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누구인지 묵상해 보는 것은 영성을 고양시키는 일에 있어서 필수적인 시작이다. *출처=셔터스톡
◇ 내가 누구인지 묵상해 보는 것은 영성을 고양시키는 일에 있어서 필수적인 시작이다. *출처=셔터스톡

여기에 제시하는 이그나티우스의 영성수련은 이그나티우스가 제시한 영성수련 방법에 기초를 두었으나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영성을 수련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자 한다.

이 방법은 내가 영성수련을 할 때 사용했던 방법이며, 내가 다른 사람의 영성수련을 인도할 때도 사용하는 방법이다. 영성수련을 잘못하면, 좀 더 넓고 깊은 영성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영성으로 퇴보할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처음에는 혼자 영성수련을 하기보다는 영성 지도자의 지도 아래 영성을 수련하는 것이 필요한데, 문제는 어떤 영성 지도자의 지도 아래 영성수련을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 번째 단계는 각성(awakening)과 정화(purification)의 단계이다.

나는 누구인가? 바쁜 일상생활의 번잡함에서 잠시 떠나 내가 과연 누구인가를 묵상해 보는 것은 우리의 영성을 고양시키는 일에 있어서 필수적인 시작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찾다보면, 우리는 자연히 절대자, 즉 신(神)을 찾게 되고, 우리의 삶과 죽음의 의미까지도 찾게 된다.

***사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명제는 불교명상, 실존철학, 자아초월심리학 등 거의 모든 영성 탐구 분야에서 각성의 첫 단계이다.

그러나 바쁘게 생활을 하다보면, 스스로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영성의 세계로 눈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영성수련 지도자의 지도하에 집단으로 영성수련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크리스토퍼라는 성인(聖人)이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사람들이 활활 타오르는 커다란 불덩이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불덩이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묻고는 대답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한입에 삼켜버리곤 했다.

마침내 크리스토퍼가 불덩이 앞에 섰을 때 불덩이가 묻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너는 누구냐?”

뜻하지 않은 질문에 당황하기도 하고 겁에 질리기도 한 크리스토퍼가, “나는 크리스토퍼입니다.” 하고 이름을 말하자, 그 불덩이는 “나는 지금 너의 이름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누구냐?” 하고 다시 물었다.

크리스토퍼는 엉겁결에 “나는 사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불덩이는 “나는 너의 직업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누구냐?”라고 다시 물었다.

크리스토퍼는 불덩이의 뜨거운 입김에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크리스토퍼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불덩이는 그를 집어삼키려고 확 달려들었다. 크리스토퍼는 겁에 질려서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다.

이것은 비단 크리스토퍼에게만 주어진 질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질문이다. 만일 그 불덩이가 당신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무어라고 대답하겠는가?

종교에 따라 또 개인에 따라 그 대답은 달라질 것이다. 만일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만이 그 질문에 나름대로의 해답을 발견하고 세상을 떠난다.

기독교인은 하느님과 예수에 대한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려고 하는데, 모든 기독교인들의 공통된 자신에 대한 정체성은 자신은 부족하고 죄 된 존재라는 것이다.

크리스토퍼의 이야기는 기독교 문화 속에서 나온 이야기이므로 불덩이가 크리스토퍼에게 “너는 누구냐?” 라고 물었을 때, 크리스토퍼는 “저는 부족한 죄인입니다.” 라고 대답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부족하고 죄 된 존재라는 것을 느낄 때 하느님의 크신 사랑도 동시에 느낀다. 자신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한 인물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이것은 심리적으로는 하느님의 치유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며, 이 경험은 마음의 정화(purification)를 가져오게 된다.

이 단계에 이른 사람은 자연스럽게, “나는 참으로 그리스도인인가? 혹시 껍데기만 그리스도인은 아닌가? 참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등등의 자아 성찰을 하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각성(awakening)을 하게 된다.

각성, 깨어남(awakening)은 잠자고 있는 영성의 스위치를 켜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그나티우스의 영성수련에서도 영성지도자는 첫 단계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의 자아 정체성에 대하여 각성하도록 격려하고, 자신이 부족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자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 마음의 정화를 경험하도록 돕는다.<계속>

***참고

영성(靈性, spirituality)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으나,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영성을 나는 다음의 2가지로 정의한 바 있다. 영성이란,첫째는, 인간의 내면 속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imago dei)이고, 둘째는, 하느님을 향해 있는 인간의 마음이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느님, 내 영혼은 애타게 당신을 찾습니다. 하느님, 생명을 주시는 나의 하느님, 내 영혼은 당신이 그리워 목이 탑니다.” (시편 42:1-2).

윤종모(2018). <기독상담과 영성>. 학지사. 51쪽.

글 | 윤종모 주교

대한성공회 관구장과 부산교구장을 지냈다. 신학생 때부터 명상에 관심이 많았다. 20여 년 전 캐나다의 한 성공회 수녀원에 머물며 명상의 참맛을 느끼고 지금까지 치유 명상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명상 초심자와 수련자를 위한 책 '치유명상 5단계(동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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