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 있는 포장 식품의 성분 표시를 보면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식생활 전반을 설탕과 함께하는 현대인이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200년 전만 해도 백설탕은 사치품이었다.과거에는 원료 식물에서 설탕, 즉 분자식이 C₁₂H₂₂O₁₁인 복잡한 자당 분자를 추출하는 수작업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그 시절 설탕은 왕궁 연회나 의식, 혹은 의학적 용도로 조금씩 사용되는 귀한 물건이었다. 19세기 중반에도 설탕의 가치는 20세기의 석유와 맞먹었다.산업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상황은 달라졌다. 압착기, 보일러,
이성적인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정에 따라 돈을 쓰는 상황이 많아지면, 계획에서 벗어난 소비를 많이 하게 돼 낭비가 잦아질 수밖에 없다.우리의 어떠한 마음이 소비에 영향을 미칠까? 이를 잘 알면, 감정으로 인한 과소비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1. 슬픔부정적인 감정들이 소비를 부추길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해서 다 같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뉴욕대학교 스턴스쿨과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발표한 한 연구에서는 슬픔과 불안이 의사결정에 반대되는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슬픔을 가진 개인은
내가 묵고 있는 바닷가 산속 방의 창에는 한밤중이면 이따금씩 뭔가 부딪치는 퉁 퉁 소리가 난다. 작은 박쥐들이 공중을 날다가 유리창에 부딪치는 것 같다.오늘은 박쥐소리에 실려 이십오년전쯤 만났던 그의 혼령이 시간의 이쪽편에 있는 내게로 다가온 환영을 느낀다. 그 당시 칠십에 가까웠던 그는 지금쯤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어느날 그가 나의 법률사무실로 찾아왔었다.“명함을 주시죠.”상담시 명함을 보고 먼저 이름과 연락처를 메모했다. .“장을 만드는 사람이 무슨 그런 게 필요합니까?”특이한 대답이었다. 그의 짙은 눈썹과 강한 눈빛도 그랬다.
지난 5일 일본의 포털사이트 야후(Yahoo!)에서는 45세의 한 자린고비 남성의 소식이 연일 뉴스검색 1위에 올랐다.남성은 20년 동안 절약정신을 발휘한 끝에 9억 원에 가까운 돈을 모아 현재 퇴사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위터에서 ‘절대퇴사맨’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절약적인 삶을 공유하고 있다.과연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았기에 9억 원을 모을 수 있었을까? 일본 매체 엔카운트가 남성과 접촉해 절약 노하우를 인터뷰했다.◇ 목돈 마련 비결은 최소지출, 최대저축남성의 목돈 마련 비결은 바로 저축이었다. 그는 엔카
‘사치품’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싼 시계나 요트, 보석 등을 떠올리곤 한다. 생필품이 아니면서도 특유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물건들이 특히 그렇다.그런데 식사 후 가볍게 디저트로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의외의 사치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가 평소 자주 먹지 못하면서도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과일들이 바로 그렇다. 음식전문매체 델리시에서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비싼 과일 7가지에 대해 소개했다.1. 유바리 킹 멜론유바리 킹 멜론은 일본 홋카이도 지방의 작은 마을인 유바리에서만 독점 판매되는 과일이다. 특유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약켓팅’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약과를 사기 위해서는 인기 가수의 콘서트 티켓팅처럼 어렵게 주문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약과는 명절만을 위한 음식이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간식으로만 여겨졌지만 복고 열풍과 함께 젊은층 사이에서도 인기 간식이 되어버렸다. 서양 디저트가 지배적이었던 그간의 모습과는 다르게 한국의 전통 간식이 디저트의 자리를 꿰차고 들어오는 것은 꽤나 긍정적으로 볼만한 일이다. ◆원래는 사치품약과에 대한 인기는 지금 MZ세대들만의 것이 아니다. 고려시대부터 널리 유행한 약과는 매우 고급 과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 앞서 발표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은 인간이 왜 돈을 벌려고 하는지, 왜 부자가 되려고 하는지, 그 출발점을 파헤치고 있는데, 스미스는 정곡을 찌른다. “이 세상의 모든 수고와 부산함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탐욕과 야심, 부와 권력을 추구하고, 남보다 뛰어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활필수품을 얻기 위해서인가? 하지만 그것은 가장 가난한 노동자의 임금으로도 얻을 수 있다.” 스미스는 사람들의 씀씀이를 잘 살펴보면 사치품이나 편의품, 혹은 허영과 겉치레에
