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학전에서 열다섯 작품 정도를 쓰고 연출해 공연을 올렸는데, 일 참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지난 32년간 대학로에 일군 터전을 돌아보는 김민기(72) 학전 대표의 소회는 땀을 닦으며 그간의 일을 돌아보는 농부처럼 소박했다.한자로 배울 학(學)에 밭 전(田)자를 쓰는 소극장 학전은 김 대표의 평생 일터였다. 최근 학전의 문을 닫기로 결정한 그는 담담한 소회에 이어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았다.김 대표는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죽는 날까지 학전을 운영하려 했는데,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말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와 호소하는 사람마다 “세상이 왜 이래요?”하고 말하곤 했다. 정의가 강물같이 흘러야 하는데 왜 그렇지않느냐고 내게 따졌다.내가 매일 법정에서 보는 세상은 더러운 흙탕물로 가득 찬 늪 같은 세상이었다. 나는 내게 따지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본래 그런거야 그럴 수 있어’라고 대답해 주고 싶었다.나는 혼자서만 고통을 받는 것처럼 생각하고 아이같이 투정 부리는 사람들이 싫다. 그 누군들 아프지 않아본 사람이 있을까.가수 양희은 씨가 ‘그럴 수 있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는 기사를 봤다. 삶에서 일어난 불행에 대해 토
다큐 화면 속에서 청춘들의 아우성과 절규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고시원에서 우리에 갇힌 가축 같이 들어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컵밥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면서도 손에는 영어단어장이 들려 있다. 오천원으로 라면만 먹고 사흘을 버텨야 한다면서 돈에 목말라 있다.한 여성 수험생은 이십대가 가장 꽃같은 좋은 시절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독서실에 묻혀 있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돈이 없어 고시원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화면이 바뀌면서 데뷰한지 삼 년이 된다는 여가수가 나왔다. 돈이 없어 앨범을 내지 못하고 노래할 무대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카트에
당신이 성실한 사람이라면 그럴수록 나이 들면서 과거를 자꾸 돌아보고 더 노력하지 못했던 걸 후회하며 더 현명하지 못했던 걸 반성할 것입니다.하지만 그게 옳을지는 몰라도 당신은 지금 잘 해야 한다 혹은 잘했어야 한다는 일종의 펜듈럼(세상을 지배하는 이래야 한다는 우등생 법칙)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불행해지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기 때문입니다.왜 합리적이고 성실하며 옳은 생각을 하는데 나는 더 불행해질까요? 그 이유는 내가 아직 생각의 펜듈럼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세상엔 [이러면 안 된다]든가 [저래야 한
큰 바다의 한 방울 물만도 못한내 영혼의 지극히 작음을 깨닫고모래 언덕에서 하염없이갈매기처럼 오래오래 울어보았소.어느 날 아침이슬에 젖은푸른 밤을 거니는 내 존재가하도 귀한 것 같아 들국화 꺾어들고아름다운 아침을 종다리처럼 노래하였소.허나 쓴웃음 치는 마음삶과 죽음 이 세상 모든 것이길이 못 풀 수수께끼이니내 인생의 비밀인들 어이 아오.바닷가에서 눈물짓고이슬언덕에서 노래불렀소.그러나 뜻 모를 인생구름같이 왔다 가나보오노천명(1912~1957), 시인, 강사, 기자우리의 인생은 구름과 같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른채 그저 한가로이 흐를
돌이켜 보면 아버지에게 나는 나쁜 아들이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무조건 반항했다. 그리고 무시했다. 아버지의 사는 모습이 싫었다.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가 번쩍거리는 자가용을 탈 때 아버지는 양철 도시락이 든 서류봉투를 들고 초조하게 만원버스를 기다렸다.친구의 아버지가 임원인 회사에서 아버지는 주눅이 든 말단사원이었다. 아버지는 저녁이면 퇴근길에 소주에 순대국 한 그릇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나는 그런 무능한 아버지가 싫었다.그런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고 절대고독 속에 있는 걸 보고는 가슴이 아렸다. 중풍에 걸려 몸까
나를 포함에서 황혼을 맞은 인생들이 시간을 보낼 취미거리를 찾고 있다. 톨스토이는 노년에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희랍어를 배우려고 한다지만 그런 건 모두 천재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나 같은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이름도 하나하나 잊어간다. 나이 육십이 넘어 바둑을 배워보려고 시도하다 그만두었다. 정년퇴직을 한 친구들이 구청 문화센터에 가서 기타를 배우고 섹스폰을 시작했다가 도중에 슬며시 물러나는 모습이었다.취미도 평생 할 수 있는 걸 미리미리 어려서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 같았다. 그게 뭘까. 하나님은 뭘 재미있어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는 공원에 깨끗하게 생긴 청년 한 명이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옷도 깨끗했다.앞에 놓인 구걸하는 박스가 아니면 보통사람들과 구별하기 힘들 것 같았다. 혹시 인생체험을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시간이 흐른 어느 날 밤 우연히 그 청년이 가는 모습을 봤다. 초점이 없는 눈이었다. 떴어도 아무것도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영혼이 사라진 투명인간의 흐느적거림 같았다. 싱싱하게 피어날 청년이 왜 그럴까 의문이었다. 청년세대의 정신이 벌레 먹어 가는 느
거울은 스스로의 색깔이나 모양이 없다. 그래서 모든 색깔과 모양들을 다 담을 수 있다. 작은 거울로 온 세상을 다 담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거울의 성질은 ‘다만 담을 뿐’이기 때문이다. 거울엔 본래 정해진 크기나 형상이 없다. 그것은 단지 비추고 담는 성질만 있을 뿐이다. 마음이 마치 이와 같다. 마음은 스스로 색깔이나 모양이 없다. 그래서 모든 색깔과 모양을 다 담을 수 있다. 사람들은 모양, 형상만 따를 뿐 마음의 존재를 모른다. 뇌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다. 뇌조차 살리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 따로 있다. 마음이 물질과 결합해 나타난 것이 생명이다. 우주에 생명이 넘쳐나는 것은 다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눈앞의 소식이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마음이다. 거울이 만물을 비추고 담듯이 마음 또한 그러하다. 조그만 아침이슬에 온 세상이 다 비춰져 담겨 있듯이 하나의 마음조각에 우주 전체마음이 다 비춰져 담겨 있다. 거울은 2차원 평면이지만 마음은 3차원 입체 거울이다. 그래서 실재감이 훨씬 더 높고 커서 미혹을 불러일으킨다. 간혹 사람들이 마음이 비춘 영상에 속아서 빠져드는 이유다. 하지만 끝까지 이 모든 것이 마음임을 본다면 마침내 환상에서 벗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