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엘리엇(T. S. Eliot)은 장시(長詩) 의 첫 구절을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다."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풀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다.“·죽은 땅에서 고통스럽게 꽃나무를 키워내야 하는 4월은 잔인한 계절이다. 차라리 마른 풀뿌리를 눈으로 덮었던 겨울철이 오히려 따뜻한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그 잔인한 4월이 새 생명을 움트게 한다. 생명은 산고(産苦
오래전 오류동 도로변에 있는 영등포교도소에서였다. 메마른 금속음이 들리는 녹슨 철문을 통과 해서 들어가면 우중충한 장방형의 낡은 건물들이 들어차 있었다.입구 광장의 왼쪽 끝에 축사 같은 길다란 건물이 스산한 느낌을 풍기면서 웅크리고 있었다. 늙은 교도관 한명이 담당하는 변호인 접견실이었다. 나는 흉악범인 강도와 마주 앉아 있었다.당시는 CCTV도 없었고 갑작스런 흉악범의 공격에서 나를 지켜줄 철창이나 칸막이도 없었다. 교도관도 둘을 놔두고 어딘가 가버렸다. 흉악범인 그가 나를 보자마자 당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공소사실중 강도죄
털털거리는 낡은 버스는 스산한 겨울 풍경을 담고 굽이굽이 휘어지는 산길을 달렸다. 차창으로 햇빛에 반사되는 얼어붙은 강이 보였고 서걱대는 마른 갈대가 지나가기도 했다.장과 내가 버스에서 내렸을 때 주변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다. 마을 입구의 작은 가게의 알전구만이 주변의 어둠을 조금씩 녹이고 있었다.장과 나는 가게에 들어가 양초를 사서 헌 신문지로 똘똘 말았다. 거기에 불을 붙이면 산길을 밝힐 간이횃불이 됐다. 우리는 산 짐승 소리가 멀리 들리는 눈 덮인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장과 나는 장학재단에서 일 년간 고시공부를
안락사·조력자살이 불법인 페루에서 희귀 퇴행성 질환으로 온몸이 마비된 40대 여성이 예외를 인정받아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페루에서 시행된 첫 번째 안락사 사례다.22일(현지시간) AP·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심리학자이자 다발성근염 환자인 아나 에스트라다가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에스트라다의 변호사인 호세피나 미로 퀘사다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에스트라다가 지난 21일 사망했다면서 "아나는 자신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존엄한 죽음을 위한) 싸움에 함께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정을 지지해준 모든 이들
식물인간이 된 노인의 병실로 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노인은 의사고 믿음이 깊은 분이었다. 진료하고 기도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게 생활의 전부였다. 침대 옆에 있던 그 노인의 늙은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이 양반이 진료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어요. 응급실로 갔는데 뇌 촬영을 한 의사들이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어요. 원인 모르게 소뇌에서 갑자기 피가 박카스병 하나 정도 나왔대요. 특히 소뇌 쪽은 수술이 어렵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바로 수술을 해서 생명은 건졌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13년간 식물인간으로 있으면서 나이 팔십을 맞이했네
철저한 무신론자였다가 서른한 살 때 회심하고 크리스천이 된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수로,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연구한 학자이자 등 뛰어난 책을 쓴 저술가이기도 합니다.C.S. 루이스는 (The Screwtape letters)라는 글도 썼는데, 대악마 스쿠르테이프가 후배 악마에게 '인간을 미혹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서른한 개의 편지입니다. 스크루테이프라는 이름은 배배 꼬인 나사를 뜻하는 스크루, 손가락을 비트
