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흐르는 것은 흘러가게 놔둬라.바람도 담아 두면 나를 흔들 때가 있고,햇살도 담아 두면마음을 새까맣게 태울 때가 있다 아무리 영롱한 이슬도마음에 담으면 눈물이 되고,아무리 이쁜 사랑도지나가고 나면 상처가 되니그냥 흘러가게 놔둬라마음에 가두지 마라출렁이는 것은 반짝이면서 흐르게 놔둬라물도 가두면 넘칠 때가 있고,빗물도 가두면 소리내어 넘칠 때가 있다아무리 즐거운 노래도혼자서 부르면 눈물이 되고아무리 향기로운 꽃밭도시들고 나면 아픔이 되니출렁이면서 피게 놔둬라이근대(1965~), 시인우리는 종종 마음 속에 감정,
옛것이 주는 포근함과 정겨움이 있다.돌담 사이로 난 올레 끝에 마주하는 초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품처럼 따스한 가장 제주다운 것 중 하나다.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과 흙, 나무, 풀을 이용해 지은 초가집을 보면 산천초목뿐만 아니라 사람도 자연을 거스르기보다 자연에 순응해 살았음을 알 수 있다.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과 함께 제주의 가옥과 마을, 그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3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새 베고 집줄 놓고 초가지붕 새단장지난 1월 16일 제주성읍민속마을.아침 일찍부터 국가민속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된 '객주집'에서 '
K컬처의 부각과 함께 전주가 미식 투어의 메카로 주목받고 있다. 음식을 단순히 관광의 한 요소로 보기보다는 음식을 통해 지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접근법도 필요하다.음식의 지역적 배경과 특성에 대한 이해가 가미되면 여행의 품격이 한층 더 높아진다.전북 전주시는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선정된 곳이다. 전주시는 지역 특색이 있는 음식 문화를 체계적으로 보존·계승하기 위해 전주 음식 명인과 명가, 명소에 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또 전주 음식의 우수성을 살리기 위해 명인 7인, 명가 5인, 명소 2곳을 지정하고
2024 화천산천어축제가 6일 개막해 28일까지 23일간 강원 화천군 화천읍 화천천 일대에서 펼쳐진다.인구 2만4천명에 불과한 초미니 접경 도시는 겨울철이면 글로벌 축제 도시로 탈바꿈한다.꽁꽁 언 얼음으로 덮인 화천천 아래 유영하는 산천어낚시를 비롯해 맨손 잡기 등 겨울철 놀이 진수를 한곳에서 즐길 수 있다.축제 기간 100만명이 넘게 찾는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하기까지 화천군과 주민의 노력은 성공 축제의 밑거름이다.◇ 인구 2만4천명 최전방 군사도시…겨울마다 축제 도시가 된다세계 유일 분단국가 대한민국에서 북한과 가장 가깝게 마주한
"요새 '백세인생'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매일 황토밭을 걸으면 120살까지는 살겠어요."지난달 24일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 숨골공원에 조성된 황토 어싱광장에는 어린 아기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여러 사람이 모여 맨발로 황토를 밟았다.가족이 함께 말캉말캉한 황토에 손발로 도장을 찍고, 광장 가운데 세워진 돌하르방 모양 조형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물웅덩이에 과감히 발을 디뎌 시원함을 느껴보기도 하는 등 저마다 자유롭게 맨발 걷기를 즐겼다.특히 이곳 어싱광장은 길이 아닌 광장 형태로 넓게 조성돼 아이들에게는 흙 놀이터가 되고 있다.
