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2010년 8월 초, 이 시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내용을 가장 잘 알고계신 분 중 한 분과 연락이 닿았다. 2002년 양중해 시인이 생존해 계실 때『삶과문화』라는잡지에「시인 양중해의 삶과 예술」이란 글을 쓴 제주의 저명한 수필가 조명철 씨다. 당시 제주문화원장이셨다.조 원장께 전화로 필자에 대한 소개를 하고 궁금한 내용들을 물어보았다.필자 : 왜 세 권의 양중해 시집에 그의 가장 유명한 시(詩)인「떠나가는배」가 실려있지 않은지요조 원장 : 저도 양 선생께 그에 대해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제 질문에 대해“시인으로
화면 속에서 대담을 하던 구십세 노인 이근후 박사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법정스님은 왜 ‘무소유’를 소유했을까요? 죽은 후에 자기책을 더 이상 내지 말라는 게 그거잖아요?”법정스님이 쓴 여러책들에 대한 저작권을 행사한 걸 의미했다. 더 이상 그 스님이 쓴 책들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삼십대 중반무렵 우연히 작은 문고본 수필집을 읽게 됐다. 세로글씨로 된 얇은 책이었다. 글 속의 여러 장면이 지금도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서리가 내리는 늦가을 김이 피어오르는 우물 옆에서 한 승려가 찬물에 빨래를 하고 있었다. 소박하게 사는 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이형기(1933~2005), 시인꽃이 지는 것을 통해 이별과 죽음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시 낙화. 시를 읽으며 찬란했던 지난 봄과 여름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성숙한 열매
명상할 때 상상의 신비한, 혹은 신성한 장소(sacred place)는 실제가 아닌 상상 속에서 가서 앉아 명상하는 곳을 말한다. 내가 명상할 때 상상 속에서 찾아가 명상하는 몇몇 장소를 소개해 보겠다.첫 번째 장소는 높은 나무들이 하늘높이 쭉쭉 솟아 있고, 나무 사이사이로 아름다운 이름 모를 꽃들이 가득 피어 있는 깊은 숲속이다.나뭇가지 위에서 온갖 새들이 노래하고 있고, 벌과 나비들이 윙윙거리며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 다니고 있다.숲속 한 가운데에 조그만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나는 시냇가 옆 바위 위에 앉아서 새소리와 벌
삼십여년 전 한 작은 잡지에 고정칼럼을 썼던 적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 퇴직을 하고 그의 일생을 걸고 만들기 시작한 잡지였다. 그는 어느 날 나의 사무실로 찾아와 이런 말을 했었다.“퇴직금과 물려받은 작은 땅을 밑천으로 혼자 잡지를 만들기로 했어요. 어디를 가나 연예인의 스캔들이나 피 냄새가 나는 사건기사들이 가득한 잡지투성이예요. 아니면 최상류층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사치품을 선전하는 잡지든가요.이런 잡지들 속에서 한번 완전히 거꾸로 가 볼 예정입니다. 촌스러운 디자인에 풀꽃 같은 보통사람들의 삶이 담긴 잡지를 만들어보는
건강 강의와 라이프 코칭, 심리상담 프로그램 기획 운영이 제 회사 업무의 핵심이다 보니 홍보 마케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같은 SNS를 하게 됩니다.SNS에 글을 쓰는 나름의 원칙을 정했는데, 정치사회적으로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사안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비판을 넘어 비난을 하게 되고,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감정이 표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요. 그런데 미세먼지 탓에 정상적인 삶이 완전히 망가진 지난 주엔 참기가 너무 힘들더군요. 국민들은 거의 패닉 상태, 집단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졌는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리더십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요. 그리 심하지는 않았지만 페이스북에 제 감정을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을까요? 열 받은 제 감정이 좀 가라앉았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더 화를 내고, 더 거칠고 심한 표현을 쓰게 되더군요. 마음을 다 잡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이해인 수녀님이 쓰신 신문 칼럼이 떠오릅니다. 10여년 전 제가 기쁨과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읽었던 칼럼입니다. 조선일보 2009년 12월9일자에 실린 ‘12월의 편지’입니다. 저와 같은 해에 대장암 수술을 받은 수녀님은 2012년 제가 ‘나는 암이 고맙다’라는 제목의 에세이 책을 썼을 때 저를 ‘대장암 동지’로 부르며 애정이 듬뿍 담긴 추천사를 써주셨습니다. 1년에 한 번 꼴로 뵙고 있는데, 건강 상태가 썩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인자한 미소와 소녀 같은 감성을 잃지 않으시고 마음 아픈 이들을 위로해주고 계시죠.지금도 이해인 수녀님을 닮고 싶은 이유는 ‘무한 긍정’ 때문입니다. 수녀님은 칼럼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병이 주는 쓸쓸함에 맛 들이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지요.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임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상의 여정을 다 마치는 그날까지 이왕이면 행복한 순례자가 되고 싶다고 작정하고 나니 아픈 중에도 금방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수녀님께서는 행복의 비결 4가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감정이 점점 메말라 가고, 세상을 이전보다 더 삐딱하게 보고 있는 제가 꼭 실천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들입니다.첫째, 무엇을 달라는 청원기도보다는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기도를 더 많이 드려라. 제가 아는 한 분은 매일 감사 노트를 적는다고 하더군요. 자꾸 적다 보니 계속 감사할 일이 생기고, 덕분에 일상 중에 느끼는 행복감이 커진답니다. 깨닫지는 못하지만 제게도 감사할 일이 많이 있겠지요?둘째, 늘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일들을 기적처럼 놀라워하며 감탄하는 연습을 자주 하라. 지나치게 이성적인데다, 사실 관계를 따지기 좋아하는 좌뇌형 인간인 제가 가장 못하는 일이 감탄이고 칭찬입니다.셋째, 자신의 실수나 약점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여유를 지니도록 애써라. 누구에게 지적을 받거나, 일이 제 뜻대로 안됐을 때 불쾌한 감정이 불쑥 튀어 오르는 걸 종종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제 행복 수명은 줄어드는 게 틀림없습니다.넷째,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는 흥분하기보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어질고 순한 마음을 지니려 애써라. 10년 전 암 수술을 받고 몸맘건강 회복에 힘을 쏟을 때만 해도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문구가 바로 ‘다 지나간다’였습니다.혹시 내가 지금 뭔가 간절히 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 때문에 행복감을 덜 느끼고, 더 속상해 하고, 흥분하지는 않는지~. 잠시 내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