탤런트 송승환 씨가 눈이 안 좋다는 기사를 봤다. 시력을 많이 잃었는데도 여전히 무대에 서고 방송일을 계속하고 있다. 주변의 우려에 대해 그는 “안 보여도 형체는 알아볼 수 있다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한다. 안 보이면 열심히 들으면서 하면 된다”고 했다. 대단한 집념이 엿보인다. 성실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게 그에 대한 평가였다.나도 눈이 상해 보니까 그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나도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녹내장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시야가 극도로 좁아져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다른 쪽 눈이 남아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언제 봐도 독특한 느낌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웃기고 재밌다. 영화 속 대사나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기도 한다.홍 감독의 신작 '여행자의 필요'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프랑스어 개인 교습으로 돈을 벌고,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프랑스 여성 이리스(이자벨 위페르 분)의 이야기다.이리스가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방식은 특이하다. 영어로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가 학생이 무슨 말을 하면 "그때 느낌이 어땠어"라고 묻는다. 학생이 답하면 "그러니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땠냐"고 파고든다.학생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에게로 나올 것이라."(미가 5:2)예수님 탄생보다 약 700년 전에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예고한 선지자 미가의 예언입니다.다윗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은 에브라다라고도 불리는데, 유대 열두 지파 중 인구도 적고 세력도 약한 에브라임 지파가 살던 변변찮은 촌 동네입니다.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유대 나라 수도 예루살렘의 왕궁에서 태어나시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작은 마을 베들레헴의 여관, 마구간의 말
지난달 11일, AP 통신 등 다수의 외신 매체에는 한 미국인 변호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그의 이름은 폴 알렉산더. 유명 정치인이나 학자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인생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특별한 사연을 함께 알아보자. ◇ 아이언 맨보다 강했던 ‘아이언 렁 맨’팔로워 33만 명을 보유한 틱톡커였던 그의 활동명은 ‘아이언 렁 맨(Iron Lung Man)’이었다. 6살 이후,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철제 통 안에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폴은 그의 나이 6살이
오래전 드라마에서 주인공이었던 여성 탤런트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우수가 낀 듯 잘생긴 얼굴이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간간이 단역으로 나오는 것 같다. 그녀의 얼굴에서 기억의 아스라한 저편에 있던 한 남자의 희미한 형체가 떠올라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다.그러니까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던 가을 어느 날이었다. 나는 구치소에서 그를 만났다. 휠체어를 타고 접견실로 나온 그는 어깨 위로 온통 인공혈관을 걸치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피를 걸러줘야 한다고 했다.“예리한 면도날로 온몸을 얇게 써는 것 같이 아파요”그는 내게 고통을 호소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이름이 알려진 내 나이 또래의 조직폭력의 두목급들을 여러 명 만났다. 그들의 과거 얘기를 들어보면 요즈음 중고등학교 일진 아이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 어려서부터 싸움 선수들인 것 같았다.서방파 두목으로 전설적인 이름을 날리던 김태촌씨는 어린 소년 시절부터 싸움을 잘하기 위해 열심히 샌드백을 두드리고 깡을 키우기 위해 스스로 극기 훈련을 했다고 했다. 우리 세대도 어려서부터 주먹을 쓰는 친구도 있었고 공부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인생의 방향이라고 할까.드라마 모래시계에 나오는 조폭 두목의 모델로 알려진 사람도 서방파의
중학교 입시를 치르고 났을 때였다. 초등학교 육학년 일 년 동안 옆에서 지켜보던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이런 말을 해 주었다.“너는 앞으로 무엇을 하든 될 거다”가볍게 칭찬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 말을 하는 선생님의 얼굴 표정은 판결을 선고하는 법관같이 진지해 보였다. 그 말씀이 나의 영혼에 씨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그 씨가 내 마음 밭에서 싹이 되어 나오면서 나의 용기와 믿음이 되었다.고등학교 시절 사법고시제도가 있다는 걸 알았다. 한 해에 다섯 명을 뽑은 적도 있고 보통은 삼십 명 정도가 합격하는 대한민국에서 가