◆ 준비 안 된 도전은 재앙, 달리기도 장비가 중요하다장비 70, 기술 30. 준비 안 된 도전은 재앙이다. 20년 넘는 시행착오와 막대한 투자(?) 과정을 거쳐 찾아낸 무기들.처음부터 누가 가르쳐줬으면 돈 좀 아꼈을 걸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대회 나가기 전날이면 늘 부산하다. 학창시절 소풍 가방 챙기던 것처럼. 꼭 대회가 아니더라도 좀 장거리라도 나갈라치면 이것저것 챙기는 데 시간이 쓰인다.싱글렛이냐 민소매 셔츠냐, 팬츠 아래엔 타이즈를 신을까 말까. 허리색을 맬 까러닝조끼를 맬까.허리색엔 파워젤을 두개 넣을까 세개 넣을까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지역에 기후변화 여파로 눈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리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와 미시간대학 등 소속 연구진은 지난 6월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이에 따르면 히말라야를 비롯한 전 세계 고산지대에는 최근 강우량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원래 이들 지역에는 주로 눈이 내렸다.연구진은 해발 8천848.86m로 세계 최고봉인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을 대표적 사례로 제시했다.6월 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에베레스트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초현실 공간을 달리다출발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경주 시민운동장을 출발한 사람들의 물결은 천년고도 경주 시내를 구불구불 구석구석 돌아나간다. 주택가 바로 옆에 들어앉은 거대한 무덤들은 카이로 호텔 창문 바깥으로 솟아올라 있던 이집트 피라미드의 신라 버전이다. 이국 땅에 온 듯한 설렘을 전날 밤 맥주 한잔으로 달랬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천마총 옆 한옥 팬션 처마 끝에는 달무리가 걸렸다. 몽환의 고리는 천년 신라 왕조의 왕관처럼 밤새 금빛으로 빛났다. 현재와 과거가 사이좋게 한자리에 공존하는 초현
장마가 시작됐다. 장마철 가운데 폭우가 쏟아지면 각종 재산·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종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이상화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국지성 폭우와 태풍은 짧은 기간에 환경이 급격하게 변해 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우리 몸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또, 식중독, 곰팡이, 호흡기 질환과 같은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질환에 노출되기 쉽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파상풍, 피부염, 곰팡이균 주의침수가 발생하여 무릎까지 차오른 빗물은 단순히 빗물만이 아니다. 도로 위
장마철에는 후덥지근하고 습한 날씨 때문에 바이러스 및 미생물이 빠르게 번식해 각종 질환에 걸릴 위험도 커진다.특히, 장마철에는 감염증 질환 발생률이 높기 때문에 나의 건강뿐 아니라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주의해야 할 질환과 그 예방법에 대해 알아두고 신경 써야 한다.■ 눈병여름철에는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흐르는 땀을 닦아낸 손에 묻어있던 바이러스 또는 각종 오염물질이 눈에 들어가면서 결막염, 다래끼 등 눈병을 유발한다.또, 여름철 수영장이나 해수욕장 등 물놀이를 즐기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전염되기 쉬워 물놀이 시설에서는 개
◆ 코로나 와중에? 그래도 달리는 게 맞다또 한 번의 고비는 코로나19 예방접종이었다. 64일째인 8월 18일(D-36)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차 접종을 했다. 백신 맞고 곧바로 달리다 부작용이라도 생기면 “매일 10km 뛰던 멀쩡한 아재, 백신 맞고 중태” 이런 기사로 언론들이 포털을 도배해 방역전선에 누를 끼칠 텐데. 그래서 접종 당일 무리하지 않는 차원에서 출근 전 5km 몸 풀기, 접종하고는 30시간 정도 경과한 뒤 저녁 퇴근 후 5km 서행 회복주로 웅녀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아스트라제네카는 2차 접종 때가 1차 때보다
비가 오고 있다. 열린 창문 틈으로 빗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소리가 들린다. 바다는 온통 뿌연 안개로 덮여 있다. 십일호 태풍이 엊그제 밤부터 북상하고 있다고 한다. 비가 와서 그런지 오늘따라 치솟는 소리를 내던 닭도 조용하다. 잔잔한 피아노곡이 방 안의 공기에 파문을 일으키며 퍼지고 있다. 이런 날은 마음 밑바닥까지 촉촉해지면서 감상적이 된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는데 문득 일본 영화의 한 장면이 마음속으로 쳐들어온다.양복을 만들던 기술자가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가 늙어가고 주문하는 사람들도 적어져 갔다. 나중에는 그가
지난 8일 밤 사이 8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차량 침수 피해가 속출했다. 계속 피해가 나오는 바람에 정확한 통계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어제 하루에만 수천대의 침수차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태풍이나 홍수 등으로 차량이 침수될 경우 자동차보험의 '자기차량손해' 담보 가입을 통해 보상받을 수 있다.다만, 자동차 창문이나 선루프를 열어 놔 빗물이 들어갔다면 자동차보험에서 보상하지 않는다. 개인의 실수로 인한 침수 피해로 보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폭우에 대한 대비요령을 알아본다. ◇ 운전시 갑자기 도로에 물이 차면 어떻게 해야 하나?폭우