소로가 진짜로 뒤집어 엎고자 한 것은 부자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맹목적인 물질만능주의였다.오로지 부만 좇으며 사치와 방탕을 일삼는, 그러면서도 부자가 되기만 하면 승자가 된 양 뽐내고 으스대는 그런 천박한 세태를 향해 일갈한 것이다. 소로에게 부와 재산이란 우리 삶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런데 소로는 이런 수단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곤궁해지고 독립성을 잃게 된다고 말한다. 부자가 되면 될수록 돈이 더 많이 드는 생활습관을 들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편의품과 사치품을 장만하는데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고, 그래서 결국 부를 얻는
소로는 《월든》에서 자발적 가난을 실험하고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삶이 충분히 가능함을 입증했다. 일체의 안락과 편의를 배제한 채 최소한의 소비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자신의 간소한 생활을 통해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소로는 자신의 이 같은 경험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무조건 편리와 사치를 추구하는 맹목적인 물질주의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 것이다. 소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간다. 과연 부자가 어떤 사람인지, 완전히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소로다운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소로의 새로운 정의를 들어보자. “
삼십여년 전 한 작은 잡지에 고정칼럼을 썼던 적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 퇴직을 하고 그의 일생을 걸고 만들기 시작한 잡지였다. 그는 어느 날 나의 사무실로 찾아와 이런 말을 했었다.“퇴직금과 물려받은 작은 땅을 밑천으로 혼자 잡지를 만들기로 했어요. 어디를 가나 연예인의 스캔들이나 피 냄새가 나는 사건기사들이 가득한 잡지투성이예요. 아니면 최상류층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사치품을 선전하는 잡지든가요.이런 잡지들 속에서 한번 완전히 거꾸로 가 볼 예정입니다. 촌스러운 디자인에 풀꽃 같은 보통사람들의 삶이 담긴 잡지를 만들어보는
소로는 부단히 새로 깨어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대상으로 치열한 인생 실험을 했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월든》이다. 《월든》의 제일 큰 특징은 소로가 직접 겪은 체험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상상이나 이론, 거창한 주의 주장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다. 소로가 집을 지을 때 쓴 비용과 첫 해 농사의 수입 및 지출 금액을 일일이 밝힌 이유는 그만큼 체험과 경험을 통해 배운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2년 동안의 경험에서 배운 것은, 첫째로는 이처럼 높은 위도에서도 사람이 필요한 식량을 얻는 데 믿을 수
주위를 둘러보면 앞선 이야기의 나무꾼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참 많다. 부와 권력, 명예를 가져다 줄 엄청난 행운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말이다. 하늘이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따스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소리다. 그런데 그것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독자들도 이 노인의 이야기가 황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옛날이야기니까 가능하지…” 하면서 요즘 세상에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웃어넘겨버릴 것이다. 그러면 좀더 현실적인 얘기를 해보자. 이건 실제로 있었던 이
