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국내 기업의 사보에 ‘삶은 고전에서’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다. 직장인들이 일상에서 부딪치는 고민을 듣고, 고전 소설을 소재로 그 해답을 제시해주는 일종의 인생 상담 칼럼이었는데, 한번은 이런 고민이 들어왔다. 

직장 동료가 자기보다 앞서가고 선후배가 아주 뛰어난 실적을 내면 축하해주기 보다는 오히려 질투하게 되고, 자꾸만 자신이 실패한 낙오자로 보이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라도 동료와 선후배를 깎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좀더 마음 편하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는 하소연을 전해왔다.

 

사실 질투가 됐든 시기가 됐든 경쟁 의식이 됐든, 그것이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는 나의 행복과 성공의 잣대를 내 안에서 찾지 않고 ‘타인의 거울’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내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세상사람들이 나를 성공했다고 봐줄까? 

이런 식으로 타인이라는 거울에 반사된 내 모습을 의식하다 보니 괜히 남의 일에 참견하게 되고 상대를 깎아 내리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내 인생이고 굳이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사진= 프랑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의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의 삶을 바탕으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제목으로 쓰인 달과 6펜스는 둘 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나지만 상반된 두 세계를 암시한다. 달이 영혼과 꿈의 세계, 원시적 삶에 대한 지향을 의미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세속적 가치에 대한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은 이 작품에서 6펜스로 상징되는 세속적인 세계를 거부하고 달을 향해 떠난 한 자유인의 인생 행로를 추적한다. 화자의 두 의대 동창생에 관한 이야기인데, 작품 줄거리와는 별 연관성 없는 에피소드지만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압축해서 보여주는 대목이다.

화자는 우연히 런던 거리에서 의대 동문 카마이클을 만나 저녁식사에 초대받는다. 카마이클은 기사 작위까지 받은 유명 의사로 연봉 1만 파운드(현재 우리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5억원 정도 된다)에 예쁜 아내와 멋진 저택에서 살고 있다. 

 

가난한 의대생 시절에 비하면 처지가 참 좋아졌다는 화자의 말에 카마이클은 이게 다 아브라함이라는 의대 동창생 덕분이라고 말한다. 카마이클은 학창 시절 늘 아브라함에게 뒤졌다.

아브라함은 워낙 뛰어난 친구라 경쟁이 붙은 상이나 장학금은 모조리 가져갔고 대학병원의 정식 의사 자리도 차지했다. 카마이클은 결국 개업의를 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그때 갑자기 아브라함이 사직서를 내고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그 바람에 아브라함의 자리를 꿰찬 카마이클은 승승장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왜 부와 명예가 보장된, 모두가 탐내던 그 지위를 버렸던 것일까?

화자는 우연히 아브라함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로부터 직접 들은 사연이 있다. 아브라함은 대학병원의 정식 의사 발령을 받자 잠시 휴가를 내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 화물선의 선의(船醫)가 되어 여행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탄 화물선이 지중해 연안의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한 순간 돌연 환희와 벅찬 자유의 느낌이 그의 가슴을 뒤흔든 것이다. 그는 단 한 순간만에 나머지 인생을 그곳에서 보내기로 결심하고 현지 보건소에서 일하게 된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았네.” 

아브라함은 타인의 거울을 없애버린 것이다. 후회해본 적은 없었느냐는 화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아니, 단 한 번도 없었네. 먹고 살 만큼은 버니까. 난 만족일세. 죽을 때까지 지금처럼만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라지 않겠어.”

 

다들 타인의 거울로 자기 인생을 비춰보고, 심지어는 다른이의 삶까지 그런 잣대로 재단하고 판단한다. 시기와 질투로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도 실은 자기 내면에 분명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외부의 기준, 그러니까 타인의 거울만 보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과감히 타인의 거울을 박살내 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것이다.

자기 인생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나 내면 성찰을 해볼 겨를도 없이 그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따라가면서 귀중한 삶의 시간들을 헛되이 보낸다면 그건 죽은 인생이나 다름없다.     <계속>

글 | 박정태 월든스쿨 교장

박정태는 한국일보 등에서 오랫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했으며, 현재 저술 및 강연을 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알고 나서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10년간의 《월든》 공부를 토대로 독자적인 커리큘럼을 만들어 ‘월든 강의’를 하고 있다. 《월든》을 좋아하고 소로를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만든 ‘월든 스쿨’의 교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불멸의 문장》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자연의 순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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