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파괴로 인한 생태적 위기, 국가 이기주의로 인한 전쟁, 특히 핵전쟁의 위기,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기, AI로 상징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위기 등, 현대인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한 둘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기회이지만 동시에 위기이기도 하다.

현대인에게는 이런 외부적 위험 요소뿐만 아니라 내면적 위험 요소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정서적 장애 요소이다.

고독과 외로움은 같은 성격의 정서이다. 고독하기 때문에 외롭고, 또 외롭기 때문에 고독하다. 그러나 이 두 정서는 상황에 따라서는 매우 다른 정서이기도 하다.

외로움은 보통 인간관계에서 소통의 부재로 생겨나는 감정이다. 마음을 함께 나눌 친구가 없거나, 친구가 있다 하더라도 소통이 없다면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고 고독을 느낀다.

그러나 인간은 때로는 선택적 침묵을 할 경우가 있는데, 이때 생기는 고독은 차원이 다른 고독이다.

선택적 침묵의 고독 속에서 인간은 내면의 참자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때의 고독은 인간을 초월하는 절대적 타자(the Other)와의 연결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사막이란 단어는 <미드바르(midbar)>라고 한다. 이 말 속에는 모래를 의미하는 단어나 뜻은 들어있지 않다. 미드바르의 의미는 "말씀을 듣는다"라는 뜻이다.

사막은 침묵이 감도는 고독한 곳이다. 그러므로 히브리 사람들은 사막, 즉 침묵이 감도는 고독한 곳에서 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히브리 사람들의 위대한 지혜이다.

그래서인지 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예언자나 선지자, 혹은 지혜로운 사람들은 사막에 인접한 지역에서 나왔다. 그들은 고독한 침묵 속에서 신을 만나고 지혜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인간이 내면의 소리를 듣고 영성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사막의 고독이 필요하다. 말하는 것, 듣는 것, 번잡하게 생각하는 것 등을 잠시 내려놓고 눈을 감은 채 침묵의 고요 속으로 들어가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 정말로 필요하다.

우리는 사막에 가지 않고도 일상생활에서 고독을 위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숲 속을 산책하면서, 단순한 찬트를 반복하여 부르면서, 명상음악을 들으면서, 혹은 명상을 하면서 고독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게 고독을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내면 속에 고요함의 감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는 "신의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실재는 우선적으로 우리의 내면 속에서 찾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곳에서 신을 찾지 못하면, 우리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신을 찾지 못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거기에서 신을 찾으면, 우리는 다시는 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우리가 어디를 향하든지 우리는 신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하고 말했다.

또 어떤 성인은 이렇게 말했다. "빛과 인도자가 밖에 없어도 내 마음속에 빛나는 등불이 있네."

내 마음속의 등불은 침묵의 고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침묵의 고독 속에서만 마음의 등불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선택적 침묵의 고독은 현대인이 고통을 겪고 있는 고독과 외로움을 해소하는 하나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선택적 침묵의 고독은 사실 명상의 다른 이름이다.

※중세 기독교의 위대한 신비주의 사상가. 그는 신(神)의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강조하는 범재신론(panentheism)을 주장하여 불교와 노장사상과도 유사한 깨달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글 | 윤종모 주교

대한성공회 관구장과 부산교구장을 지냈다. 신학생 때부터 명상에 관심이 많았다. 20여 년 전 캐나다의 한 성공회 수녀원에 머물며 명상의 참맛을 느끼고 지금까지 치유 명상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명상 초심자와 수련자를 위한 책 '치유명상 5단계(동연)'를 펴냈다.

저작권자 © 마음건강 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