만족감을 느꼈다.

그런 그에게도 꿈이 하나 있었는데, 연간 천만 마일리지를 국내선으로 이용한 고객에게만 주는 항공사의 플래티넘카드를 받는 것이었다. 최고 기장의 옆자리에 앉아 축하를 받고, 평생 중역으로 대우받으며 비행기 옆면에 이름도 새겨준단다. 중년 남성의 꿈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유아적이다. 그럼에도 라이언은 오늘도, 내일도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일리지를 쌓는다.

그는 때때로 ‘동기부여가’라는 타이틀로 관중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데 큰 배낭을 강연장에 메고 와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여러분의 인생은 얼마나 무겁죠? 지금 배낭을 메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이제 여러분이 소유한 모든 걸 배낭에 넣으세요. 이제 걸으세요. 이게 우리의 일상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이야기한다.

“이제 배낭을 태워버리세요. 생각만 해도 자유롭지 않나요?"

articleLarge.jpg

처음에 라이언은 인생에 불필요한 것들을 모조리 없애라고 말한다. 고통을 주는 인간관계든, 집이든, 가구든, 어깨를 무겁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될수록 그는 자신의 가치관에 혼란을 겪는다. 출장 도중에 우연히 만난 여성 알렉스와 사랑에 빠지면서 관계가 주는 안정감을 느낀다.

또한, 원가족과의 관계 안에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가족의 소중함도 느낀다. 이제껏 인생에 불필요하다고 여겼던 진지한 연애, 결혼, 정착해서 사는 삶, 가족 간의 유대가 인생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완벽하게 자유로운 하늘 위의 삶이 사실은 허공을 떠돌며 부유하는 삶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라이언은 동기부여 강의를 하던 도중 불현듯 강연장을 뛰쳐나가 알렉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그녀의 집 앞에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가정이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절묘하게도 실연을 당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천만 마일리지를 달성하게 되고 최고 기장이 그의 옆에 다가와 샴페인을 건네며 말한다. “Congratulations!" 이보다 더 굴욕적일 수 없는 순간이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꿈이었지만 이제는 공중에 흩어져버린 휴지 조각처럼 느껴졌다.

이 영화의 원제는 〈Up In The Air〉다. 하늘 위에서 누리는 삶은 누군가에게는 멋있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공허하고 떠도는 삶일 수 있다. 허상 속에서 부유하는 삶.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삶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안정되고 행복해 보이지만 각자의 속사정은 알 수 없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에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를 이야기하긴 어렵다. 각자가 가진 가치관과 성격, 환경이 다르므로 다들 자신이 조금 더 편안하게 느끼는 삶으로 한 발짝 다가갈 뿐이다. 완벽히 자유로운 삶도, 완벽히 안정된 삶도 없다. 자유로운 삶에는 외로움과 고립감이 뒤따르고 안정된 삶에는 책임감과 권태로움이 뒤따른다.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온전히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속 라이언은 어쩌면 우리 각자의 현재의 모습, 혹은 이상화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도 언젠가는 또 다른 속박이 되고, 공허함이 그 자리를 메운다.

어쩌면 완벽한 자유도, 완벽한 안정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삶에 대한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자유로운 삶으로 가는 통로가 아닌가 싶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어디 있든 그는 사회적으로 구속을 받는다.

_ 장 자크 루소 (사상가, 소설가)

글 | 김소원 심리상담사

10년 차 심리상담사이자 작가. 인생 중반부를 넘어가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삶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일 글을 쓴다. 상담실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현재 잠실에서 김소원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저서로는 《적당한 거리》,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가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KCPA) 공인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돕는 데 힘쓰고 있다.

저작권자 © 마음건강 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