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해항의 빨간 등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아내와 함께 작은 이층집을 만들고 있다. 이십년 정도 된 낡은 집을 사서 속을 털어내고 다시 방을 만들고 있다. 철물점에 가서 단열재를 비롯해서 시멘트, 모래를 직접 샀다.창호 가게에 가서 유리와 창틀들을 직접 골랐다. 타일과 변기도 사고 페인트등 모든 재료들을 직접 고르고 있다. 기술도 노동할 힘도 없는 나는 그때그때 인력소개소에서 한두명씩 사람을 구해 쓴다.지방이라 그런지 조적공이나 미장공 칠쟁이등이 모두 내 또래의 영감들이다. 힘쓰는 젊은이는 러시아인들뿐이다.일꾼이 천정에 박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던 이천육년 십이월 삼일 아침이었다. 수은주가 영하 십도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나는 어둠침침한 지하실에서 시대의 현자를 직접 보았다. 얼굴이 하얗고 몸집이 자그마한 그는 여든일곱살의 노인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서른다섯살에 시간이 끊어지는 신비체험을 했다고 했다.그는 불교를 포함해서 동양사상을 모두 품에 안은 ‘기독교 도인’이라고도 했다. 나와 친한 판사가 그가 살아있을 때 직접 그를 보면 귀한 체험으로 남을 것이라고 소개해서 갔었다.도인은 느린 어조로 띄엄띄엄 여러가지 말을 했다. 식견이 좁은 나는
지하철이 사람들을 토해놓고 떠났다. 사람들의 물결이 쓸려가 버린 후의 텅 빈 플랫폼에 육십대 중반쯤의 시각장애 여성이 서 있었다. 백팩을 한 말끔한 복장에 손에는 가느다란 시각장애인용 흰 지팡이를 들었다.그녀는 가느다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발을 떼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아주 어설펐다. 그녀는 어둠의 세상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평생을 암흑에 익숙한 사람들은 걷는데도 다른 촉이 생겼는지 숙련성을 가지고 있었다.태어날 때 부터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암흑이란 존재를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보여져야 하는 체험
‘세상에나.... 사는 게 뭔지, 무섭다. 함 읽어보세요. 현실입니다.’병으로 투석을 하며 지내는 팔십대 중반의 고교선배가 보낸 카톡 메시지다. 노인살해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는 일본에서 노인 살해범의 주장은 이렇다는 것이다.‘일본의 미래를 위해 노인들은 사라져야 한다. 일본은 원래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가’이어서 카톡에는 ‘플랜 75’라는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내용이 소개되고 있었다. 칠십오세 이상의 노인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죽음을 국가에 신청하면 국가가 이를 시행해 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실버타운의 뒷산 꼭대기에서 외로운 노인 세 명이 술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다. 굳이 ‘장자의 나비’를 꺼내지 않아도 인생의 허무를 얘기 할 게 틀림없어 보였다. 교장 선생님 출신의 또 다른 한 할머니는 실버타운에 오게 된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정년퇴직을 하고 혼자가 됐는데 그래도 번거로운 일이 많더라구요. 혼자 먹어도 장을 봐 와야지 아침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면 금세 또 점심을 먹어야지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실버타운에 들어왔어요. 밥이 해결되니까 자유를 얻은 거죠.”내가 묵는
삼십여년 전 한 작은 잡지에 고정칼럼을 썼던 적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 퇴직을 하고 그의 일생을 걸고 만들기 시작한 잡지였다. 그는 어느 날 나의 사무실로 찾아와 이런 말을 했었다.“퇴직금과 물려받은 작은 땅을 밑천으로 혼자 잡지를 만들기로 했어요. 어디를 가나 연예인의 스캔들이나 피 냄새가 나는 사건기사들이 가득한 잡지투성이예요. 아니면 최상류층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사치품을 선전하는 잡지든가요.이런 잡지들 속에서 한번 완전히 거꾸로 가 볼 예정입니다. 촌스러운 디자인에 풀꽃 같은 보통사람들의 삶이 담긴 잡지를 만들어보는
말년의 어머니는 하루 종일 아파트의 창가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정물같이 있었다. 저녁 어둠이 밀려 들어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 질때 어머니의 실루엣 같은 모습은 환시 같기도 했다.어느 날부터 어머니는 입을 닫았다. 귀가 어두워진 어머니는 스스로 듣지 않았다. 그리고 깊은 침묵 속에 들어갔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이었다. 죽음을 직감한 어머니는 죽음 이후 아들인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같이 또박또박 공책에 적게 했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내가 일생을 살아 보니까 제일 견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