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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졸업 여행으로 설악산을 다녀왔다. 강원도엔 자주 갔지만, 설악산만을 목적으로 간 건 거의 10년 만인 것 같다. 등산해볼까 고민했지만 젊은 사람들이 모이니 술독에 빠져버려 간단히 케이블카만 타고 권금성에 가기로 했다.

우리는 주말에 설악산에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았다. 오후 1시쯤 도착했으니 부지런한 여행객들은 이미 다녀간 시간이었다. 케이블카는 주말에는 대기가 길어 붐빌 수 있다는 말에 다들 긴장하고 매표소로 달려갔다. 도착 시각은 1시 45분. 탈 수 있는 케이블카는 1시간 뒤인 3시부터 가능했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예매하고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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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웅장한 산과 쭉 뻗은 나무들을 보니 속이 탁 트이는 듯했다. 모두 전날의 숙취가 풀린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조금 걷다 보니 큰 불상이 나왔다. 세계 최대 크기의 청동좌불상. 크기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무척 컸다. 봉양도 할 수 있었지만 간단히 인사만 드렸다.

아침을 먹지 않아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전날의 숙취는 이미 설악산을 바라봄과 동시에 모두 해장이 되어 옥수수 막걸리(5,000원)도 한 병 주문했다. 사실 여행지 식당이라 폭리를 많이 취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다들 깜짝 놀랐다. 특히 감자전(18,000원)이 서울에서 먹던 것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해물파전(18,000원)도 어마어마한 크기에 재료가 풍부해서 다들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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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게 먹고 나니 케이블카를 탈 시간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창가 쪽에 서서 가려면 일찍 도착해야 할 것 같아서 10분 먼저 도착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생각을 모두 하고 있었고 멀찌감치 뒤에 줄을 서게 됐다. 케이블카는 성인 1명당 10,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왕복에 10,000원이면 그리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케이블카 한 대당 정원이 50명이었는데 50명이 모두 타고도 좁다거나 붐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모두 창가 쪽에 몰려있어서일 수도 있으나 부대끼는 느낌 없이 재밌게 올라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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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소공포증이 조금 있는 편이다. 베트남 다낭 ‘바나힐’에서 탔던 케이블카를 생각해서 걱정됐다. 그곳은 높이도 엄청나게 높았을 뿐더러 케이블카가 작아서 바람에 자주 흔들렸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살면서 가장 무서웠던 경험이다.

하지만 그곳과 비교하면 설악산 케이블카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심지어 움직이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드럽게 이동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며 창밖으로 설악산을 바라보는데 이렇게 단단한 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들이 신기하고 대견스러웠다. 저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경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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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착하면 약 10분 정도 걸리는 산행 코스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야 권금성이 나온다고. 높은 산이다 보니 얼음이 언 곳도 있고 약간의 눈도 보였다. 올라가는 길은 계단으로 되어있어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도 걷기에 무리가 없었다. 튼튼한 바위들 사이로 잘 짜인 철골 계단을 따라 오르니 어느덧 권금성이 보였다.

너무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처음 본 풍경처럼 느껴졌다. 사방이 절벽이었는데 별도의 안전장치 없이 작은 표지판 하나만 있어 멀리서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사진을 찍으려고 남들이 다 가는 곳까지만 갔는데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가 사진을 찍던 도중 엄청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권금성에 있던 사람들 모두 소리를 지르고 자세를 최대한 바닥으로 낮췄다. 사람이 날아갈 정도의 바람은 아니었지만 마치 재난 영화 ‘투모로우’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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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금성 정상에서 거센 바람을 맞아보다니! 지상에서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칼바람이었다. 한 3분이 지났을까 바람은 멈추고 이내 온화한 상태로 돌아갔다. 권금성 내에서도 바위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갈 수 있었는데 특별한 점은 없었다. 우선 사방이 모두 탁 트여 있어서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대자연의 웅장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이라면 온종일 있어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았다. 360°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색다른 풍경과 각각 다른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흙산도 아닌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친구들과 놀이동산에 가고 바다에서 물놀이 하는 것이 좋았는데 이제는 자연을 바라볼 때 편안함을 느끼게 되어버렸다.

한 시간가량 권금성의 자태에 감탄한 뒤 내려왔다. 내려오는 케이블카는 별도의 기다리는 시간 없이 도착하는 순서대로 타고 내려갈 수 있었다. 주말이었지만 붐비지 않아서 좋았고, 케이블카도 값을 충분히 치를 만한 시설이었다. 꽃과 단풍이 예쁜 봄, 가을 산행도 좋지만 한 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차분한 겨울 산을 방문하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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