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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삼십대 남성이 글을 보내왔다. 누구와 결혼해서 어떻게 살지 고민이라고 했다. 예뻤으면 좋겠고 집안도 학벌도 직업도 좋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의 결혼관이 궁금하다고 했다.

정말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관념이나 추상이 아닌 내 경험을 조심해서 말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십년이 넘는 기간 결혼생활을 하고 또 변호사로 수많은 이혼소송을 하면서 그들이 금이 가고 깨지는 모습을 보았다.

드라마나 소설을 보면 재벌집 사위로 들어가 후계자가 되는 설정이 더러 나온다. 우리 사회에서 신데렐라 같은 신분상승이다. 재벌의 딸은 미모나 학벌 직업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결혼은 어떨까?

예쁜 재벌집 딸과 결혼한 교수가 있었다. 미국의 명문대에 유학생활을 하다가 만났다. 남편인 교수가 내게 했던 이런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어느 날 그룹의 전무인 아내의 사무실로 찾아갔어요. 아내가 구석의 밀실에서 남자비서와 섹스를 하고 있더라구요. 그걸 내가 아는 체 하면 이혼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셈이고 모른 체 해야 살 수 있는 거겠죠?”

나는 그의 결혼생활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문이었다.

재벌집 사위가 된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를 해도 될 빼어난 미남이었다. 스펙도 뛰어났다. 그는 장인의 회사에서 후계자수업을 한다고 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회사에서는 하루 종일 바늘방석이야. 장인은 나를 후계자로 단련시킨다고 하면서 모질게 대하고 임원들은 모두 속에서 나에 대한 시기심과 증오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아. 제일 힘든 게 나를 힘들게 하는 회사안의 동창들이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뒷 담화를 하고 모략까지 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더 힘들어. 내 사정을 알리가 없는 아내는 자기와 놀아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는 거야. 나는 지금 인내의 한계에 와 있어. 참고 참다가 내 세상이 오면 나를 괴롭힌 놈들의 목을 다 잘라버릴거야.”

그는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내면은 지옥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과연 그런 결혼이 젊은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남자라면 누구나 여성의 예쁜 얼굴에 반한다. 미녀와 결혼한 아는 사람이 있었다. 부인은 참 아름다운 여자였다. 성격도 좋았다. 그러나 결혼을 했는데도 그녀의 주변에는 유혹이 끊이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 부인은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이 아무리 붙잡아도 그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유혹은 마귀의 술수인 것 같았다. 그게 미녀들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한 미녀 탤런트의 남편은 자기가 옆에 있는데도 다른 놈들이 들이댄다고 내게 하소연을 했었다. 그걸 보면서 예쁜 아내와 함께 사는 남성들은 참 힘이 들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요즈음 젊은 남성들은 결혼할 여성이 좋은 직업이 있기를 희망하는 것 같다. 그게 과연 좋을까? 직업여성들의 남편에 대한 불만의 자잘한 기억들이 뇌리에 남아있다. 한 여의사의 이혼 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하루 종일 근무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궁상스런 남편의 모습이 정말 싫어요. 밖에서 좋았던 기분이 잡치는 것 같아요. 그런 진상하고 언제까지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커리어 우먼들은 밖에서 능력있는 남자들을 만난다. 상대적으로 남편이 왜소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들을 보면 덩치가 작은 수컷과 교미를 하고 나서 잡아먹어 버리는 사마귀가 떠오르기도 했다. 젊은 남자들은 예쁘고 집안 좋고 직업 있는 여성을 희망하지만 내가 경험한 반대 측면을 떠올려 봤다.

이번에는 젊은 날 나의 결혼관은 어떤 것이었나를 간단히 고백해야 하겠다. 나는 먼저 내 주제가 보였다.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고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가난한 집 아들이었다. 일자리도 없었다. 눈 덮인 겨울 벌판의 암자 뒷방에 버려진 고시 낭인이었다. 몸살이 심했던 적이 있었다.

이따금씩 보던 지금의 아내에게 약을 지어다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속으로 아내가 와주면 결혼하겠다고 결심했다. 아내는 길거리 고양이에게 애잔한 마음을 품고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얼굴보다 마음이 더 예쁜 여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난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 아내를 데리고 철거민촌의 숙부 숙모에게 인사를 갔었다. 군대 막사 같은 바라크 건물이 겹겹이 들어차 있고 공동변소의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일생을 동행할 수 있느냐는 말 없는 물음이었다. 아내는 손잡고 험한 인생길을 함께 가겠다고 했다.

그 정도의 각오면 나도 상응하는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고시 공부를 중단하고 쪽방을 얻어 결혼했다. 비유하자면 친구들과 함께 타고 가던 성공을 향한 배에서 스스로 바다로 몸을 던져버린 셈이다. 친구들이 모두 성공의 항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바다 한 가운데 외롭게 떠 있었다. 아내 쪽을 선택한 것이다. 사랑은 저울대 위에 놓고 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부부가 쪽배를 타고 뒤늦게 가도 우리들은 항구에 도착했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 부부는 인생의 짙은 황혼 앞에 서 있다. 젊은 시절 아내는 편안한 연인이었다. 중년의 고생은 우리를 굳은 동지로 만들어 주었다. 늙은 지금은 좋은 친구다. 그게 인연이 아닐까. 

글 | 엄상익 변호사

경기중-고, 고려대 법대를 나오고 제24회 사법시험(1982)에 합격했다. 6공 때,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특별보좌관실에 근무하며 권부의 이면을 보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대도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등 사회 이목을 끌은 대형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월간조선을 비롯,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했고 수필집, 장편 소설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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