살다 보면 남들의 잘못된 언행 때문에 화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똑같이 당했어도 누구는 화를 크게 내고 누구는 그다지 화를 내지 않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물론 사람마다 보는 것이나 생각하는 게 달라서 그럴 수도 있고, 인내심의 크기나 마음의 깊이가 달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그런데 이 말을 달리 표현해보면 사람마다 일어난 사실을 보고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는 말도 됩니다. 그렇다면 일어난 사건을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대체 뭘까요?그것은 결국 스스로 가진 기준이나 관점에 따라 같은 일에 화가 날 수도 있고
소로가 자신만의 고독한 숲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자 친구들이 대체 거기서 뭘 할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소로는 그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곳에서 나는 갈대 사이에서 속삭이는 바람소리만 들을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버리고 떠날 수만 있다면 그곳에서 아주 성공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친구들은 도대체 무엇을 할 속셈으로 거기 가려 하느냐고 묻는다. 계절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할 일은 충분하지 않겠는가?” 소로는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 살면서 실제로 그랬다. 《월든》의 열일곱번째 장인 〈봄〉에서 소로는 계절이 변
우리가 병원에 가면 “혈액순환이 잘되게 해야 된다”는 말을 항상 듣는다. 그만큼 혈액순환은 중요하다. 혈액순환이 잘 되면 면역력이 좋아지고 각종 병치레를 할 일이 없어진다.특히나 혈액순환은 겨울철 더욱 신경 써야 한다. 겨울에는 손과 발이 시려운 수족냉증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이 또한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기에 발생한다. 팔과 다리에 혈액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으면 피부가 퍼렇게 보이고, 건조해지며 손톱이 부러지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경북과학대학 바이오식품계열학과 정
가을을 알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젖은 도로 위에 물이 괴고 있었다. 법무차관이 빗속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차관의 어깨 뒤로 우산을 받치고 있는 팔이 보였다.하급자인 듯한 공무원이 빗물이 괴인 도로에 무릎을 꿇고 차관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있었다. 그건 공무원이 아니라 공노비의 비굴한 모습이었다. 법무차관은 인간을 존중해야 하는 직업인 판사 출신이라고 했다. 그런 대접에 익숙한 듯 개념도 없는 것 같았다.몇 년 전이었다. 법원에서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데 낯익은 얼굴이 다른 통로를 통해 입구로 나오는 게 보였다. 군에서
만약 누군가 비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 게 좋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것일 확률이 높고, 정확히는 비 오는 날 '집 안 침대 위 이불에 둘러싸여 보송하게 맞는 멜랑꼴리'를 좋아하는 것일 거다. 그러니까 비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비'를 좋아하는 건 아닐 수 있다. 장마가 시작됐다. 장마 하면 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내가 미쳤던 날이었다. 난 살아오며 지금까지 딱 두 번 미쳤고 공교롭게도 두 번 모두 비 오는 날이었다. 나 역시 ‘비’보다는 비 오는 날의 보송한 멜랑꼴리를 좋아했다. 그러나 두 번의
열세 살 무렵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녹음이 짙어지던 어느 날, 동네 아이들이 빗물로 불어난 냇가로 몰려갔다. 큰 다리 아래 넓은 개천가는 아이들의 주 놀이터였다. 여름 내내 멱을 감거나 자잘한 물고기들을 잡기도 하고, 참외 서리도 하면서 한나절을 보낸다. 겨울이면 두툼한 솜옷을 입고 목도리로 얼굴까지 꽁꽁 싸매고 나와 썰매를 타거나 얼음지치기를 한다.그날도 내 또래 아이들이 어울려 각자 만든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어울려 나가는데 나는 그 친구들을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등에 업힌 동생 때문이었다. 태어난 지 넉 달 된 막내는 오 남매 중 늘 내 차지였다. 친구들이 없는 동네는 하릴없이 심심하기만 했다. 결국은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낚싯대를 들고 집을 나섰다. 뒷집에 가신 엄마에게 말도 없이 나온 내 등에는 여전히 막내가 매달려 있었다. 방에 뉘어놓고 나오려 했지만, 엄마가 엑스 자로 꽁꽁 매 놓은 띠를 풀 재간이 없었다. 신작로를 따라가는 길은 따가운 뙤약볕이 내리쬐지만, 발걸음은 신이 났다. 