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가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살아오면서 겪은 과거의 일과 경험과 기억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과거에 빠져 있을수록 현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힘들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나이 들면서 나타나는 여러 부정적 요인들, 예를 들어 기억력 감퇴, 신체적 질병, 시력과 청력의 저하 등과 같은 증상들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겪을 수밖에 없다.

또한 직장을 은퇴한 뒤 새로운 역할과 지위에 놓이면서 정서적 불안정과 심리적 위축으로 자존감이 약해지고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증상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젊은 시절을 기준으로 현재를 보면 위기 그 자체이다. 희망이 없다. 불안과 죽음의 공포만이 엄습해 올 뿐이다.

자신감과 자존감도 점점 땅에 떨어져 사람 만나는 것이 꺼려지거나, 의욕 상실로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동기유발이 되지를 않는다.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질 뿐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이에 걸맞는 새로운 역할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살아 있다는 것에 무한한 감사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산 위에서 발원한 물이 계곡을 흘러 강물을 지나 바다로 들어가 사라지듯이, 사람 역시 태어나 나이를 먹어가다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자기 자신도 그 한 지점에 서 있을 뿐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냇물이 고요한 바다에 들어가 사라지듯이, 사람도 생을 마치면 바다와 같은 절대 침묵 속으로 사라지는 법이다.

그런데 시냇물이 흘러흘러 넓은 품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되듯이, 사람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쌓이고 지혜가 싹트면서 모든 것을 감싸안고 무르익어가야 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시냇물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나이 든다는 것 역시 젊었을 때와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얼굴의 주름은 늙어가는 증상이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무르익은 삶의 표현이다. 점점 희어지는 머리카락은 가을날 곱게 물든 단풍 처럼 인생 계절에 피어나는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현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맛이 더 나고 술독이 무르익으면서 술 향기가 그윽해지듯이, 나이 먹는 것 또한 그러하고 그러해야 한다.

공자가 “나이 칠십에 이르면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나이 들어가는 것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모든 진리에 부합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을 잊지 못하는 나이듦은 금쪽 같은 현재가 없다. 단지 과거 속에 살 뿐이다. 지금 이곳이 없는 투명인간이다. 그렇게 되면 나이 든 현재의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과장된 언행을 하거나 옷을 입는 등 어른 답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경우 오히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더 빨리 늙는다. 구름이 태양을 가려 우중충한 날이 되듯이 회색빛 노년기를 보내거나, 심리적 불안감에 빠져 삶의 행복지수도 낮아진다. 달갑지 않은 질병도 자기 집처럼 찾아든다.

그러니 지금 나의 모습에서 나이듦의 미학을 즐겨야 한다. 나이 든다는 것은 여물고 무르익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신뢰하고 노화에 따른 증상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나이 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 그 동안의 삶에서 스며나오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주름진 얼굴과 흰 머리에서 묻어나는 아름다운 빛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 빛은 바로 그 동안의 삶이 무르익으면서 나오는 빛깔이다.

그런 노년에게서는 편안한 얼굴빛과 그윽한 향기가 느껴진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나이 들어 나타나는 여러 통증과 죽음마저도 벗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글 | 김양식 객원논설위원

충남 천안 출생. 단국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전공은 한국근현대사. 국사편찬위원회,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를 거쳐 충북연구원 충북학연구소장을 다년간 역임한 뒤, 현재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로 있다. 요가명상에도 관심을 기울여 현재 사단법인 한국요가문화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전공서적 외에 ‘지리산에 가련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충북 하늘 위에 피어난 녹두꽃’, ‘청주학 이야기’ 등을 펴냈고, 최근에는 노년학에 관심을 기울여 ‘나이듦 가슴뛰는 내일’(2020)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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