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말씀대로 우리가 생명을 잃는다면 세상을 다 얻은들 무슨 소용입니까? 모든 것의 시작은 생명(법)이니 생명이 있은 이후에야 나란 생각도 만들어지고 이 몸과 마음도 생겨나며 그로 인해 세상도 인식되어 존재하기 시작합니다.그러므로 나와 세상의 시작(제1원인)은 이 몸과 마음이 아닌 생명(법)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몸과 마음인 자기가 먼저고 그런 내가 생명을 얻어 세상을 살아간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착각분별을 전도몽상이라 하는 거지요.그런데 우리 삶 전체와 생명을 한시라도 분리할 수가 있습니까? 분리되는 순간 바로 죽게 되
바쁘게 살아갈수록 자신을 자책하고 부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존감은 매우 낮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내부적으로 스트레스는 더 쌓이고, 외부적으로 짜증・화・본능적 욕구 충족 등 ‘나쁜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다.이럴 때일수록 스스로 마음을 쉬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연민 훈련을 해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마음챙김 명상에서는 일명 ‘자비명상(compassion contemplation)’이라는 이름으로 실시하고 있다.당초 불교 수행법에서 파생됐으나 미국에서 긍정심리학 등이 포함되면서 프로그램화 됐다. 방법은
[관념연속성]을 말했더니 그 말에 의지해 자기가 갇혀있던 기억(생각+감정)들의 실체를 정견하고 깨났다며 감사해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비단 이말 뿐만이 아니라 [생명의식]이라든가 [앎], [봄]같은 것도 체험하니 너무 좋다고들 하십니다.하지만 이런 말들은 단지 지금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채 갇혀있던 무지에서 벗어나오게 하는 지팡이(방편)역할을 하니까 좋은 것일 뿐 이 수준에서 한 번 더 나아가려면 이런 말들의 본질은 다만 임시방편으로서 스스로 그 말이 진리 자체인 건 아니란 진실까지를 똑똑히 봐야합니다. 즉 법상(法相)이란 거지요.
여호수아 13장“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수 13:1)여호수아가 늙었습니다. 할일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첫발을 딛을 때만 하더라도 여호수아는 자기 생애 동안 정복 전쟁을 완수할 수 있을 줄 알았을 것입니다.그러나 정복하지 못한 땅이 매우 많이 남았습니다. 그가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혼신을 다했지만 미수복지역이 남은 것입니다.그런데 왜 그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을까요? 무리하지 않았을까요? 욕심 부
여호수아 9장“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수 9:14-15)길을 모르면 물어봐야 합니다. 일을 모를 때도 물어보면 됩니다.한번 물어보면 될 것을 묻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여쭈어보지 않았던 것은 여호수아의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너무 강하고 담대했던 것일까요? 여호수아는 무슨 자신감으로 혼자 결정했을까요?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어디로
고등학교 시절, 교실 정면의 칠판 위에 교훈(校訓)이 걸려있었다. 자유인‧문화인‧평화인… 3년 내내 교실을 드나들며 무심히 바라보곤 했던 글귀가 두터워지는 나이테와 함께 점점 더 또렷한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자유 없이 문화 없고, 문화 없이 평화 없다.자유는 두렵다. 자유 앞에는 스스로 그리고 홀로 책임져야 하는 적막한 광야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자유와 권리는 개인성이 강하고, 책임과 의무는 공공성이 무겁다.자유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공공의 책임은 등한시되고, 서로의 탐욕이 부딪치는 상쟁(相爭)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자유와 함께 책임
행복을 볼 수 있을까?대답은 예스다.현대 과학은 행복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상태를 통해 행복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미국 위스콘신대 리처드 데이비드슨 교수팀은 세계적 명상 고수인 티베트 스님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지금까지 가장 행복한 뇌상태를 보인 이로 프랑스인 승려 마티유 리카르(77)를 꼽았다.그의 뇌를 정밀촬영했을 때 행복감을 나타내주는 좌측 뇌부위 활성화 정도가 최고였으며, 피질 두께와 밀도도 대단했다.놀람이나 분노를 담당하는 기능은 안정적인 반면, 기억이나 공감, 자기조절능력을 관장하는 뇌기능은 아주 발달했