몇 가지 준비물이 든 양은 ‘바께쓰’와 작대기 낚싯대도 덩달이로 신이 났다. 가끔 대형 트럭들이 지나다니는 큰 다리 밑 여울목은 우리들의 위험한 놀이터였다. 육중한 시멘트 교각 아래로 몰려드는 물살에 다리를 넣고 버티면서 아찔한 치기를 부리는 쪽은 거의 남자애들이었다. 여자애들은 그 아래쪽으로 넓게 펼쳐진 가장자리에서 멱을 감거나 낚시를 하곤 했다. 잡은 고기들은 집에 가져가서 끓여 먹거나 닭 모이로 쓰였다. 배가 출출할 때면 옆으로 이어진 밭에서 알이 덜 찬 감자를 캐서 아삭아삭 씹어먹기도 했다.그런데, 재미난 시간을 기대하고 찾아간 그곳에 웬일인지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자갈밭 사방 어디에도 아이들이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왕대’라 불리는 작은 다리께로 간 것 같았다. 별수 없이 혼자 앉아서 물가의 풀 사이로 낚싯줄을 내렸다. 그날따라 잔챙이 입질이 제법 잦았다. 간혹 빠가사리 새끼가 바늘을 물었을 때는 가슴이 방망이질 치도록 재미났다. 업혀 있던 막내가 칭얼대곤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풀어서 자갈밭에 뉘면 좋으련만 꽁꽁 맨 띠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풀리지 않으니 어쩌랴.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양동이에 잔챙이들이 하나둘 담기고 있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후드득 쏟아진다. 하늘을 보니 시커먼 비구름이 이미 머리맡까지 와 있어서 겁이 덜컥 났다. 깔고 앉았던 비닐을 들고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려는데 갑자기 위쪽에서 쿨렁쿨렁 몰려온 흙탕물이 발 앞에 있는 흙을 파먹고 낚싯대와 양동이를 휩쓸고 가버린다. 순식간에 둥실 떠내려가는 것들을 보고 놀랄 겨를도 없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데 흙탕물이 어느새 내 발목을 덮는다. 순간, 등에 업힌 동생 생각이 나며 공포감이 엄습했다. 뒤돌아서 엄마!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자갈밭을 지나 얕은 둑길을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더욱 거세졌다. 엉겁결에 손에 들고 있던 비닐을 뒤집어썼다. 넓은 자갈밭을 삼키고 순식간에 도로를 점령하여 콸콸 흐르는 흙탕물에 쓸려가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엄마를 연신 부르면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던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쯤, 마침 수박밭의 원두막이 나타났다. 무작정 올라가서 보니, 뒤집어쓴 비닐 덕분인지 막내와 내 웃옷은 그리 많이 젖지 않았다. 손에 땀을 쥘 정도로 줄달음치기도 했지만, 동생 체온 덕분인지 등은 따뜻하기만 했다. 칭얼칭얼 울어대던 동생도 잠이 들었는지 색색거리는 숨결이 느껴진다. 만약에 띠를 풀 수 있어서 동생을 자갈밭에 뉘어놨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우성치는 빗물을 벗어난 곳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시간이 멈춘 듯한 평화로움이 밀려왔다.잠깐이었을까, 깜박 졸다 깬 눈앞에 동그란 모양이 들어왔다. 약해진 빗줄기에 말갛게 얼굴을 내민 수박이었다. 유난히 싱그러운 그 수박색을 무슨 색깔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수박뿐인 것처럼 탐스럽게 둥근 진초록의 줄무늬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뱃속에서는 연신 꼬르륵 소리가 새 나왔다.이윽고 비가 멎은 사방은 다시 차려진 무대처럼 낯선 황혼이 검붉은 색으로 깔렸다. 온 세상이 붉디붉었다. 타박타박 지친 걸음이었지만 처음 보는 세상에 대한 황홀감으로 내 몸도 붉게 타는 것 같았다. 등에서 새근거리는 동생을 계속 추스르면서도 알지 못할 경외감에 도취 되었던 순간이다.집에는 엄마가 준비하던 저녁거리들이 도마 위며 부뚜막에 널려 있었다. 갑자기 입에서 침이 고였지만 엄마는 없었다. 여전히 한 몸이 돼 풀리지 않는 동생과 나는 방에 누워서 엄마가 돌아오시기만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아이고! 아가, 아가! 이 문디가시나야!"비명을 지르듯 내뱉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반가운 마음이 와락 들어 엄마를 쳐다본 순간, 그렇게 무서운 엄마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불같이 화를 내시는 목소리는 거의 흐느낌이었다.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인데 비가 쏟아지자 엄마는 우산을 들고 딸을 찾아 밖으로 나가셨을 게다. 그런데 애를 업고 나간 딸내미가 낚싯대를 들고 가는 걸 봤다는 동네 사람 말에 얼마나 놀란 마음으로 큰 다리께로 뛰셨으면…. 그곳은 큰비 뒤에 멱 감던 아이들이 종종 급류에 익사하곤 했던 곳이 아니던가. 시뻘건 급류만 휘도는 다리 밑에서 새끼들을 찾아 헤맨 심정이 어떠셨을까. 혹시나 집에 돌아왔을까, 기대 반 근심 반으로 돌아오는 길가에 거적때기까지 들춰보셨다는 어머니!막내를 다독거려 놓고 급히 저녁 준비를 하시는 엄마를 부엌 문지방에 턱을 괴고 내려다보는 내 뒤로 볼멘 목소리들이 날아든다.“누나 때문에 나만 괜히 혼났잖아! 동생 안 봤다고."“나두! 누나 빨리 찾으라고."부치던 호박전을 내 입에 넣어주시던 어머니 손길이 나머지 동생들 입에도 차례로 넣어주시느라 분주하다. 이렇게 제비 새끼들처럼 입을 벌리고 받아먹는 아이들이 있어서 엄마는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지금 생각해도 동생을 업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저녁에 황혼은 유난히도 붉었던 것 같다.
