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에서 영성으로, 종교가 주는 위안

무신론자로 있다가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는 대개 두 타입이다.

첫째, 자기 힘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사건이나 시련에 휘말렸을 때다. 자기 자신, 또는 가까운 사람이 불치의 병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신을 찾는 경우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축복’, ‘은혜’라고 말한다.

둘째, 스스로 자기 고민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자각하고 절대자에게 의존을 선택한 경우다. 자기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나 존재론적 자각의 해답을 신에게 구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교만을 포기하고 겸손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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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는 두 번째에 가깝다고 할까.

평생을 작가, 평론가, 교수로 활동해온 ‘무신론자’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몇 년 전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돼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가 기독교인이 된 계기는 위의 두 가지 경우를 다 포함하고 있다. 사랑하는 딸의 지병과 20대 때부터 느낀 근원적 고독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저서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통해 자신이 무신론자에서 기독교 신자로 변화된 과정을 그렇게 밝혔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종교는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생과 사, 살아온 인생의 의미, 사후 세계, 절대자 등 생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인생의 중압감 내지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할 때 우리는 종교를 생각하게 된다. 이를 통해 절대자와 대화를 나누고 깨달음을 얻어 마음의 평화와 구원을 갈망한다.

종교가 인간의 삶, 특히 노년층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대부분의 연구 결과가 종교를 갖고 있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총체적 삶의 질의 수준, 삶의 만족도, 행복도가 모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내세를 강조하는 종교적 가치관을 통해서 죽음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노년기 인간관계망을 형성하는 등 노후 생활을 잘 하고 있으며 사망률, 유병률, 소외감 측면에서도 무신론자보다 훨씬 나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미숙과 박민정의 논문 ‘종교가 노인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종교는 대개 건강, 소속감, 사고방식, 위기 극복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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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례적으로 하버드 신경외과 의사의 ‘사후세계 체험기’를 표지기사로 실어 집중 조명했다. 세계적인 뇌의학 권위자이자 신경외과 전문의인 이븐 알렉산더(Even Alexander) 박사가 희귀한 뇌수막염에 걸려 완벽한 뇌사 상태에 빠진 채로 죽음 후의 영적인 세계를 여행했다는 내용이었다.

2008년 11월 그는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사고와 감정을 통제하는 뇌 부위가 완전히 정지돼버렸다. 의사들이 뇌사 상태를 선언한 뒤 생물학적 사망 판정을 하려던 차에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더 극적인 것은, 뇌사 상태에 빠져 있던 7일간 알렉산더 박사는 현세를 넘어 천사 같은 존재를 만나고, 그의 안내로 더 깊은 곳으로 날아가 우주의 신성한 근원(신)을 만나 대화를 했다는 점이다.

의사들은 뇌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상황에서 의식이 활동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주류 과학자들에게는 생각, 감정, 영혼을 포함해 ‘의식이란 뇌의 생화학적 기능에 의해 발생하는 산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사 체험이나 사후 세계는 뇌의 환각 작용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알렉산더 박사의 경우 뇌가 완전히 꺼진 상태에서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의식은 뇌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그것이 영혼인가? 사후 세계와 신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알렉산더 박사는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나는 천국, 신, 영혼에 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의학적인 지식과 양립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신과 영혼이 실재하며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기사 직후 출간된 책 《나는 천국을 보았다》는 곧바로 미국 아마존 종합 1위, 뉴욕타임스 1위, 퍼블리셔스위클리 20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출간되었다.

 

인격적 겸손함과 신앙적 이정표를 선사해주다

 

종교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죽음 앞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에 따르면 믿음이 깊은 신자들은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반면, 무신론자 중에는 죽는 순간이 불행한 이들이 많다.

무신론자였던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나 영국의 시인 바이런,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도 임종과 말년을 비참하게 맞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은 죽었다’의 니체는 생의 마지막 10여 년간 정신병원에 들어가 끊임없는 우울증, 죄책감, 발작, 기괴한 행동 등을 보이며 고통을 받다가 세상을 하직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철저한 신앙생활을 했던 그가 반(反)종교, 반도덕의 선봉에 서게 된 이유는 기존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당시 전통적인 도덕규범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혁신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를 평생 지배해온 죄책감과 말년의 정신착란은 그의 불신앙과 관련이 없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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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일보 매거진

 

니체와 반대의 삶을 산 사람이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다.

 

그는 초년 시절 화려한 문학계 명성과 함께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의 나이 41세 때 딸 레오폴딘이 아버지의 타락을 통렬히 비판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적힌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자, 완전히 사람이 바뀌었다.

“나의 타락한 삶이 딸을 죽였다. 이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이제 하나님의 품에 거하리라."

그 이후 위고는 헌신적인 사람으로 바뀌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으며 말년에는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됐다. 독실한 신앙생활 속에 그의 문학도 깊어가 《레미제라블》 같은 대작을 잇달아 탄생시켰다.

1885년 그가 죽자 국민적인 대시인으로 추앙되어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결론적으로 나의 신앙심은 우울증을 통해 강화됐다. 나는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우울증의 치유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느껴졌다. 종교적으로 볼 때 우울증은 내게 고통을 주었지만 결국 신에게 다가가는 은혜도 선사한 것이다. 더불어 내가 부족하고 약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해주었다. 바로 그런 생각이 인격적 겸손함과 함께 신앙적 이정표인 셈이다.

<계속>

글 |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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