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문제를 겪고 있는 70대 노부부가 있다. 내원한 아내는 남편이 화를 잘 내고 고지식해서 말이 안 통한다고 불평한다. 아내는 매우 현실적이고 젊어서는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은퇴한 고위 공직자인 남편은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자신을 무시하고 구박한다며 자신이 피해자임을 강조한다. 과거 자신이 바람피운 적이 있어서 괴롭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내는 이런 내용을 부인했다. 단정적이고 명령조인 남편의 말투와 가부장적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을 해도 인정하지 않아 답답하다고 한다. 

남편은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지만 아직 아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여자의 마음을 너무 모르는 것도 속상하다,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이나 멋있다는 말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고 한다. 

남편은 아내와 같은 매력적인 여인과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이런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뿐이다. 노부부의 경우는 기본적 신뢰와 애정에는 문제가 없다. 

아내로서는 소소한 일들이나 취향, 의견을 무시하는 남편의 태도와 권위적인 말투가 늘 거슬렸다. 이제까지 참아온 아내가 노년에 접어들면서 불만을 표시하며 대꾸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자, 남편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고 계속 다툼으로 이어진 것이다. 

내향적 성격의 남편이 아내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주관적 의도를 헤아리면서 오해가 발생한 것이다. 

또 아내를 사랑하는 자신의 속마음을 아내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해 왔다. 전형적인 외향적 성격의 아내는 남편의 속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드러난 행동으로 상대를 평가한다.

두 부부의 서로 다른 성격에서 비롯된 소통 방식의 차이를 이해하고, 남편이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권위적 말투를 고치고 아내 역시 남편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깎아내리기 보다 좋 은 점을 칭찬해 주면서 부부 관계는 좋아졌다. 

온종일 게임만 하는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보통 엄마들은 이렇게 나무란다. 

“너 이런 식으로 하면 대학은 어림도 없다. 고등학교만 나와서 뭐 할래. 내가 누구 때문에 식당 일하는 줄 아냐.” 그러면 아들은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린다. 엄마가 속이 상해 야단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내가 누구 때문에 식당 일하는 줄 아냐”라는 발언은 적절하지 않다. 아들에게 부담을 주고 죄책감을 유발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너 이런 식으로 하면 대학은 어림도 없다” 대신 “엄마는 네가 이러다가 대학도 못 갈까 걱정이다” 정도로 말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아들을 단정적인 말로 비난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 있다. 

옳고 그름, 잘잘못을 얘기하는 비판적 태도는 판단하는 사람이 우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비난뿐만이 아니다. 칭찬 역시 판단하는 태도라 때에 따라서는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비판적 얘기를 할 때는 ‘나’를 주어로 시작해서 내 생각이나 느낌이 어떻다고 표현하는 게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상대가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놓고 비난하지 않으면서 본인의 의견만 전달하는 방식이다. 

지시나 명령조의 말을 할 때도 ‘나’를 주어로 시작해서 제안하거나 부탁하는 식으로 말 하는 게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그게 말이 되냐” 대신 “그 생각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또는 “그 생각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네가 그럴 수 있어”라고 비난하는 대신 “그렇게 돼서 섭섭해”라고 내 느낌을 전달한다. 즉 상대와 다른 의견을 말하면서 상대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놓는 것이다. 

또 “그 일을 해” 하고 지시하는 대신 “그 일을 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 하거나, “그 일을 해 줄 수 있는지” 물으며 부탁하는 것이다. 상대가 시켜서 할 때의 기분과 제안이나 부탁을 받고 스스로 결정해서 할 때의 기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상대방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면서 상대의 생각을 존중해 주는 태도가 말하는 방식의 차이로 나타난다.  <계속>

글 | 김창윤 교수

울산대 의과 대학,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교수. 조현병, 조울증, 강박 장애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개인 및 가족 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서울대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 분자신경생물학 연구소에서 연수했으며 서울아산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과장을 역임했다.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심리 치료에도 관심이 많고 칼 구스타프 융과 동서양 철학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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