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무속인과 대학생이라는 상반된 환경 속에서 갈등하는 한 소녀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출처=영화사 진진
◇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무속인과 대학생이라는 상반된 환경 속에서 갈등하는 한 소녀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출처=영화사 진진

새해가 되면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가 바로 무속 신앙을 다루는 ‘점집’이다. 신년 운세가 어떠한지 알아보고 앞으로의 1년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속 신앙은 비과학적이라는 의견과 함께 효용성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이는 무속 신앙을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부터 꾸준히 이를 계승해온 무속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 무속인을 다룬 독립영화가 누적 관객수 1만 명을 돌파해 주목을 받고 있다(독립영화는 장르 특성 상 관객 1만 명 돌파를 흥행 기준으로 삼는다). 바로 소녀 무속인의 삶을 다룬 ‘시간을 꿈꾸는 소녀’다.

◇ 4살 때부터 정해진 ‘무녀의 운명’

영화는 주인공 수진을 둘러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흘러간다. 수진은 평소 자신의 모습 그대로 영화에 등장하며 감독 역시 무속인과 대학생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녀의 삶 자체를 조명하고 있다.

수진은 ‘소녀 보살’이라는 별칭으로 과거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적이 있다. TV에서 우연히 이를 본 감독은 수진을 찾아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한다. 

수진은 4살 때부터 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알아맞추는 ‘신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수진의 할머니 역시 무당이었지만, 할머니는 수진이 자신과 같은 무당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치 않았다.

하지만 수진의 몸에는 이미 신기가 들어 있었고, 운명을 거부하지 못한 채 수진과 할머니는 무속인이라는 가업을 함께 이어가게 되었다.

스무 살 문턱에 서자 수진은 대학 진학이라는, 무속인의 삶과는 관련 없는 목표가 생기게 된다. 수능 시험을 준비하는 수진의 모습은 여느 평범한 수험생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수진은 인서울 대학에 합격하고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첩첩산중 속 신당을 떠나게 된다.

                    ◇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포스터    *출처=영화사 진진                       
                    ◇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포스터    *출처=영화사 진진                       

원해서 간 대학이었지만 수진은 온전히 무속인의 삶을 벗어던질 수 없었다. 주중에는 대학생의 삶을, 주말에는 자신의 몸 안에 깃들어버린 신들을 섬겨야 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던 수진은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

할머니는 손녀가 무속인이 아닌 다른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막상 다른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손녀를 보며 둘 중 한 가지의 삶만 택하라고 말한다. 

수진과 할머니는 갈등하게 되고 결국 촬영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그대로 무산될 것 같았던 영화 촬영은 3년 후 수진이 감독에게 다시 연락을 하며 재개된다. 

수진은 삶의 갈림길 끝에 결국 무속인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무속인의 삶에 대한)편견을 바꾸고 싶다"며 촬영을 재개한 이유를 밝혔다. 현재 수진은 자신의 신당을 가진 어엿한 무당으로 활동 중이다.

◇ 영화에 출연한 권수진씨(왼쪽)와 영화를 연출한 박혁지 감독(오른쪽).   *출처=영화사 진진
◇ 영화에 출연한 권수진씨(왼쪽)와 영화를 연출한 박혁지 감독(오른쪽).   *출처=영화사 진진

◇ 자극적 소재를 담담한 연출로 풀어내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상업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용된 흔한 무속인의 이미지를 차용하지 않는다. 소녀 수진이 자신의 꿈과 현실 속에서 방황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은 많은 청춘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속인의 이미지는 그동안 상업적으로 활용된 사례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으로 자리잡히는 경우가 많다. 감독은 이러한 편견을 뛰어넘으려는 듯 수진의 삶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으며 고뇌를 거쳐 성장하는 개인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를 촬영하는 기간은 공백기를 포함해 무려 7년이었다. 어떠한 인터뷰도 없이 무속인의 삶 자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관객은 자신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속인의 일상적인 모습들도 마주할 수 있다.

‘무속인’이라는 독특한 키워드로 영화를 접근했더라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초점을 맞춰서 영화를 본다면, 주인공 수진의 삶에 공감하며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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