한때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노선의 하나였던 환 바이칼호를 타고 이르츠쿠츠로 향하고 있었다. 열차 안은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로 가득 찼다. 광활한 시베리아의 수많은 물길이 흘러들어 생성된 호수는 가히 바다라고 불릴만한 크기다. 앞 좌석과 옆의 일행들도 이런 바다, 아니 호수는 처음이라는 듯,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젊은 시절에는 유럽이나 미국의 문화를 만끽하는 여행을 좋아했다. 하지만 인생을 어느 정도 지나보니 이와 같은 대자연과 역사의 현장에서 더 진한 감동이 올라온다. 시베리아가 간직한 생명의 원천과도 같은 바이칼호와 유배지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호수의 검푸른 물결을 따라가는 차창에는 실비가 부딪치며 방울져 내렸다. 선로 옆 야생화들이 달리는 기차가 일으키는 비바람에 허리를 꺾으며 넘어진다. 열차는 덩굴식물로 둘러싸인 허름한 터널로 들어갔다. 무엇인가 아스라한 역사의 현장으로 나를 데려갈 것만 같은 긴 터널이다. 계절 덕분인지 평소에 막연히 상상했던 유형지라는 황량함은 없다.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숲과 부슬비에 뿌옇게 흐린 마을이 차창으로 흐르는 8월의 시베리아는 풍요롭다. 게다가 아직도 태고의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는 바이칼호를 생각하면 이곳은 천혜의 땅임이 분명하다. 지구의 건강을 지켜줄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대지다. 천천히 달리던 기차가 마을이 보이는 다리 위에 멈춰 섰다. 그 아래 호숫가에 빗물만 피할 수 있는 좁은 차양을 친 가게가 세 개 있고 아래 허술하게 차린 생선 판매대가 있다. 이 호수에서만 살고 있다는 ‘Omul’이라는 물고기가 수북이 쌓여 있다. 숯을 피워 소금을 뿌린 채 굽고 있는 오물의 냄새와 연기가 가게마다 피어오른다. 여행객들은 그곳에 서서 오물오물 먹는 사람도 있고, 봉지에 싸서 기차로 가져오는 사람도 있다. 기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객실 안에는 난데없는 오물파티가 벌어졌다. 각자가 가지고 온 도시락과 맥주, 과일을 꺼내서 좌석 앞 테이블 위에 펼쳐놓는다. 일행 중에는 오는 길에 준비해왔던 보드카를 호기 있게 꺼내놓는 사람도 있다. 오물은 신선해서 그런지, 비린내도 별로 없고 담백하면서도 고소했다. 흥이 오른 어수선함을 뒤로하고 화장실에 가다가 화장실 바로 앞에 있는 두 좌석짜리 테이블에서 뭔가 좀 색다른 느낌의 일행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다시 보니 팔십 대 정도로 보이는 두 노인이었다. 러시아 노부부인 듯한 그들은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고 지낸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퀭한 눈빛으로 관광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떠들썩한 기차 안 분위기에서 그들이 눈에 띈 건 그 표정에 내려앉은 적요함 때문이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호수의 풍광은 아랑곳없다는 듯, 창을 등지고 앉아 기차 안의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공허한 눈빛에는 깊게 가라앉은 고독감이 담겨 있다. 마치 이 모든 것들이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듯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바짝 마른 몸피를 감싸고 있는 옷은 2차대전을 다룬 영화에서나 봄 직한 군복 같다. 허름하지만 단정한 스웨터 차림의 할머니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마치 수용소에서 방금 나온 사람처럼 남루해 보인다. 나는 자리에 돌아와서도 아예 앞자리 친구와 좌석을 바꿔 앉은 후, 그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영화의 한 장면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낯선 조명이 그들에게만 오롯이 비치는 듯했다. 순간,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이내 눈길을 돌렸지만, 찰나의 교감이랄까? 은밀한 호기심이 들킨 것 같은 전율이 일었다. 