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중반 법무장교로 군에 입대했을 때였다. 나는 처음으로 감옥이라는 걸 구경했다. 당시 서울 외곽에 있던 육군교도소는 ‘지옥’이라고들 했다. 철창을 한 감방이 방사선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중앙에서 한눈에 감시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았다.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둠침침했다. 감방의 차디찬 마루바닥에서 수용된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누구와의 대화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 엄혹한 룰을 보면서 내가 그 안에 들어가면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그곳을 견학시키는 선임장교는 내게 이런말을 했다. 

“법을 공부하고 앞으로 남을 감옥에 잡아넣는 업무를 하려는 사람은 그 자신이 먼저 저런 감옥생활을 해 봐야 합니다. 군단사령부에 배치되면 영창에서 하루라도 저런 경험을 해 보도록.”

일부러라도 넘어져 보라는 교훈 같았다. 일생동안 그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일년쯤 후에 육군교도소로 많은 민주인사가 잡혀 들어왔었다. 김대중, 김동길, 이해찬등 쟁쟁한 인물들이었다. 나는 그분들이 사회의 십자가를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이 부끄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남자면 누구나 국가를 지킬 의무가 있고 그래서 군인이 되는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특정인의 사병이 아니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변호사가 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쩌다 인권변호사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다. 수사과정에서 피가 터지고 살이 뭉개지고 뼈가 부러지는 고문이 있었던 걸 발견하고 분노해서 법정에서 떠들었다. 그때는 형사들이 고문하지 않으면 조사가 안된다고 불평도 하던 시절이었다.

교도소 안에서 가죽으로 만든 두꺼운 혁대에 뒤로 손이 묶여서 엎드려 있는 상황을 마주치기도 했다. 그 사람은 바닥에 놓인 양재기속의 밥을 개처럼 핥아먹었다. 법정에서 사실들을 말했다. 그러나 판사들은 내 말을 외면했다. 불편한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본 사실들을 글로 써서 세상에 알렸다. 나쁜 검판사라는 제목으로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지적했다. 덕분에 여러 번 형사고소를 당하기도 하고 수십억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당하기도 했다. 그런 때 빌고 또 합의를 해서 피해나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일부러라도 넘어져 보고 싶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참 이상한 게 있었다. 피고인과 나란히 있는데도 그 마음이나 아픔이 느껴지지 앉았다. 공감능력이 없는 것이다. 한번 두들겨 맞아보기로 했다. 형사고소를 당하거나 제기된 민사소송을 두 팔을 벌리고 맞아들였다.

내가 쓴 글 때문에 고소가 됐을 때였다. 재벌 회장 부인의 살인교사를 세상에 글로 알렸다. 현실에서 진실과 정의가 돈보다 약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담당형사가 물었다.

“좌파 빨갱이세요? 왜 재벌을 공격해요?”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정치를 하려는 거예요? 튀는 행동을 해서 자기선전을 하는 거죠?”

세상의 시각을 알았다. 그 형사뿐만 아니라 같은 팀의 다른 형사들은 즐거워했다. 그들이 질시하는 변호사가 공동의 먹이감으로 걸려들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또 다른 사건으로 고소를 당한 적이 있었다. 내게서 돈을 뜯으려는 질 나쁜 의뢰인이 배임죄로 고소를 했다. 나를 소환한 담당 검사의 눈빛이 ‘너 잘걸렸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려”

한참 법조 후배인 그가 내뱉었다. 나는 창고 같은 삭막한 방에서 오래 기다리다 불려갔다. 나를 고소한 여자가 와 있었다. 여자가 개처럼 으르렁거렸다. 검사는 그 여자가 나를 마음대로 물어뜯게 하면서 즐기는 것 같았다. 한밤중까지 만신창이를 만들어 놓고는 검사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검찰에 대해 나쁜 컬럼을 쓰셨다고 내가 감정적으로 이러는 건 아닙니다. 나는 고소인의 의견을 끝까지 듣고 대질시키는 공정한 수사를 하는 검사입니다.”

법원의 냉정도 그들 못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넘어진 것이다. 넘어지면서 억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넘어진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것으로 인해 무엇을 얻었느냐이다. 예수님이 스스로 진 십자가도 혹시 그런 건 아니었을까.

나는 원래 약하고 비겁한 인간이다.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내 속의 어떤 존재가 작은 십자가를 져 보게 한 것 같다. 

글 | 엄상익 변호사

경기중-고, 고려대 법대를 나오고 제24회 사법시험(1982)에 합격했다. 6공 때,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특별보좌관실에 근무하며 권부의 이면을 보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대도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등 사회 이목을 끌은 대형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월간조선을 비롯,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했고 수필집, 장편 소설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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