다섯달 동안 집을 수리하면서 매일 노동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젊은 러시아인 일용잡부는 먼지 구덩이 속에서 끊임없이 쓰레기를 나르고 벽돌을 옮겼다. 잠시 쉬는 시간은 핸드폰을 들고 가족과 연락하는 것 같았다.그는 밥벌이를 위해서 먼 나라로 왔다. 나는 저녁에 그에게 품값을 주었다. 그는 감사하게 받았다. 그의 노동이 가족에게 감사한 밥이 될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밥벌이 앞에서 양순했다.조적공 영감은 반쯤 잘려진 녹슨 드럼통 안에서 시멘트와 물을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반죽이 부드러워지기를 완강히 거부 할 때가 있다. 반죽기를 잡은
수전 오코너 박사의 말처럼 한국은 확실히 “정신적 고통이 만연한 나라”인 것 같다. 그것은 심각한 빈부의 격차, 대학입시와 출세 및 성공 등을 위한 치열한 경쟁, 이념적 대립으로 인하여 사회에 만연된 증오심, 지나치게 남과 비교하여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 성공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등으로 비롯된 결과라고 여겨진다.그러나 이러한 성공·출세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건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행복이나 풍요가 아니라 극단적 이기주의와 초조함, 절망, 외로움 등의 불행한 마음이었다.다행스럽게도 정부와 뜻있는 인사들이 이런
이슬람 수피즘 시인인 루미의 시(詩)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옳음과 잘못이란 생각 너머에는 모든 게 수용되는 활짝 열린 장(場)이 있어요. 거기서 우리 다시 만나요.”이런 말을 한 것으로 봐서 루미는 깨달은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활짝 열린 장(場)은 지금도 우리와 세상을 사랑과 은총으로 감싸고 있지요. 그렇기에 누구라도 그 장(場)에 닿은 사람은 그 은총과 지복을 체험합니다.이것은 비단 어느 특정 한 종교만의 영역이 아닙니다. 때로는 아름다운 음악이나 이야기 혹은 감동적인 실화를 통해서, 때로는 향기 나는 지혜로운 가르침
서가를 정리하다가 소설가 최인호씨가 수덕사에 묵으면서 쓴 에세이집을 발견했다. 그가 죽기 몇 년 전 쓴 글 같았다. 아마도 암이 발견되기 전이었을 것이다. 투병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책 속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곧 닥쳐올 노년기에 내가 심술궂은 늙은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는 것이 내 소망이다. 무엇에나 올바른 소리 하나쯤 해야 한다고 나서는 그런 주책없는 늙은이, 위로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신체의 고통을 호소하는 그런 늙은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하나 더 바란
갓난아기의 의식세계 속에서 생명은 본래부터 통째 하나로 살아있습니다. 왜냐면 본래 그렇게 태어났으며 아직 분별에 의해 세상이 주체(나)와 객체(대상)로 이원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아기는 세상의 근원이 되는 자기 생명의식을 스스로 자각하는 것조차 모를 뿐입니다.그러나 자라나면서 우리는 생각으로 이것과 저것을 분별해 나누는 걸 배웠지요. 그리고 그 분별심은 무럭무럭 자라나 이젠 세상을 온통 따로따로 다 갈라놨습니다.그 결과 우리 모두는 지금 이처럼 몸을 갖고 사는 삶에는 잘 적응하게 되었지만 그 대신 수많은 본래 없는 생각과
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흐르는 것은 흘러가게 놔둬라.바람도 담아 두면 나를 흔들 때가 있고,햇살도 담아 두면마음을 새까맣게 태울 때가 있다 아무리 영롱한 이슬도마음에 담으면 눈물이 되고,아무리 이쁜 사랑도지나가고 나면 상처가 되니그냥 흘러가게 놔둬라마음에 가두지 마라출렁이는 것은 반짝이면서 흐르게 놔둬라물도 가두면 넘칠 때가 있고,빗물도 가두면 소리내어 넘칠 때가 있다아무리 즐거운 노래도혼자서 부르면 눈물이 되고아무리 향기로운 꽃밭도시들고 나면 아픔이 되니출렁이면서 피게 놔둬라이근대(1965~), 시인우리는 종종 마음 속에 감정,
세상이 너무 ‘스마트’해졌기 때문일까? 가정에서 정겨운 모습도, 이웃과 격의 없는 관계도 찾아보기 힘들다. 학교에서 아이들간의 있을 수 있는 다툼도 ‘폭력’으로 해석되며, 선생님의 당연한 훈육도 ‘아동학대’로 몰릴 수 있다.직장 동료간 자연스런 농담도 쉽지 않다. 이성간의 관계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 사회적 이슈를 놓고 대화는 거의 금기사항이다. 21세기 지금은 사람들이 자유분방한 감정 표출 때문이 아니라 겹겹이 억압된 감정들로 고통 받는 시대가 됐다.1990년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던 ‘신과 나눈 이야기(Conversation