박태환, 소녀시대 권유리, 카라 한승연, 김태희, 송중기까지.인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잇달아 드라마에 본인 또는 과거 연기했던 유명 캐릭터로 특별출연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시청자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자칫 작품에 대한 몰입감을 떨어트리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14일 방송가에 따르면 tvN 월화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는 지난 8일 첫 방송에 박태환과 소녀시대 권유리가 각자 본인 역할로 특별출연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권유리는 흰 제복 차림으로 방송국에서 매니저와 대화하다가 신인 밴드 멤버의 부탁을 받고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을 굶주리며 사탄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떡으로 표상(表象)된 현실의 축복,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상함이 없을 것이라는 기적의 축복, 사탄에게 영혼을 팔아넘겨서 얻게 될 화려한 세속의 영화… 이러한 사탄의 유혹들을 예수님은 모두 물리치셨습니다.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오늘의 신자들은 예수님이 물리친 사탄의 유혹을 자신들의 삶 속에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배부르고 기름진 경제의 풍요를 하나님의 현실적인 복으로, 어떤 어려움도 거뜬히 물리치는 신비한 기적을 하늘의 축
천구백 칠십칠년 일월의 어느 날이었다. 하얗게 눈이 덮인 가야산 원당암의 새벽하늘은 아직 어두웠다. 둔탁하고 묵직한 목탁 소리가 몇 번을 울렸다. 아침 공양을 하라는 소리였다.나는 청계천시장에서 산 얇은 싸구려 이불을 덮고 방 안에 가득 찬 냉기를 견디고 있었다. 방안이나 밖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지난 저녁 장작 세 가치를 땐 온돌방은 식어 있었다. 간신히 일어나 암자 뒤쪽에 달아맨 창고 같은 어둠침침한 방으로 갔다.베니어를 잘라 만든 길다란 사각의 상 위에 음식이 담긴 몇 개의 양재기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밀쌀을
세계적인 암전문의 김의신 박사가 볼 때 잘 낫는 환자는 어떤 사람들인가?그는 세계 최고 암치료기관인 미 MD앤더슨 암센터에서 30년 넘게 일하며 ‘미국 최고의 의사’로 11차례나 선정된 명의다.김박사에 따르면 서울보다 지방, 도시보다 시골, 많이 배운 사람보다 좀 덜 배운 선량한 사람들이 치료성과가 좋았다. 생각이 너무 많고 계산적인 사람보다, 순박하고 남을 잘 믿는 사람들이 의사 말을 잘 따르고 성실하게 치료에 임한다고 했다.또 성격적으로 명랑한 기질, 그중에서도 소위 ‘주먹’, ‘깍뚜기(조폭)’로 통하는 사람들의 치료성과도 좋았
수도원에서 엄격한 금욕생활에 몰두했지만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없었던 가톨릭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로마를 순례하던 중에 빌라도의 스물여덟 계단을 주기도문을 외우며 무릎으로 기어올랐다고 합니다.어떤 전승에 의하면, 루터가 계단을 오르던 도중 로마서의 말씀이 그의 마음에 천둥처럼 울렸다고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17)여기의 기록은 구약 하박국서를 가리킵니다(하박국 2:4).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
어려서 부터 알던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나 간암이래. 의사 말이 간 이식수술을 해야 할 것 같대. 기도해줘”그의 어조에서 죽음 앞의 간절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간을 제공할 사람이 있는 거야?”“딸이 간을 내놓겠다고 하는데 애비로서 할 짓인가 싶어”그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애잔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네 친구였다. 일 년에 몇 번씩 만나 밥을 먹었는데 우정이 이어져 오는 셈이었다.그는 열심히 돈을 벌고 절약하면서 부자가 됐다. 그러나 생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속의 장기가 탈이 나면 죽는 것 같다. 얼마 전에도 내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봤다. 전두환이라는 인물이 야심에 불타 몇몇 인물들과 함께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는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단지 야심만으로 쿠데타가 가능할까. 당시 그들은 정의와 국가의 안전을 내세웠다. 그것도 다 믿지 않는다. 명분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된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군사 쿠데타를 주도한 이학봉씨가 살아있을 때 그가 털어놓는 속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박정희 대통령이 총애하면서 키운 심복의 장교그룹이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보스가 아니라 거의 아버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