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보시비르스크의 도스토옙스키 도로. 오른쪽에 도스토옙스키 얼굴상이 서있다.
◇ 노보시비르스크의 도스토옙스키 도로. 오른쪽에 도스토옙스키 얼굴상이 서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유형살이를 한 옴스크에서 노보시비르스크로 돌아온 다음날이며 옴스크 방문 여정의 마지막 날인 2017년 10월 7일. 나는 김준길 교수 내외와 도스토옙스키와 푸시킨의 동상을 찾아 나섰다.

이 도시의 어딘가에 그 두 사람의 동상이 있다는 얘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 내외도 도스토옙스키나 푸시킨 동상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우리가 도스토옙스키의 동상을 발견한 곳은 노보시비르스크의 중심도로라고 할 수 있는 크라스니 프로스펙트와 도스토옙스키 도로의 교차지점이었다.

◇ 고골 흉상
◇ 고골 흉상

그런데 그 동상이란 것이 우리가 러시아에서 흔히 보아온 커다란 전신상(全身像)이 아니고 굵지 않은 4각의 기둥 위에 얼굴만 올려놓은 두상(頭像)이었다. 사람들 눈에 잘 띌만한 크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고 지나쳤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이곳에 도스토옙스키 거리가 있을까? 도스토옙스키는 노보시비르스크와는 아무 인연도 없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유형살이를 한 옴스크가 러시아로서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라고 할 수 있는 600km 서쪽에 있다.

그가 강제 군 복무를 하고 첫 결혼 생활을 한 세미팔라틴스크(세메이)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러시아 기준으로 볼 때), 약 5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이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보다는 문학의 거장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사랑과 자랑의 표시가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도스토옙스키 도로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곳에는 노보시비르스크와 도스토옙스키 만큼의 인연도 없는 작가 고골의 이름을 딴 고골 도로가 있다. 또 다른 곳에는 톨스토이 거리도 있는데 그곳에 톨스토이 동상은 없다고 김 교수는 말해주었다.

고골 도로와 크라스니 프로스펙트가 만나는 곳으로 가 보니, 과연 고골 흉상이 서 있었다. 규모는 먼저 본 도스토옙스키의 두상보다는 조금 컸다. 고골 도로는 도스토옙스키 도로보다 폭이 훨씬 넓었다.

◇ 푸시킨 흉상
◇ 푸시킨 흉상

고골 흉상까지 카메라에 담은 후 이번에는 푸시킨 동상을 찾아가기로 했다. 김 교수 부인 나탈리아가 어딘가에 전화하여 위치를 알아내 차를 몰았다. 푸시킨 동상은 고골 동상이 있는 도심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지역에 있었다. 차는 한 동네로 들어가 여기저기를 한참 돌다가 어느 학교 앞에 주차를 했다.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니 교정에는 노란 자작나무 단풍이 한창이다. 멀찌감치 오른쪽으로 학교 건물 앞에 비교적 큰 황금색 흉상이 하나 눈에 띄었다. 곱슬머리 푸시킨의 흉상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햇살이 흉상을 밝게 비추고 있다.

흉상은 원래 인근 공원에 있었으나 가끔 취객들로부터 훼손을 당하곤 해서 안전한 학교 교정으로 옮겨다 놓은 것이라고 했다. 동상이 있는 학교의 이름은 노보시비르스크 시립 푸시킨 사범학교였다. 고등학교 과정이라고 한다. 토요일이어서인지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당초 옴스크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노보시비르스크는 단지 경유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렇게 여행 마지막날 이 도시의 도스토옙스키, 고골, 푸시킨의 동상을 몇 시간 만에 모두 볼 수 있었으니 내게는 여행의 또 다른 소득이었다.

글 | 이정식 작가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지구과학과)를 졸업하였고, 홍콩대 중국어문과정을 수료했다. ROTC 14기. CBS, KBS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CBS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CBS 사장과 CBS 노컷뉴스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방송협회 부회장,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예술의 전당 이사, 뉴스1 사장 및 부회장, 서울문화사 부회장을 지냈다.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안중근 의사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언론인 대상(2009)을 수상했으며, 이정식 애창가곡 1, 2, 3, 4집 등의 음반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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