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노 겐조는 비록 몸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 픽사베이 

"만일 내가 외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을/ 만일 모든 형제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눈 깜박이 시인'으로 알려진 일본인 미즈노 겐조(水野源三)의 '괴롭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시입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질을 앓고 뇌성마비에 걸려 보는 것, 듣는 것, 눈꺼풀 움직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장애우였습니다.

겐조의 어머니는 그의 머리맡에 늘 성경을 펴놓아 두었는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그는 그 성경을 읽으면서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겐조는 고린도후서 12장을 읽다가 육체의 가시로 괴로워하던 사도바울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는 가르침을 만나 새로운 영혼의 신앙인격으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그는 눈꺼풀을 이용해서 윙크하는 방식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많은 시를 지었습니다.

"뇌성마비로/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하나님이 눈과 귀만은/ 지켜주셨다/ 말씀을 읽도록/ 말씀을 듣도록/ 말씀으로/ 구원하시기 위해." 겐조가 쓴 '눈과 귀'라는 시입니다.

​겐조는 불행한 자신의 글을 통해 잡다한 미신을 섬기는 일본사람들을 회개로 이끌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겐조의 어머니는 그의 힘겨운 글쓰기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내 둘째 아들은 20년 전에 쓰러졌지만 5년쯤 전부터 단카(短歌)나 시를 쓰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계속 노래했다. 아이우에오(あいうえお) 표를 사용해 내가 한 글자씩 가리키면, 겐조가 눈으로 신호를 보내 한 자 한 자 쓰고 있다."

​ 소설 <빙점(氷点)>의 작가이자 성실한 크리스천이었던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는 겐조의 시집에 감동적인 서문을 쓰면서 그의 시 '잊기 전에'를 인용했습니다.

"지금 들은 것/ 보인 것/ 마음에 느낀 것/ 잊기 전에/ 사라지기 전에/ 주의 아름다운 은혜를/ 찬양하는 시를 만들자."

겐조의 신앙시는 한국에서 <감사는 밥이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 시집에 '오늘 하루도'라는 시가 실려 있습니다.

"신문 냄새에 아침을 느껴/ 차가운 물맛에 여름을 느껴/ 풍경 소리에 신선한 해 질 녂을 느껴/ 개구리 소리에 졸음을 느껴/ 오늘 하루도 끝나지 않았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껴."

​시각장애인으로 <실낙원>이라는 불후의 명저를 남긴 존 밀턴은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육신의 눈은 어두워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불행했던 미즈노 겐조와 존 밀턴에게 감사는 곧 밥이었습니다. 나날의 밥, 그 일용할 양식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글 | 이우근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법원장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제14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법원장을 하다가 2006년 8월에 사직하여 법무법인 한승 대표변호사가 되었다.

2007년 6월에는 예술의 전당 이사에 선임되었다. 2011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대 석좌교수이며 법무법인 클라스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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