요즘은 모든 것에서 디자인이 강조되고 있는 시대여서, 이제는 마음도 디자인이라는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자아를 치유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하여 성장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자아를 초월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는 마음의 디자인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앞에 쓴 글들에서 마음디자인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몇 편의 글을 쓴 것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문관인 수전 오코너 박사는 한국의 정신건강 시스템 전반을 다룬 평가보고서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알코올 남용과 도박, 인터넷 중
초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리고 가정환경도 비참했다. 책임지지 못할거면서 왜 자기를 낳았느냐고 집을 나간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소년이었다.그는 돈을 벌면서 대학을 다녔다. 일년을 벌어 일 년을 다녔다. 팔 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무역업으로 성공했다. 뉴욕과 홍콩, 여의도에 부동산을 가진 부자가 됐다. 주로 외국에서 살기 때문에 거의 보지 못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친구 관계가 옅어지는 것 같았다.몇 년 전 내가 적극적으로 그에게 연락을 해서 만났다. 그는 어린 시절 나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모든 생명의 아버지, 우주의 창조자시며 통치자, 역사의 주님.당신의 계획은 알 수 없고당신의 영광은 흠이 없고당신의 자비는 마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평화는 당신께 있습니다.혼란과 절망이 가득한 이 세상, 당신의 법을 무시하는 이 세상, 당신의 이름 부르기를 잊은 이 세상, 당신의 현존을 외면하는 이 세상에서 올리는이 기도를 자비로 들어주시옵소서. 저희가 당신을 모르기 때문에 평화를 모릅니다. 저희를 지배하려고 위협하는 무기들을저희가 지배하도록, 과학 지식을 전쟁과 파괴가 아니라평화와 번영을 위해 사용하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하다 보니 울적하고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씩 밝고 가벼워지더군요.사실 인간의 마음도 에너지며 주파수와 진동수가 있다고 하지 않나요. 따라서 마음이 가벼워지면 자연히 높은 주파수, 빠른 진동수의 에너지를 갖게 되는데 이것이 보다 행복하고 영적인 세계로 인도해준다는 말이 있죠.제가 이 책을 읽은 지가 벌써 반년이 지났기 때문에 아마도 지금까지 적어도 수만번 이상 흥얼거려 봤을 겁니다.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심리학에서 파블로프의 개 이야기 있잖아요. 먹이를 주기 전 땡땡 종을 치면 개가 ‘조건반사’로 침을 흘리듯,
잠시 아마추어로 연기를 한 적이 있었다. 재연드라마를 활용한 시사프로그램의 사회자 역할이었다. 드라마 속에 잠시 들어가 해설해 주는 역할이었다. 한 프로에서 다섯 장면 정도를 내가 맡았다.그날은 월미도 선착장에서의 촬영이었다. 촬영팀의 이동은 큰 부대의 이동 같았다. 피디와 탤런트, 스텝진과 엑스트라가 탄 버스가 있고 그 뒤로 크레인 트럭, 조명트럭, 레일 등 촬영 도구를 실은 트럭들이 따르고 있었다.나는 전날 대사를 외우느라고 고생했다. 만만치 않은 분량이었다. A4 용지 다섯 장 정도의 분량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암기해 달라
우리나라에 기독교문화가 들어오고 생활방식이 많이 서구화됐지만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죽음과 내세관이다.미국을 비롯 서구를 가면 집 근처, 교회, 학교, 공원 등지에서 아름답게 꾸민 공동묘지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서구인들에게 죽음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 그들의 종교관답게 죽음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내세로 이어져 있다.그러나 우리는 질겁을 한다. 옛날부터 무덤이나 공동묘지는 일반 사람들의 생활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과거 유교 풍습으로 죽은 조상들에 대한 예(禮)는 극진히 갖추면서도 대체로 한국인들은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