베네치아발 빈행 OBB RJ132호. 매일 오전 9시55분 출발하는 특급열차다. 만년설에 뒤덮인 알프스산을 넘는다. 베네치아에서 빈까지의 소요시간은 7시간43분. 침대칸 심야열차도 있지만, 겨울의 알프스를 보기 위해 낮 여정으로 결정했다.국립악기박물관(www.kmt.at)은 최근 빈을 찾은 가장 큰 이유다. 악기를 통해 음악가를 살펴볼 수 있는 최적의 도시가 빈이라는 말을 베네치아 이탈리아인 친구로부터 들었다. 주기적으로 찾은 도시지만 그동안 악기박물관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빈은 악기 제조 도시로도 유명하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말러로 이어지는 음악가들이 빈에서 활동한 이유 중 하나가 빈산(産) 악기에 있다. 정밀기계를 대하듯, 예술을 넘어선 과학으로 악기를 주목한 나라가 게르만계 오스트리아다. 감정의 이탈리아, 이성의 빈 음악인 셈이다. 악기 제조에 관한 빈만의 노하우가 없었다면 천재음악가들의 출현도 없었을지 모른다. 모차르트의 피아노박물관 갤러리 13호가 모차르트 관련 악기 전시장이다. 이 곳에는 모차르트 신자라면 모두가 감동할 피아노 3대가 들어서 있다. 음향 구조 면에서 열악한 건반악기지만, 모차르트가 직접 연주했거나 소유했던 회사의 제품들이다. 18세기 중엽 피아노는 보통 사람들이 소유하기 어려운, 금수저 사치품에 속했다. 아버지 레오폴드는 돈과 무관한 흙수저 출신이다. 그러나 자식교육을 위해 금수저 전용 피아노를 장만했다. 조기 천재교육 덕분만이 아니라, 비싼 피아노를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결단’이 천재음악가 탄생의 출발점이었다. 모차르트가 사용했다는 피아노를 자세히 살펴봤다. 건반 하나하나의 두께가 얇다. 건반 깊이가 현대 피아노의 절반 정도에 그칠 듯하다. 연주 스피드가 빨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피아노 천재 모차르트 작품들이, 기존의 느린 바로크 음악과 구별되는 이유일 듯하다. 모차르트 부자의 불화20대에 접어든 모차르트와 아버지 레오폴드와의 불화는 너무도 잘 알려진 얘기다. 잘츠부르크 궁중악단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요청을 거부하고, 줄곧 반대하던 여관집 딸 콘스탄체(Constanze)와의 결혼을 통해 부자간 관계가 단절된다. 현실에 집착하는 ‘꼰대’ 아버지와, 자유분방한 천재 자식과의 세대 차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에서 주목할 부분이 하나 있다. 부자관계를 떠난 각각의 성장배경이다. 모차르트는 학교를 간 적이 없다. 음악 천재로, 여섯 살 때부터 궁중이나 고급연회장을 오가며 돈 버는 일에 나선 불쌍한 인생이다. 레오폴드는 다르다. 원래 대학에서 철학학위를 받은 지식인으로 음악을 전문으로 한 사람이 아니었다. 철학·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음악에 빠졌고, 무급으로 바이올린 연주자로 데뷔했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자면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에 통달하면서 음악으로 흘러간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학식·견문·지혜라는 측면에서 모차르트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거인이 아버지 레오폴드였다.그러나 그 어디에도 약한 부분은 있다. 모차르트는 레오폴드가 생각할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진 철저한 이단아였다. ‘근세적 사고’로 살아간 레오폴드와 달리 ‘근대적 사고’로 음악에 전념한 인생이 모차르트였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근세와 근대는 예술의 의미를 180도 다르게 만든 분기선이다. 간단히 말해 근세는 주문형 예술이다. 주로 교회나 왕, 그리고 왕 주변 인물들의 요구에 맞추는 ‘노동’이 예술이었다. 수요자 중심의 예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조차도 그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근대는 어떨까? 최소한의 요구에 맞추기는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먼저다. 100% 실현할 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작품을 주관적으로 표현한다. 공급자 중심의 예술인 셈이다. 모차르트 부자를 보면 고용인이나 하수인으로서의 레오폴드와 자유인 창조자로서의 모차르트로 구별된다. 모차르트 역시 초기에는 수요자 뜻에 맞춘 작품에 주력했다. 그러나 말기의 모차르트 작품은 다르다. 자신만의 색깔에 기초한 음악을 했다. 숨지기 70여일 전에 초연된 오페라 ‘마술피리(Magic Flute)’에서 보듯 독창적 스타일의 작품이 주류다. 철학·신학에 정통한 리버럴아티스트 아버지를 뒀지만, 시대를 앞서간 ‘진짜 예술가’는 무학(無學)의 아들 모차르트였다. 레오폴드는 1787년 68세의 일기로 세상을 뜬다. 모차르트는 4년 뒤 아버지를 뒤따른다.필자의 판단이지만, 아버지 생존기의 모차르트는 사춘기 청년으로 느껴진다. 작품의 대부분이 어두운 단조가 아닌 밝고 힘찬 장조다. 그러나 레오폴드가 사라지자 모차르트는 한순간 사추기 성인으로 변신한다. 그러나 가을은 너무도 짧았다. 겨울을 상징하는 단조음악 레퀴엠(장송곡)이 너무도 일찍 찾아왔기 때문이다. 모차르트가 마지막 남긴 작품은 K-626 레퀴엠이다. 타인을 위한 곡이었지만, 정작 본인을 위한 레퀴엠으로 연주된다. 직접 찾아가 확인했지만, 빈의 산 미카엘(St. Michael)교회가 레퀴엠 초연무대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뜬 지 5일 뒤, 그를 위한 조의곡으로 연주됐다. 유럽을 여행한다면 빈에 들를 것을 권한다. 모차르트와 아버지의 흔적을 통해 삶의 깊이와 넓이를 확대해나갈 수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