할머니는 가끔 창밖을 바라보며 아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치매를 앓는 듯해 보였다. 기차가 또 다른 터널을 빠져나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제대로 탁 트인 거대한 바이칼호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푸르다 못해 검은 물빛은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이 대지에 어떤 물길이 모여들어 저토록 바다 같은 호수를 이루었나. 그 속에서 살아갈 무수한 생명의 종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기차는 마치 호수를 향해 돌진하듯 가까이도 붙어서 달린다. 문득, 눈을 돌려 그 노인들을 다시 보았다. 그 자리에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계신다. 이내 작은 움직임이 일었다. 할아버지가 탁자 위에 세워둔 반지르르하게 손때 묻은 나무통을 만지작거린다. 마치 아주 예전에 보았던 구두닦이 통처럼 작은 나무를 여러 개 덧대어 만든 직사각형 나무통이다. 뭔가 오래된 이야기들이 그 속에서 실처럼 풀려 나올 것 같은 통이다. 꼭다리 모양의 손잡이를 위로 들어 올리자 2층 선반으로 된 구조가 보인다. 할아버지가 안에서 뭔가를 꺼내자 할머니도 앞으로 구부정하게 고개를 숙여 그 안을 들여다본다. 할아버지는 깡통과 사과 한 개, 플라스틱 물병, 낡은 손수건에 싼 빵 조각, 일회용 PVC 접시와 용기를 하나씩 꺼내 식탁 위에 나란히 놓는다. 용기 안에 든 것은 채소절임 같은 음식이다. 그릇들은 용기의 색이 바랜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재사용한 것임이 분명했다. 깡통을 둘둘 말고 있던 탁한 빛깔의 비닐봉지도 여러 번 빨아서 쓴 흔적이다.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의식을 치르듯 식탁에 손수건을 편다. 플라스틱 접시에 캔 속에 든 고기스튜를 덜어 놓고, 사과와 거친 빵을 잘라서 할머니 입에 넣어준 뒤, 당신 입으로 가져간다. 여행의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두 노인이 최소한의 음식을 드시는 모습은 카메라에 담을 용기조차 낼 수 없는 경건함이 흘렀다. 누군가의 인생을 오롯이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다른 가족도 없이 오직 병든 할머니만을 보살피며 살아갈 것 같은 노인의 눈빛 너머에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지. 이념과 경제가 붕괴된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몸으로 겪었을 당신들의 삶이 그대로 담긴 식사다. 마치 소비에트연방 시절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된 고려인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쓸 수 있는 돈이라고는 일절 수중에 없이, 주변에 널려진 자연에서 얻은 것들에 의지해 연명하고 있을 것만 같다. 기차표는 어떻게 마련하셨을까. 자녀들은? 어쩌면 병든 아내와 마지막 여행은 아닐까? 나와 동시대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는 노인의 모습이 지금도 기차 안의 관광객들과 함께 오버랩 된다. 시베리아 여행이라는 이국적 감흥이 그 거대한 대지에서 살아왔을 한 인생과 섞여 묵직한 질감으로 내려앉았다. 오래전 그 시대에도 이 고장의 햇빛과 바람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두 노인은 이르츠쿠츠에 도착하기 전 어느 역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갔다. 나무도시락통을 들고 남은 손으로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노인은 한 시대를 기차에 내려놓고 유유히 멀어져갔다. 기차는 다시 자작나무숲이 이어진 호수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가본 적 없는 시대의 잔흔이 노인이 떠난 빈 의자에서 흔들린다. 열차 안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가 흘러나온다. 왠지 모를 뭉클한 감정이 이 대지의 질감과 섞여 함께 흐른다. 짧은 동행이었지만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저릿한 울림을 준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